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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부·농협 축산에 대한 생각 획기적으로 바꿔야”

명의식 전 축협중앙회장은 당초 인터뷰를 극구 사양했다. 전화로 인터뷰를 제안했을 때 통화내용은 의례적인 사양의 도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사실 망설이기는 본지도 마찬가지였다.
한때 축협의 수장이었던 인사에게 구 축협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혹여 상처를 건드리는 일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창간기념특집으로 협동조합을 얘기하는 마당에 구 축협회장의 말을 들어 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에 명 전회장에게는 좀 미안한 일이지만 출입기자 시절의 ‘옛정’을 들먹이며 밥 먹는 자리를 만들고야 말았다. 점심 무렵 만나자고 했는데 인터뷰 당일(지난달 25일) 명 전회장이 출근하는 사무실 여직원의 “(기자와)약속 때문에 10시30분까지 출근하실 것”이란 말을 전해 듣고 허겁지겁 달려가야 했다. 사무실에서 만난 명 전회장의 표정은 밝고 건강해 보였다. 건강이 좋아 보이는데 비결이 뭐냐고 묻자 “비결은 무슨 비결이야. 그냥 유유자적하며 조용히 사는 거지”라며 본론이 뭐냐는 투의 말을 던졌다.

- 어떤 인연으로 축협과 인연을 맺게 됐는지요.
“당시엔 축협회장 자리가 임명직이었기 때문에 특별한 인연은 없다고 봐야 해요. 1986년 차관 승진설이 있었는데 차관은 안 되고(웃음) 축협회장이 되더라구요. 솔직히 말해 차관이 되었으면 좋았겠지만 별로 섭섭한 것도 없었어요. 축협회장에 내정되고 나서 난감한 점이 두 가지 있었어요.
당시 축협회장이 저의 대학선배였는데 이분(이득용 전회장을 지칭)이 농림부차관에, 농협회장까지 역임한 경력이 있는데다, 축협 쪽에서는 차관급 자리에 왜 차관보가 오느냐는 반응이 있었거든요. 이 때문에 두루 두루 미안한 생각이 많았는데 오랜 4H운동 경험도 있고 해서 열심히 해보자는 마음이 들더라구요.”
사실 명 전회장은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다. 공직자 출신이면서도 고교시절부터 4H운동을 해온데다 농민교육기관인 복지농도원의 창립멤버로서 31세에 이사장을 맡아 1996년까지 역임했다.
4H운동에 참여했던 인연으로 국회사무처에 발을 들여 놓고, 급기야 농림부 관리가 됐다. 이쯤이면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싶어 소위 본론에 들어갔다.

- 구 축협회장 출신의 원로로서 요즘 축산업을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요.
“왠지 활력이 떨어지고 위축되는 듯한 느낌을 갖게 돼요. 축산업은 경종농업에 비해 통계상 지표는 좋아요. 하지만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통계지표에 안주해선 안 된다고 봅니다.
아시다시피 축산업은 농촌경제를 선도하지만 외형상 종사인구가 많지 않기 때문에 생산자단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당장의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지만 각종 단체들이 정부나 국민들에게 축산업의 존재사실을 부단히 알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체 간의 협동과 역할분담이 절실한데 이런 점에서 보면 아쉬움이 없지 않아요. 말하자면 구심점이 없어서 그런 느낌을 받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러나 명 전회장은 자조금제도가 도입되는 등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축산업계의 노력으로 미뤄볼 때 축산업은 1차산업 중 가장 희망적이란 말도 했다.)

- 농·축협중앙회 통합 당시의 심경이 어떠셨는지요.
“축협을 떠나 있긴 했지만 마음이 몹시 아팠어요. 당시 개인적으로 반대의견을 나름대로 전하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축협회장을 지냈던 사람으로서의 마음고생은 당연한 저의 업보였을 테지만 후배들이나 축산업계에 많은 죄를 지은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현실이 중요한 것 아니겠어요. 축협(축산경제)이 농협 내에서나마 축산을 대변하고 축산발전의 구심점으로 기능하기를 바랄뿐입니다.” (명 전회장은 후배들 때문인지 이 대목에서 말을 아끼는 모습이 역력했다.)

- 현재 협동조합의 사업이나 기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예나 제나 달라진게 없지 않습니까. 한국적인 현실이라고는 하지만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중앙회의 경우 대거 자회사를 만들기 보다는 사업을 궤도에 올려놓은 후 일선조합에 이양하는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중앙회는 기획이나 교육, 지도, 농정활동에 주력하고 사업은 생산농가와 직결된 조합이나 조합 간 연합체가 수행하는 시스템이 필요한 때입니다.
흔히 일선조합은 역량이 안 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래서는 협동조합의 희망이 없습니다. 못한다고 안 맡기고 대신 한다면 영원히 못하는 것 아닙니까.
실천하지 못하고 물러나긴 했지만 축협시절 대단위 육가공공장이나 유가공공장, 사료공장은 언젠가 회원조합에 이양한다는 원칙을 갖고 했던 것입니다.”

- 축협시절 가장 중점을 두었던 사업은 무엇이었는지요.
“경제사업입니다. 다소의 무리도 없지 않았지만 유·육가공공장 신설이나 대단위 사료공장 확충은 지금 생각해도 잘한 일이라고 봅니다. 이런 사업을 언젠가 조합으로 이관하거나, 이걸 모태로 조합 사업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중장기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회원조합과의 공감대형성이 쉬웠다고 봅니다.”

- 중앙회의 신·경분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몹시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중앙회가 돈 장사보다는 본연의 사업과 기능에 충실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전적으로 공감하지만 시기상의 문제가 있습니다. 현재의 구조로 볼 때 신경분리는 협동조합을 망가뜨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시간을 두고 준비를 해야 할 사안이라고 봅니다. 여건이 충족되어 시행하더라도 분리된 은행이 회원조합의 상호금융과 유기적인 보완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합니다.
한 가지 분명한건 현재의 구조는 본말전도라는 비판에 발목이 잡힐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명 전회장은 인터뷰 도중(묻지도 않았는데) 농민운동도 해봤고, 농림부에서 공직생활을 오래 했지만 축산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었는데 축협회장이 된 후 “그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현실적으로 축산 없이 농업과 농촌경제를 얘기할 수 없는 만큼 정부나 농협이 축산에 대한 생각을 획기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종농업과 축산이 보완적인 관계가 될 수 있도록 농지법을 개정하고 축산에 대한 투자를 늘리라는 주문이었다. 축발기금의 재원고갈을 걱정하며 축산물 수입관세가 전액 축산에 투자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기자에겐 “우는 아이에게 젖 준다”고 축산의 존재를 정부나 국민들에게 알리는 일에 직(職)을 걸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명 전회장에게 “요즘도 약주 많이 하시냐”고 물었다. 두주불사였던 명 전회장의 대답은 거침없는 노(No)였다. 별 생각도 없고 해서 딱 끊고 하루 1시간 정도 가벼운 운동이나 하며 독서나 지인들 만나는 일로 소일한다고 했다. 명 전회장은 몇 년 전 이사한 용인 수지에서 부인과 함께 살며, 현재의 사무실과 집을 오가며 그야말로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만난사람 : 이상호 본지 발행인
■정리 : 신정훈
■사진 : 김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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