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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성대에서>낙농문제, 정말 시간이 없다

 

이상호 본지 발행인

 

상호 이해만이 매듭 풀 열쇠
대승적 논의의 장 만들어
과감한 결단 이끌어 내야

 

낙농업계가 늪에 빠졌다. 사상최대의 분유재고에 시달리는 유업계가 휘청거리고, 낙농가들은 감산압박에 내몰리고 있지만 탈출구가 없으니 늪에 빠져도 아주 깊이 빠진 것이다.
한국낙농의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뿌리가 깊고 구조적이다. 그런 거라면 한국낙농의 위기를 돌파할 해법은 아주 없는 걸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는 유행가 가사처럼 말의 아귀는 맞지 않지만 ‘있는데 없다’가 맞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힐난이 쏟아지겠지만 어떠한 해법도 이해당사자들의 합의가 불가능해 백약이 무효이기에 하는 말이다.
지금까지 낙농관련업계는 낙농의 미래를 좌우할 현안을 놓고 속 시원한 합의에 도달해본 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정부 차원의 대책이란 것도 대부분 땜질식 처방이었다. 오늘날 한국낙농이 직면한 위기상황은 이해당사자들 간의 끝없는 갈등이 낳은 적당한 합의와 정부의 땜질식 처방이 축적되어 발생한 업보(業報)다.
한국낙농의 위기탈출이 해법의 문제가 아닌 이해당사자간 합의과정과 방식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 해법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칼로 잘라 버린 알렉산더의 방식이 필요해 보인다.
동방원정 길에 나선 알렉산더는 프리기아 왕 고르디우스가 황금마차를 복잡한 매듭을 지어 신전기둥에 묶고 이 매듭을 풀어 마차를 취하는 사람이 동방을 정복할 것이라는 예언을 남겼다는 소문을 듣고 달려가 매듭을 단칼에 잘라 버렸다. 고르디우스의 예언 이후 매듭을 풀려고 수많은 영웅들이 도전했지만 성공하지 못한 것을 알렉산더는 과감한 발상과 결단으로 잘라 버리고 동방을 정복했다. 신화 속 얘기지만 알렉산더의 성공비결은 망설이지 않는 과감한 결단과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발상에 있다.
한국낙농이 직면한 문제도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해법이 논의되었고 정책입안자가 바뀔 때 마다 해결을 시도해봤지만 성과가 없었다. 이해당사자들의 합리적 토론과 합의는 실종되고 이로 인해 정책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응급처치로 일관했기에 알렉산더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결단의 주체는 두말 할 것도 없이 이해계층을 대표하는 리더나 단체, 정부당국자여야 한다.
단칼에 자르는 알렉산더의 방식이 곤란하다면 카톨릭에서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Conclave) 방식을 제안한다. 로마 교황청은 바티칸에서 교황을 선출할 때 추기경단이 모두 선거장에 입장하면 문을 걸어 잠그는데 교황이 선출될 때까지 추기경들은 외부와 완전 단절된다. 콘클라베는 새 교황이 선출됐다는 사실 말고는 그 안에서 있었던 모든 일이 비밀에 부쳐지는데 추기경들은 교황을 선출한 후에라야 밖에 나올 수 있다. 콘클라베는 3분의 2 이상 지지를 받아야 되는 선거규정 때문에 교황선출이 마냥 지연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음식물이 제공되지 않은 적도 있었다.
알렉산더나 콘클라베를 들먹인 게 물색도 모르고 나선다는 핀잔을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원유가격연동제, 전국단위 쿼터관리, 용도별 차등가격제 등등 논의가 불가능하거나 협상 테이블 언저리에도 끼이지 못하는 현안이 즐비함에도 무대책인 한국낙농의 ‘해법 찾기’는 장담하건대 이처럼 비상한 방식이어야 한다. 모두가 눈앞의 이해를 떠나 신뢰할 수 있는 대표를 내세워 결판을 내야하며 그러기 위해 모두가 과감한 용기를 가져야 한다. “허송세월한 지난 10년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한국낙농은 아예 장래가 없을 것”이라는 어느 노교수의 걱정은 한국낙농에 더 이상 시간이 없음을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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