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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성대에서>위기의 농협, 그 선택은?

이상호 본지 발행인

 

주인의 무관심·냉담으로 농협 위기 초래
구조개편은 지도 교육 외딴섬 내몰아
정부 의존 심화 불가피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진단이 제기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정치의 리더십 상실과 이로 인한 시민들의 무관심과 불신, 그리고 경제적 양극화가 위기의 주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교육행정가이자 철학자 로버트 허친스는 일찍이 “민주주의는 매복이나 암살 때문에 죽는 게 아니라 (시민들의)냉담과 무관심으로 인한 영양결핍으로 서서히 소멸한다”고 말했다. 민주주의의 작동원리와 생명력의 원천이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허친스의 예언은 위기를 맞고 있는 농협에도 유효한 경고로 봐야 한다. 농협은 창립이후 줄곧 ‘농업과 농민을 위한 조직’임을 내세워 왔지만 이를 수긍하고 열광적으로 반응(참여)하는 농민이 과연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다. 만약 농협에 대한 농민들의 일반적 인식이나 태도가 냉담과 무관심이라면 농협은 협동조합으로서 영양 결핍이 심각하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농협의 지난 역사는 이걸 아니라고 부인하기 어렵게 돼있다.
비근한 예로 신·경 분리나 지주회사체제로의 전환과 같은 조직개편은 하나 같이 개혁이란 이름으로 정부가 주도했다. 정작 당사자인 농협은 적당한 선에서 이를 수용하기 급급했고 이 과정에서 농협의 주인이며 수요자인 농민조합원의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민주주의가 (시민들의)참여와 관심, 신뢰라는 영양소를 공급받아야 작동되듯이 협동조합도 주인으로부터 나오는 이들 필수영양소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농협에 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도, 정부 주도로 농협을 개편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들 영양소결핍이 부른 것이다. 지금까지의 개혁은 결과적으로 영양소 공급 내지 확충이란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오히려 결핍을 심화시켰다. 개혁의 목적은 분명했지만 이를 달성해내기 위한 방향성이나 방법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농협에 이러한 영양소가 충만하다면 정부에 의한 일방적 개혁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정부에 의한 구조개편을 적당한 선에서 수용하기 급급했던 농협 또한 그럴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무소불위(적어도 농협에 관한 한)나 다름없는 정부의 개입이나 (협동조합으로서의)농협의 태만은 허친스가 말한 영양결핍이 부른 필연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협의 겉모양은 적어도 당분간은 건재할 것이다. 문제는 필수영양소 결핍으로 인해 언제 어떤 모양으로 또 다시 바뀔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농협의 지난 역사는 그럴수록 농민들의 냉담과 무관심이 심화되었음을 증명한다.
신·경 분리로 인해 농협은 조직운영을 위한 가용자원의 고갈 등 여러 면에서 위기를 맞았다. 100% 지분을 가졌으면서도 금융지주와는 매년 브랜드 사용료를 두고 실랑이를 벌여야 하며 경제사업 마저 출가를 앞두고 있다. 출가하는 경제사업은 어떤 식으로든 회원조합과 경합을 벌일 수밖에 없으며 이는 또 다른 문제의 시작이다.
이제 농협은 지도 교육 기능만 갖게 돼있다. 금융과 경제라는 양대 지주회사가 이를 완벽히 떠받쳐 주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수월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현시점에서 농협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다.  늦은 감은 있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걸어 보지 못한 ‘협동조합의 길’을 모색하던가 아니면 농정보조 역할이란 적당한 명분으로 정부에 기대야 한다. 물론 후자가 익숙하고 수월하다. 그런데 길게 보면 농협에도 정부에도 최선이 아니다. 그렇더라도 선택은 당사자의 몫이니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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