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신문]
최윤재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축산바로알리기연구회장
축산업이 책임져야 할 새로운 기준
현대사회에서 동물을 바라보는 시선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가구가 늘어나면서 동물을 단순한 재산이나 이용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와 함께 동물을 포함한 생명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동물복지 정책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과거에는 반려동물 보호가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농장동물, 실험동물, 사역동물(draft animal)까지 정책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동물복지가 더 이상 특정 분야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고민해야 할 문제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축산업에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가축을 기르는 산업은 동물복지를 어떻게 이해하고 실천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 논의는 어디까지 확장되어야 하는가. 최근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는 ‘원헬스(One Health)’라는 개념은 이러한 질문에 대해 하나의 중요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원헬스란 무엇인가
원헬스는 수의학 분야에서 먼저 등장한 개념으로, 사람의 건강, 동물의 건강, 그리고 지구 환경의 건강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순환 구조 속에서 작동한다는 인식에 기반한다. 이 개념의 핵심은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생명과 환경 전체를 함께 바라보아야 한다는 데 있다. 동아시아 전통 사상이나 불교에서 인간과 자연을 분리하지 않고 산과 돌 같은 자연까지도 함께 돌보아야 한다고 말하는 인식 역시 이러한 시각과 맞닿아 있다.
최근 과학에서도 이러한 통합적 시각의 필요성이 다시 강조되고 있다. 그동안 학문은 개별 현상을 미시적으로 분석하는 데 집중해 왔지만, 실제로 지구 환경과 생태계, 생명 활동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개별 요소를 넘어 전체를 거시적으로 바라보고 상호 연결성을 이해하려는 관점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다학제적 연구와 국가 간 협력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는 흐름 역시 이러한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시스템적 시각에서 보면 축산업은 사람과 동물, 환경이 만나는 지점에서 작동하는 생명 시스템의 중요한 한 축이다.
원헬스 관점에서 축산업 이해하기
원헬스 관점에서 보면 축산업은 단순히 식량을 생산하는 산업에 그치지 않는다. 가축의 건강과 사육 환경, 인간의 식생활과 공중보건, 그리고 자연환경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이들 요소는 하나의 순환 구조 속에서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다.
예를 들어 가축이 과도하게 밀집된 환경이나 열악한 사육 조건 속에서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질병 발생 위험이 높아지고 항생제 사용이 증가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인수공통감염병의 확산 가능성을 높일 뿐 아니라 환경 부담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조류인플루엔자(AI)나 아프리카돼지열병(ASF)과 같은 가축 질병은 축산업을 넘어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쳐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랜 기간 구제역과 같은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대규모 살처분이라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왔다. 물론 단기적인 방역 수단으로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 가능한 해결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원헬스적 관점에서는 오히려 동물이 질병과 환경 스트레스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사육 환경을 마련하고, 질병 예방 중심의 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대응이라고 볼 수 있다. 동물의 건강과 복지를 개선하는 노력이 결과적으로 환경과 인간의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동물복지는 축산업을 규제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축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관리 기준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생산성과 복지를 서로 대립적인 개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가축의 건강과 생산성을 동시에 높이기 위한 관리 원칙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축산업의 미래와 원헬스
원헬스가 점차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오늘날 축산업이 기후 변화와 메탄 배출 문제, 가축 질병, 육종과 번식 기술, 사육 환경, 식품 안전 등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는 다양한 과제들과 동시에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단순히 산업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사회와 자연환경이 복합적으로 연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단기적 문제 해결에 머무르는 ‘땜질식 정책’만으로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 가기 어렵다. 축산업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들을 하나의 큰 틀 속에서 바라보는 장기적인 시각이 필요해진 것이다.
물론 이러한 변화에는 초기 비용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이는 비용이 아니라 미래 위험을 줄이기 위한 투자에 가깝다. 질병 확산과 환경 오염, 산업 신뢰 하락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면 예방 중심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인식은 농가와 소비자 모두가 함께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동물보건기구(WOAH)가 동물복지의 개념을 제시하고 우리나라에서도 2015년부터 동물복지 관련 종합계획을 추진해 왔지만, 제도의 확산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원헬스적 실천은 축산업 전체의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필수적인 방향이라는 점에서, 그 필요성과 효용에 대한 사회적 공감을 형성하는 일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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