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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동물복지 오디세이 <6>貫珠爲寶 :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 등록 2019.12.06 10:31:38


전 중 환 농업연구사(농진청 국립축산과학원 축산환경과)


1. 프롤로그
얼마 전 부산에서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개최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많은 뉴스들이 보도되었으며 뉴스의 내용에 ‘ODA’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 것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공적개발원조)라는 단어는 일반인들에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공적개발원조라는 것은 선진국이나 공공기관이 개발도상국 발전을 위해 현금, 물자 및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도 국제사회에서 개도국의 발전을 위해 많은 역할을 하고 있는데 우연한 기회를 통하여 약 3년간 농업분야의 공적개발원조 업무를 담당한 적이 있다.
내가 맡았던 주요업무는 과테말라, 코스타리카 등을 포함한 중남미 12개 회원국들로 이뤄진 협의체를 관리하는 것이었다. 여러 회원국들을 방문하면서 해당국가의 농업과 농촌 현실에 대해 많은 것들을 목격할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과테말라를 방문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과테말라는 내가 방문한 중남미 국가들 중에서 한국교민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던 곳이며, 가장 많은 도움을 받았던 곳으로 교민들의 따뜻함과 고마움은 지금도 나의 시선을 중남미로 이끌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반면에 우리나라에 비하여 가축을 키우기 좋은 조건들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과테말라의 농업현실은 많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2. 중남미에서는 이미 동물복지를 실천하고 있다?
과테말라는 우리나라와 1962년 수교를 맺었으며 국내 섬유나 봉제분야 투자가 많이 이뤄지기도 했으나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이다. 최근 국내의 커피 마니아들 사이에서 과테말라 커피가 유명해지면서 대중적으로 알려지고 있는 중남미의 주요 커피 생산국이다. 과테말라는 과거 마야문명의 중심지였으며 면적은 한반도의 약 1/2 정도로 대부분 산악지형이다. 연평균 기온은 12~25℃로 우리나라의 봄이나 가을과 비슷하며 전체 인구의 56%가 빈곤층에 속하는 낙후된 국가이다.
당시 과테말라 방문의 목적은 커피와 카카오 관련한 협의회를 개최하는 것이었으나 이동 중 몇몇 축산농가들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곳에서 마주한 축산농가들의 모습은 너무 충격적이었다. 잡목과 풀이 울창한(?) 곳에서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우리 일행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소들의 모습은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나의 전공이 동물복지라는 것을 아는 일행 중 한 명이 다가와 어깨를 툭 치면서 ‘이게 진정한 동물복지 아냐?’라며 씩 웃었다. 순간 나는 당황하여 ‘아뇨, 그게…’하면서 제대로 대꾸도 못했다.
축산농가에게 소의 품종을 물어보니 정확한 품종은 잘 모르고 그냥 육우라고 하는데 브라만품종인 제뷰(Zebu)로 판단되었다. 축산농가를 둘러보니 축사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배합사료는 거의 제공하지 않고 조사료에 의존해서 사육하고 있었다. 조사료라는 것도 제대로 된 초지에서 생산된 양질의 것이 아니라 처음 얘기했던 것처럼 정글 같은 곳을 소들이 다니며 그냥 풀을 뜯어 먹는 것이 전부였다. 당연히 소들은 비쩍 말라 있었으며 ‘사육되는 소들이 아니라 야생에서 살아가는 소들이 아닌가?’라는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우리가 동물복지가 잘 이뤄지고 있다고 얘기하는 기준은 가축의 본능적인 행동표출을 보장함과 동시에 축사시설과 영양공급 등 전반적인 관리 상태를 포함한다. 하지만 과테말라의 축산농가에서는 방목을 한다는 것 외에는 어느 하나도 동물복지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동물복지를 떠나 한사람의 축산인으로 과테말라 농업 관계자에게 질문했다. ‘배합사료는 가격이 비싸 공급할 수 없다고 하니, 이 넓은 땅을 초지로 조성해서 조사료라도 생산하면 어떤가?’라고 물었더니 부족한 산업기반과 경제력으로 인하여 주요 농작물 생산에 필요한 화학비료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가축에게 공급할 초지를 조성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질문을 이어갔다. ‘화학비료는 비싸다지만 가축분뇨를 퇴비화해서 활용하던지 저렴하게 유기비료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지 않는가?’라고 물어보니 대충 얼버무리며 딴소리를 했다.
과테말라의 기후가 지역에 따라 매우 다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겨울처럼 추운날씨는 없기 때문에 가축을 사육하기에 오히려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또한 초지로 활용할 수 있는 넓은 땅이 있으며, 축산분뇨와 냄새로 인한 민원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처럼 우리나라에 비하여 가축을 사육하는데 유리한 조건들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축산이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너무 안타깝게 느껴졌다.
(중남미 회원국 농업 관계자들을 한국으로 초청해서 농업기술에 대한 교육을 실시했는데 이 때 한 명이 나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 ‘신은 공평하다. 우리에게 많은 광물이 매장되어 있는 넓은 땅과 아름다운 자연을 주셨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게으름이라는 것을 함께 주셨다.’)


3. 에필로그
과테말라는 인구대비 넓은 땅이 있고 많은 광물이 매장되어 있으나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발전하려는 의지가 없었다. 실제로 내가 만났던 과테말라를 포함한 중남미 사람들은 자신이 처해있는 좋지 못한 상황에 대해 크게 비관하지도 않지만 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공통적인 특성이 있었다. 관주위보(貫珠爲寶)는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뜻이다. 아무리 조건이 좋고 자원이 풍부하다고 해도 이를 활용하기 위한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발전할 수 없는 것이다.
중남미 회원국 농업 관계자들을 인솔하여 포항에 위치한 포스코(POSCO)로 견학 갔을 때였다. 누군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그 짧은 기간에 어떻게 제철소를 지을 수 있었냐’고 질문을 했다. 설명을 하시던 분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저희 초대 회장님께서 당시 함께 일하던 직원들에게 ‘기한 내에 제철소 완공 못하면 우리 모두 저기 바다에 뛰어들어 죽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답변에 그들은 이해하는 듯 못하는 듯 묘한 표정들을 지었다.
우리는 우리나라가 얼마나 위대하고 대단한 나라인지 그리고 우리의 성실함과 근면함이 얼마나 귀중한 자산인지를 잘 알고 있다. 그동안의 수많은 난관들을 극복하지 못했다면 지금의 우리 모습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축산업도 마찬가지로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지만 성실함과 근면함을 통해서 더욱 성장하고 발전하는 계기로 삼았다. 이처럼 발전된 축산의 모습에 큰 자부심을 느끼며 이를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은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2020년은 축산이 더욱 발전할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하며 다사다난했던 2019년 한 해를 마무리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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