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방역사들에겐 ‘전시상황’…문명의 삶 포기했다

  • 등록 2014.03.10 10:4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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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역사의 하루… 초동방역 현장 속으로

[축산신문 이일호 기자]

 

지난 1월27일 고창 소재 종오리농장에서 고병원성 AI 발생이 확인된지 벌써 두달여 가까이 지나고 있다. 농가를 비롯한 가금산업계와 방역당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AI는 좀처럼 종식되지 않으며 그 피해는 상상할 수 없는 수준으로 불어나고 있다.
AI확산, 그리고 가금산업계가 겪는 어려움에 가려져 있지만 방역현장 관계자들의 피로도 역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방역의 최일선에서 활동하고 있기에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이하 방역본부)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다만 얻은 것도 있다. 지금까지 해외악성가축전염병 발생때와는 달리 이번 AI 사태기간동안 기계적 전파 가능성에 대한 지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적어도 의심신고 접수후의 철통같은 초동방역 시스템 만큼은 확실히 자리매김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방역본부의 존재감이 다시한번 각인될 수 있는 대목이다.
첫 AI발생농장에 초동방역팀으로 투입된 방역본부 전북도본부 서부사무소 소속 강승헌, 윤재진 방역사를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았던 지난달 말에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두명의 방역사와 동행취재를 통해 첫 발생농장 투입당시 긴박했던 상황과 초동방역의 현장으로 들어가 보았다.

 

“뚫리면 끝장” 극한 긴장 속 밤샘 반복
‘물티슈 세수’·생리현상 참는게 일상
 컵라면·즉석밥으로 끼니 해결
 고독은 또 다른 적…정신적 고통 심화
 농가 ‘따뜻한 한마디’ 가장 큰 보람

 

“단 1초라도 빨리”

강승헌, 윤재진 방역사에게 처음 의심신고가 이뤄진 고창 AI 발생농장에 투입임무가 떨어진 것은 지난 1월16일 오전 10시경. 두사람은 속옷을 준비할 겨를도 없이 방역복만 챙겨입은채 곧장 현장으로 차를 몰았다.
“교통법규는 지킨 것 같지만 솔직히 어떻게 도착했는지 생각도 안난다. 단 1초라도 신속한 대응이 초동방역의 성패를 좌우하는 만큼 오로지 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이 전부였다.”
지난 2009년 입사한 이래 벌써 10번째 투입되는 초동방역 현장이었건만 강승헌 방역사가 느끼는 긴장감은 자신의 첫 출동 때와 별 차이가 없다.
“초동방역이 무너지면 끝장이다. 한번의 실수나 태만이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올 수 있다. 천문학적인 피해의 빌미가 될 수도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을 수도 있다. 전쟁을 겪어보진 않았지만 초동방역 현장이 방역사에겐 전쟁터고, 그 기간만큼은 ‘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고관대작도 예외없다

초동방역팀의 핵심역할은 출입통제. 사람은 물론 농장내 가축이나 물품의 반출 반입을 철저히 차단하는 것이다. 하지만 방역사들의 뜻대로 현장은 움직여지지 않는다.
강승헌 방역사와는 동갑내기지만, 지난해 입사후 처음 초동방역 현장에 투입됐다는 윤재진 방역사는 “우리의 역할은 방역기관의 손과 발이 되는 것”이라며 “각계 각층 관계자들의 출입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일일이 통제하기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예외는 있을수 없다.
초동방역 현장을 찾았던 해당 지방자치단체장까지 허를 내두를 정도. 이 단체장은 “정말 FM이다. 훌륭하다”고 오히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무엇보다 취재경쟁이 극심한 기자들의 통제에 애를 먹었다.
윤재진 방역사는 “한번은 핼리캠(무인항공 카메라)을 동원해 발생농장 내부를 촬영한 경우도 있었다. 서부사무소장이 겨우 붙들어 구석구석 소독을 끝낸 후 되돌려 줄 정도 였다”고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잠자리 불편? 아예 안잔다

