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민 수 대표
애그스카우터
농업경제학 박사
국제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는 주요 곡물 가격은 변동성이 심해 상황에 따라 폭등하거나 폭락하는 경우가 잦다. 곡물 시장은 생산량 대비 교역량이 적은 ‘얇은 시장(thin market)’이란 특징을 지니고 있어 주어지는 여러 정보에 따라 가격이 급변한다. 곡물이 선물 시장의 기초자산으로 파생 상품화되어 있어 투기 자금의 대거 유입으로 인해 가격 변동성은 더 심해질 뿐만 아니라 시장이 과열되면 가격 왜곡 현상까지 나타난다. 단순히 시세 차익만을 얻을 목적으로 곡물 선물이 거래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현물거래에서의 위험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도 선물 시장이 활용되고 있다.
우리는 이와 같은 거래 행위를 두고 전자를 ‘투기(speculation)’, 후자를 ‘헤지(hedge)’라고 표현한다. 투기는 말 그대로 해석이 되지만 영어로 일컫는 헤지란 말은 의미를 풀어서 설명해야만 한다. 헤지는 우리말로 ‘울타리’라는 뜻이며 가격을 일정 범위에 가두어 미래의 가격 변동에 대비한다는 선물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선물 시장이 탄생하게 된 것도 곡물상들이 미래의 가격 변동 위험을 줄이기 위한 헤지의 수단으로 거래소를 만들면서부터다. 일찍이 일본에서는 도쿠가와 막부의 에도 시대(1603~1867년)인 1697년에 오사카를 중심으로 쌀 거래소가 형성되었으며 현재와 유사한 선물거래가 처음 시작됐다. 지금과 같은 선물거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때는 1840년대 미국이다. 곡물 생산자들은 풍년이 들면 가격이 폭락하는 위험에 직면하게 되는 한편 곡물 수요자들은 흉년이 들면 가격이 폭등하는 위험에 놓이게 된다. 이와 같은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1848년 곡물 유통의 중심지인 시카고에 상품거래소(CBOT; Chicago Board of Trade)가 세워졌으며 세계를 대표하는 선물거래소로 현재까지 활발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선물거래는 시장의 자원 배분을 효율적으로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현물 시장의 유동성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순기능도 지니고 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순기능으로 선물거래가 미래의 현물가격을 예측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다는 점이며 이것이 헤지를 가능하도록 해준다. 곡물과 같은 원자재 상품은 달러나 주식, 가상화폐 등의 금융상품과는 달리 수급 측면에서의 다양한 정보가 쏟아지므로 어느 정도 가격 방향성 예측이 가능하다. 기상 이변이나 전쟁, 팬데믹과 같은 예상치 못한 변수들로 인해 곡물 가격이 방향성을 상실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계절 변동에 따라 일정한 패턴을 보여준다. 곡물 가격은 일반적으로 파종 시기부터 수확 전의 생육 단계에 이르기까지 기상 변화와 생산 여건에 따라 불규칙하게 움직이며 상승하는 흐름을 보이는데 수확기 직전에 공급량과 재고량이 급격히 떨어지는 단경기에 이르면 연중 최고가를 형성한다. 이후 수확기에 접어들면서 가격이 급격히 하락하고 본격적인 출하가 이루어지는 시기에는 연중 최저가로 떨어진다. 출하기가 끝나고 다음 해의 파종기를 준비하는 시기가 되면 떨어졌던 곡물 가격이 다시 상승하는 흐름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현물 시장은 물론 선물 시장에서 가장 많이 거래되는 곡물로는 옥수수와 소맥, 유지작물로는 대두가 있으며 이들 품목에 대한 우리나라의 자급률은 바닥 수준이어서 식품 가공 산업, 사료 산업, 착유 산업 등에서는 원료곡의 조달을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국제 시장에서 입찰을 통해 구매 계약을 체결하고 곡물이 도입되기까지는 3개월 이상의 기간이 걸린다. 미래의 일정 시점에 도입하는 조건으로 구매 계약을 맺는데 미래의 현물가격이 계속해서 오를 것으로 예견되는 경우 공급자들이 제시하는 가격은 터무니없이 높게 형성되어 원료곡의 구매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와 같은 상황에 직면했을 때 선물 시장을 활용하는 헤지 거래로 현물가격에서의 상승분을 선물거래를 통한 차익실현으로 줄여나가는 전략을 세운다면 기대 이상으로 현물가격을 더 낮출 수 있다. 예상과 달리 선물 시장이 반대로 흘러가게 되면 역효과도 발생할 수 있지만, 일정한 기간을 정해놓고 헤지 거래를 했을 때 전체 구매 가격을 놓고 보면 실보다 득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큰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우리 기업들이 현물 시장만을 고집해 온 이유는 선물 시장을 투기의 장으로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턱대고 선물 시장에 뛰어들었다가 선물 가격이 예상과 달리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을 때 막대한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는 공포심이 자리 잡고 있다. 오히려 해외 공급업체들이 제시하는 가격에 따라 구매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더 안정적이라고 믿고 있어 선물 시장에서의 헤지를 기대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선물 시장에 대한 세밀한 분석을 통해 인식에 대한 전환을 가져올 필요성이 있다.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온 곡물 가격은 물론 수급 및 관련 외부 지표들은 미래의 가격을 예측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 미국을 중심으로 과거의 역사적인 자료들을 통해 선물 가격을 예측하는 학문적인 연구가 오랫동안 이어져 왔으며 과거의 자료들을 단순 평균하는 방법부터 계량경제 모형으로 복잡하게 분석하는 방법들도 나와 있다.
앞서 언급한 바처럼 곡물 가격은 방향성을 지니고 있기에 선물 가격 예측을 통해 미래의 현물가격이 계속해서 상승하리라 판단이 설 때 우리 기업들이 선물 시장을 통해 선택적으로 헤지하는 전략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나라의 한 해 농산물 수입액은 300억 달러(2022년 298억 달러)에 육박하고 있으며 2024년 한 해 옥수수, 소맥, 대두를 수입하기 위해 해외에 지출한 금액만 47억 달러(2022년 66억 달러)를 넘어섰다. 고곡가 시대 도입 가격의 상승은 산업 전반에 걸쳐 물가 상승을 초래하게 되므로 이들 가격을 하향 안정화하는 방법을 이제는 찾아야 할 때다.
축산신문, CHUKSANNEW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