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에게 길을 묻다 / 이윤우 전 낙농육우협회장
지도자의 길은 나보다 남을 위하는 봉사자의 길…
고졸 후 수입 젖소 두 마리 입식…낙농 외길 50년
후배 양성보다 앞길 가로막는 행태 안타까워
도로계획에 목장 수용…자식 낙농의지 꺾일까 걱정
간척지 등에 낙농단지 조성 젊은 후계자에 희망을
‘李潤雨(이윤우)’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아담한 기왓집 대문에 선명한 문패가 반듯하다. 당당하다. 낙농 원로인 이윤우 전낙농육우협회장의 올곧은 심성이 이렇듯 문패에도 고스란히 묻어나는 듯하다. 이윽고 이 회장이 거처하는 방에 들어서니 창문으로 들어오는 봄 햇살이 따사롭다. 옛 선비들이 벼슬을 그만두고 자연과 함께 세상을 관조(觀照)하며 소일했던 곳도 바로 이러 했으리라.
딱히 질문을 하지 않았는데도 “낙농 50년이 되는 올해 말이면 셔터를 내리겠다”며 말문을 열었다. 서울우유 조합원으로 가입한 것이 1963년 3월이니 올 연말이면 낙농 50년이라는 설명이다. ‘셔터를 내리겠다’ 함은 이제 낙농 현안에 대해 이런 말 저런 말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눈은 빛났다. 햇살에 비친 그의 머리는 비록 희지만 연로함보다는 경륜을 떠올리게 했다. 그에게 길을 묻고 싶었다. 특히 축산지도자의 길을 묻고 싶었다.
“몇 년 전 서울우유의 젊은 임원이 묻기에 말해준 적이 있다”며 모름지기 임원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으로, 에둘러 지도자의 길을 설명했다.
“첫째, 겸손해야 한다. 임원이라고 자칫 우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겸손해야 한다고 해서 공식적인 업무조차 겸손해서는 안 된다. 회의 등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소신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속일 생각을 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비밀이 없다. 분(糞)을 비닐에 싼다고 해서 냄새를 막을 수 없다”며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일할 것을 강조했다.
“셋째는 정도다. 어려울수록 정도로 가야한다. 그렇지 않고 그 어려움을 피해 가면 더 어려운 일에 부딪힌다.”
기자는 순간 다음 질문을 잊었다. 어쩌면 그렇게 지도자의 문제점을 족집게로 콕 집어내는가 싶기도 했지만 이는 단지 축산 지도자만이 아닌 우리 모두가 한 번 곱씹어 봐야할 말인 것으로 생각됐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그것이 끝이 아니라고 했다. 한 가지 남겨둔 말이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이 무엇일까 궁금해하는 기자에게 힌트처럼 한 마디 던졌다. 세상에는 자기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남겨둔 그 말은 오만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초심을 잃지 말라는 것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앉고 싶은 자리에 앉으면, 또 너무 오래 앉았다 보면 남이 우습게 보인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 회장 당신이 서울우유 조합 임원으로 활동할 당시에는 이사니, 감사니 하는 임원은 그야말로 봉사직이었다고 회고했다. 요즘은 후배가 좀 똑똑하다 싶으면 그 후배의 앞길을 터주기는커녕 오히려 발목을 잡는 경우도 있다며 안타까워 했다.
이 회장의 이야기는 끊임이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수입 젖소 두 마리를 50% 보조, 50% 자부담으로 입식하면서 낙농을 시작한 이후 지난 50년의 이야기를 다 털어 놓을 기세였다.
마감 날(화요일)이란 이유로 화제를 돌렸다. FTA시대 축산농민의 자세에 대해서도 고견을 부탁했다.
이 회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얼마 전 박준영 전남도지사가 모 언론에서 한 말을 떠올렸다. “정부의 보조를 꼭 받아야 할 농민이 혜택을 입지 못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혜택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정부도 문제지만 농민도 자세를 바르게 해야 한다고 뼈있는 지적을 마다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낙농을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다. 이 회장의 목장이 도로부지로 수용된데 따른 질문이었다.
“도로 계획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반대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결국 다른 곳에 가서 낙농을 해야 한다. 간척지 같은 곳에 낙농단지가 들어설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특별한 대책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 회장은 이어 “미국에서 공부하던 아들을 10년 전에 불러들여 낙농을 시켰다. 그동안 열심히 일해 왔다”고 말하고, 이렇듯 의지가 있는 젊은 세대에게 정부 차원에서 뭔가 길을 열어줘야 하지 않겠느냐며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인터뷰를 끝내고 밖에 나오니 사료포의 파릇파릇한 호밀은, 도로로 변할 앞일을 아는지 모르는지 봄바람에 수줍은 듯 춤추고 있었다. 이 회장이 내뿜은 한 숨 섞인 한 모금 담배연기가 아지랑이처럼 허공을 향해 피어 올랐다.
<글: 장지헌·사진: 김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