초동방역 현장은 들어올 때와 나갈 때 시간과 성명, 소속, 차량기록까지 방역사에 의해 일일이 기록된다. 소독도 필수다.
고창 종오리 농장에 초동방역팀이 체류한 2박3일동안 약 150명이 다녀갔다. 차량도 30여대에 달했다. 한사람, 한사람 쫓아다니다 보면 낮 시간의 경우 방역사들이 앉아있을 잠깐의 시간도 허락되지 않았다.
밤이나 새벽이라고 해서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횟수는 줄어들더라도 방역의 특성상 시간에 관계없이 왕래가 이뤄졌기 때문.
“과거 초동방역이 이뤄지던 농장에서 일부 가축이 밀반출됐다는 의혹이 불거진 사례도 있었기에 밤에는 더욱 신경이 곤두선다”는 강승헌 방역사는 “잠자리가 불편할 것이라는 걱정이 많은데 사실, 억울하다. 윤재진 방역사도 고창종오리 농장에서는 3일간 모두 합쳐봐야 몇시간도 못 잤을 것”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텐트도 무용지물

일단 초동방역에 투입되는 시점부터는 어느 곳이든 철수시까지 문명의 삶은 포기해야 하는게 방역사들의 현실이다.
방역사들은 농장내 출입이 금지다. 귀가도 안된다. 결국은 식사에서부터 마시는 물 한방울까지도 전적으로 본부지원에 의존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샤워는 고사하고 세수나 양치조차 사치일 수밖에 없다. 생리적 현상은 참는게 일상이다.
윤재진 방역사는 “세수는 물티슈 몇장으로 끝낸다. 식사의 경우 대부분 컵라면이나 햇반 정도로 해결하고 있다”며 “늘상 방역용비닐 장화까지 착용하고 있다보니 대부분 무좀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쓴웃음을 짓기도 한다.
잠을 청할만한 공간도 확보키 어렵다. 텐트가 지급되지만 농장밖에 설치해야 하는데다 장소가 마땅치 않는 경우가 많아 그나마 무용지물이 되기 일쑤다. 방역차량이 그들에겐 유일한 휴식공간이다.
방역본부의 근본적인 부족한 인력도 부담이다.
보통 3인1조로 꾸려지고, 초동방역 재투입시 2주일이 지나야 하지만 동시다발적으로 의심신고가 이뤄지는 현실하에서는 말그대로 ‘비상’ 이다.

 

전화벨만 울려도 ‘혹시’

그러나 주위에서는 방역사들이 겪을 수 밖에 없는 정신적 고통에 대한 우려도 크다.
동료가 있다고 하더라도 늘 긴장감에 빠져있기에 막상 초동방역 현장에서는 대화도 많지 않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바이러스 뿐만 이 아니라 고독과도 싸워야 하는게 방역사들의 현실이다.
“다른지역의 한 방역사는 바나나에 얼굴을 그려놓고 대화를 하면서 외로움을 견뎌냈다고 하더라. 영화에서만 나올법한 내용이 우리에겐 현실이 되고 있다.”
윤재진 방역사는 해외악성전염병이 발생한 시기에는 귀가후에도 가시방석이라고 한다. 전화벨만 울려도 혹시하는 생각에 가슴이 뛰기 시작할 정도라는 것.

 

농가 비하면 그나마 나은편

강승헌, 윤재진 방역사는 한 TV 방송프로그램에 ‘극한 직업’으로 소개될 정도로 열악한 근무환경에 대해 ‘직업’이라는 것 보다 사명감 때문에 버텨낼수 있다고 말한다.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을 수 밖에 없는 AI 피해농가는 언제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른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그래도 행복한 것 아니겠는가. 더구나 우리가 노력해서 피해농가를 한명이라도 더 줄일수 있다니...”
그렇기에  초동방역이 이뤄졌던 농가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가장 큰 보람이다.
강승헌 방역사는 “대화가 이뤄질 기회가 생길 때는 당혹감에 휩쌓여 있는 농가들에게 앞으로 전개될 상황에 대해 아는 만큼 설명해 드린다. 그러다보면 안정을 되찾는 경우도 많다”며 “처음엔 감시하러 왔느냐고 냉랭한 시선을 보내던 농가분들도 막상 철수할 때가 되면 고마웠다고 한다. 그 한마디에 그간의 피로가 싹 사라진다”고 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일호 L21ho@chuksa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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