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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벌 낭충봉아부패병 현황과 통합 방제 전략

  • 등록 2025.11.05 12:50:05

 

 

 

이 시 혁 교수
서울대학교 농생명공학부


토종벌(Apis cerana)은 우리 농업생태계의 한 축을 담당하며, 산림과 농경지에서 화분 매개자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한봉’이라 불리며 전통 양봉문화의 중심에 있었고, 지역 농가의 귀중한 소득원으로 자리해 왔다. 그러나 2009년 국내에서 처음 확인된 낭충봉아부패병은 토종벌 산업 전반에 치명적인 위협으로 작용해 왔다. 빠른 확산 속도와 막대한 피해 규모로 인해 “머지않아 토종벌이 사라질 것”이라는 위기감이 퍼질 정도였다.
이 질병은 중국계 바이러스 계통인 Chinese Sacbrood Virus에 의해 발생하는 바이러스성 질병으로, 유충기에 감염되면 정상적인 발육이 중단되고 투명한 젤리처럼 부풀어 오르거나 수포화되어 ‘주머니(囊)’ 형태로 굳는다. 이후 말라붙거나 검게 변색되며 폐사에 이르게 된다. 감염된 봉군에서는 유충 폐사율이 매우 높아 세대교체가 중단되고, 결국 봉군 전체가 붕괴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농가에서는 낭충봉아부패병을 “꿀벌 에이즈”라고 부르기도 한다.

 

발생 현황과 피해 양상
낭충봉아부패병은 2009년 일부 지역에서 처음 보고된 이후 전국적으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정부 조사 결과, 2010년 10월 기준으로 국내 토종벌 사육군의 약 77%가 감염된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처럼 단기간에 피해가 폭발적으로 확산된 이유는 여러 요인에 기인한다. 일벌의 위생행동을 통해 감염 유충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일벌이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이들이 외역벌로 활동하며 꽃가루나 꿀을 매개로 다른 봉군으로 전파시키는 악순환 구조가 형성된다. 또한 벌통, 사양기구, 장비, 분봉군 이동 등이 추가적인 전파 매개체로 작용한다. 특히 산란기나 분봉기에는 유충 밀도가 높아 감염이 급격히 증가하고, 영양 불균형, 농약 노출, 응애 동시감염 등 생리적·환경적 스트레스가 병세를 악화시킨다. 이러한 복합 요인으로 인해 발병 후 대응이 늦을 경우 봉군 전체가 소멸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였으며, 토종벌 산업의 기반이 심각하게 위축되었다.

 

과학기술과 현장 협력의 성과
낭충봉아부패병은 바이러스성 질병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근본적 치료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져 왔고, 예방만이 유일한 대응책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과학기술적 대응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농림축산검역본부와 민간기업이 공동 연구를 통해 RNA 간섭(RNAi) 기반 유전자 치료제 ‘허니가드-R’을 개발하였으며, 2024년 6월 동물용의약품으로 품목허가를 획득하여 2025년부터 본격적으로 보급되고 있다. 이 치료제는 바이러스 복제에 필수적인 유전자 서열을 이중가닥 RNA(dsRNA) 형태로 합성하여 꿀벌에 투여하면 RNA 간섭 원리를 통해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하는 기작을 가진다. 설탕물에 혼합하여 경구 급여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현장 긴급지원 실험 결과 발병률이 96.2% 감소했다는 보고도 있다. 이러한 성과는 학계·산업계·농가가 협력한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 치료제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 해법’이 되기 위해서는 봉군 위생관리, 이동제한, 방역체계 유지 등 기본 관리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기술은 도구일 뿐이며, 제도적 뒷받침과 현장 실행이 함께 이루어질 때 비로소 실질적 효과가 나타난다.


산업적·생태적 의미와 향후 과제
토종벌 산업의 회복은 단순히 꿀 생산의 문제가 아니다. 토종벌은 야생화, 산림, 농경지의 다양한 꽃을 방문하며 생태계의 화분매개 기능을 담당한다. 이 기능이 약화되면 생태계 전반의 균형이 무너질 수 있다. 또한 토종벌은 지역 농가의 부가가치 창출원으로서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따라서 낭충봉아부패병으로 인한 피해는 양봉산업의 위기를 넘어 생태계와 농업생태 전반에 미치는 심각한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이번 치료제 개발을 계기로 토종벌 산업 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한 장기적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전국 양봉장 및 토종벌 사육농가에 대한 실시간 모니터링 체계를 강화하고, 방역당국과의 신속한 정보 연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또한 밀원식물 다양화와 서식 환경 개선을 통해 토종벌의 영양상태와 건강성을 제고해야 한다. 소규모 농가나 고령농가의 방역 역량 강화를 위한 정부 및 지자체의 교육·지원 프로그램 확대도 필요하다. 나아가 지속 가능한 육종 연구와 환경 개선을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이 뒤따라야 한다.

 

결론: 함께 지켜야 할 가치
낭충봉아부패병은 한때 ‘막을 수 없는 재난’으로 여겨졌으나, 이제는 과학기술과 현장 협력, 제도적 지원이 결합되며 충분히 통제 가능한 단계에 들어섰다. 그러나 기술만으로는 위기를 완전히 극복할 수 없다. 농가의 경각심, 현장의 철저한 방역 실천, 정부와 학계의 긴밀한 협력체계가 삼위일체로 작동할 때 비로소 토종벌 산업은 진정한 회복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토종벌은 단순한 곤충이 아니라, 우리의 생태계와 농업, 그리고 문화 속에서 함께 숨 쉬며 살아온 존재이다. 이 소중한 생명과 산업을 지키는 일에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축산신문, CHUKSAN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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