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에서 모돈 600두 규모의 양돈장을 운영하는 A씨는 요즘 고민이 많다. 벌써 몇 년 째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농장 성적 때문이다. PSY 27두, MSY 25두에 육박하는 생산성으로 주위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고는 있지만 ‘농장성적 만큼은 세계 최고가 되고 싶다’는 A씨의 성에는 차지 않고 있는 것. “국내에서는 몰라도 덴마크나 네덜란드에 가면 평균 수준의 생산성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우리 농장의 기술이나 시설이 그들에 비해 떨어진다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런 A씨가 얼마전 나름대로 그 해답을 찾았다. 다산성모돈이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거래하며 친분을 쌓아온 종돈장과 결별해야 하는 부담감에다, 자칫 모험이 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겹치며 좀처럼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국제경쟁력 확보 앞서 치열한 농-농 생존경쟁 현실화
산자수 1두 늘면 생산비 최소 3%↓…종돈시장 ‘대세’
시설 뒷받침·다산성 맞춘 세심한 사양관리 필수
전문가들 “갈 길 명확…농장주 실천의지가 관건”
◆F1 시장 지각변동 예고
국내 양돈현장에서 다산성모돈이 뜨고 있다.
얼마전부터인가 양돈농가들이 모여 생산성을 논하는 자리라면 어김없이 산자수가 화두가 될 정도다. 그러다보니 단순히 관심 수준을 넘어 국내 종돈시장의 지각변동까지 불러올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국종축개량협회의 번식용씨돼지 이동등록 실적을 토대로 올들어 국내 종돈업계의 F1 판매량을 추정해 보면 FMD 이전과 비교해 약 20% 정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양돈산업 불황과 함께 범양돈업계 차원에서 사실상 의무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모돈감축 사업의 직격탄을 맞은 것.
다산성모돈 공급 종돈업체들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예외일수는 없지만 그 충격은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라는게 관련업계의 분석이다.
다산성을 강조해온 종돈업체의 한 관계자는 “산자수는 물론 사양관리 방법에 대한 문의가 부쩍 늘고 있다”며 “최근에는 실거래로 이어지는 사례가 늘면서 판매부진에 허덕이고 있는 여느 업체들 보다 사정이 나은 것은 사실”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이러한 추세는 F1시장에만 그치지 않고 있다.
충북에서 모돈 2천두 규모의 양돈장을 운영하는 B씨는 “최근 외부 모돈구입을 일체 중단하고 번식능력이 좋다는 순종돈을 수입해 왔다”며 “폐쇄돈군을 운영하기 위한 조치였지만 산자수를 한 마리라도 더 늘리기 위한 목적도 크다”고 설명했다.
국내 육종업체들도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적극 부응, 많은 산자수를 마케팅 전략의 전면에 내세우는가 하면 상대적으로 번식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되는 업체들의 경우 해외유전자 도입과 개량에 나서면서 이미지 개선에 주력하고 있다.
정부 지원하에 한국형종돈개발을 슬로건으로 출범한 돼지개량네트워크추진위원회도 지난 2011년부터 사업대상을 부계에서 모계까지 확대, 다산성유전자 도입에 적극 나서는 등 다산성모돈은 이제 한국 양돈산업의 대세로 굳혀지는 양상이다.
◆왜 다산성인가
다산성모돈의 필요성은 오래전부터 지적돼 왔다.
생산자단체인 대한한돈협회가 산자수 확대를 강조하면서 종돈업계의 분발을 요구해 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병모 한돈협회장은 “국내 시장을 위협하고 있는 EU 주요국가들과 비교해 평균 산자수가 4두 가까이 차이가 난다. 이는 곳 경쟁의 시작부터 4두를 지고 출발하는 것과 다름없다. 어떻게 제대로된 경쟁이 가능하겠느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의 추세는 국내 양돈산업 현실과 무관치 않다.
한국양돈산업의 궁극적인 목적지이자, 꿈의 숫자라는 PSY 30두를 실현, 국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거창한 목표는 일선 양돈현장의 농가들에게는 사실 나중 문제다.
갑작스럽게 도래한 저돈가 시대는 수입육 뿐 만 아니라 국내 양돈농가간에도 치열한 생존경쟁를 요구하고 있다. 당장 생산비 절감없이는 한치앞의 미래도 담보하기 힘든 양돈농가들이 그간 큰 비중을 두지 않았던 부분까지 세심히 살펴보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이러한 상황에 정부까지 가세, 범양돈업계 차원에서 사실상 의무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모돈감축사업은 자연히 산자수로 돌릴수 밖에 없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모돈을 줄여여만 하는 상황속에 기존의 외형규모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생산비까지 절감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보니 다산성 모돈으로 귀결되고 있는 것이다.
국내 한 육종전문가는 “이전의 폐사율은 그대로인 상태에서 산자수가 한 마리 늘어나 출하까지 이어진다면 최소한 3%의 생산비 절감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것도 사료비만 감안했을 때”라면서 “하지만 모돈의 강건성이나 위생도에 비해 번식능력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가려져 왔다. 10여년 가까이 고돈가시대가 이어지면서 웬만큼 돼지를 키워도 충분히 먹고 살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FMD 사태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심각한 국내 공급부족현상을 해소한다는 정부 방침에 따라 F1이 직수입되면서 국내산과의 산자수 비교가 자연스럽게 이뤄진데다 농장비우기와 재입식이 이뤄지면서 농장환경이 개선된 경우 다산성모돈 사육에 대한 자신감도 생기겠 됐다는 것이다.
◆아직은 이르다?
물론 국내 양돈장 현실을 감안할 때 다산성모돈이 아직 이르다는 시각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다산성 모돈을 수용할 능력이 안된다는 것.
한 사양관리 전문가는 “많이 낳는 만큼 사양관리기술과 시설도 달라야 한다”며 “그러나 지금 당장 다산성모돈의 능력이 최대한 발휘되고, 또 여기서 태어난 자돈을 제대로 키울수 있는 농장은 국내 전체의 20%도 되지 않을 것” 이라고 추정하기도 했다.
실제로 섯불리 다산성모돈을 입식해 낭패를 보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의 한 유력컨설턴트는 “다산성모돈으로 교체했다가 다시 이전 모돈으로 회귀한 농장도 흔하게 접하게 된다”며 “웬만한 농장에는 권유하기가 쉽지 않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다산성모돈과 자돈을 위한 사양관리 매뉴얼이 아직 보급되지 않은 것도 장애물로 지적되는 가운데 모돈의 번식능력만 문제삼는 것도 무리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국내 육종업체의 한 관계자는 “(우리회사의 모돈을) 다산성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농장관리가 제대로 이뤄진다면 유럽수준의 생산성까지 가능하다”며 “무조건 국내 종돈장에만 문제를 돌리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이는 곧 상당수 양돈농가들이 다산성모돈 입식을 주저하는 결정적 배경이 되고 있다.
A씨 역시 “불황속에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다. 이러한 때에 모돈 교체로 인해 농장성적까지 엉망이 되면 걷잡을수 없는 사태가 초래될 것이다. 농장입장에서는 결코 쉬운일은 아니지 않는가”라며 반문했다.
농장환경이 열악하고 성적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농가일수록 부담은 더할 수밖에 없는게 현실.
일각에서는 산자수만 강조하다 보면 돼지고기 품질이 떨어질수도 있을 뿐 만 아니라 자칫 수입종돈의 입지만을 넓혀주는 결과를 초래할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다
하지만 다산성 모돈의 저변화가 시급하다는 주장하는 이들의 생각은 다르다.
사양관리와 시설 등 전반에 걸쳐 개선이 필요한 것은 인정하지만 대세를 거스를 정도로 어려운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한 육종학자는 “흔히 다산성모돈에서 태어는 자돈들은 생체중이 200g정도 적은 만큼 반드시 강건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라며 “다만 자돈의 균일성을 최대한 확보하는게 관건인 만큼 보다 세심한 모돈사 관리가 중요한데다 양자보내기, 사료급여프로그램 등도 수정이 필요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매뉴얼이 종돈업체로부터 공급되고 있는 만큼 시행착오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별다른 경험과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외국의 다산성모돈을 들여와 실패를 경험했던 과거와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부계 영향이 큰 돼지 품질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결국 다산성모돈 입식에 따른 성패는 농장주의 의지와 노력에 달려있다는 분석이다. 이럴 경우 시설 역시 부차적인 문제에 그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이어 모돈 보다는 농장주의 능력을 먼저 강조하는 시각에 대해서도 일부 공감은 하면서도 기본적으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같은 조건이라면 산자수가 많은 모돈이 유리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외국에서는 되는데 우리는 왜 안되는가. 더구나 국내 생산성 상위 10%농가들까지도 그 번식성적이 유럽의 평균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은 우리 종돈업계도 한번쯤은 짚어봐야 할 문제다.”
그러면서 모돈교체를 검토하고 있는 농가의 경우 다산성 모돈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이해를 토대로 자신의 농장현실을 감안한 사양관리 대책을 사전에 준비,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는 접근방법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다산성모돈의 선택여부는 전적으로 농가의 몫이다. 앞서 지적한데로 실패의 가능성이 상존하는게 엄연한 현실이다.
다만 원론적인 수준이긴 하나 이병모 회장의 지적은 깊게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수입육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저돈가시대를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는 철저히 생산비 싸움이다. 시도하지 않으면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결론은 나와있지 않는가”
>> 다산성 모돈이란
산자수 많은 모돈…유럽·북미 6~7개 품종 14두 이상
국내 농가 평균성적 11두 못미쳐…“13두 이상은 돼야”
말그대로 산자수가 많은 모돈을 의미한다.
전세계적으로는 국가단위의 유전자교류가 이뤄지고 있는 유럽이나 북미지역 다국적기업에서 보유하고 있는 6~7개 정도의 품종들이 다산성 모돈으로 꼽히고 있다. 이들이 양돈현장에서 생산하는 평균 실산자수는 적어도 14두 이상인 것으로 파악되지만 다만 지역별로 상대성이 큰 만큼 다산성모돈이나 그 기준도 크게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있다.
그렇다면 국내 현실로 접근한 다산성모돈의 기준은 어떻게 될까.
대한한돈협회의 2012년 전국한돈농가 전산성적 분석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양돈농가들의 평균 실산자수는 11두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해당지역의 평균치 보다 적어도 2두이상은 많아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견해를 정리해보면 현재 시점에서 평균 실산자수가 최소 13두 이상돼야 하는게 적절하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