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MD는 축산농가에 있어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는다. 그 충격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농가들은 이를 극복하는데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오랜 시간이 걸린다. 더군다나 낙농가들에게는 오랜 기간 공을 들여 사육해온 젖소를 한순간에 잃고 다시 일어선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포천시 영중면에는 FMD를 두 차례나 겪고도 다시 일어서 희망을 이어가고 있는 거사목장(대표 김영석·장미향)이 있다.
’82년 젖소 1마리서 시작…평균 1.5톤 납유 규모로 성장
아내 장미향씨 하네뜨 치즈공방 열어 제2의 도약 준비
’09년 FMD로 57두 잃고 재입식 6개월만에 45두 살처분
젖소 1마리로 시작해 탄탄한 목장으로 성장거사목장은 82년에 지인의 권유로 젖소 1마리를 입식한 것을 시작으로 낙농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젖소가격은 만삭우 한 마리에 400만원을 호가할 정도로 비싸 규모를 늘리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규모를 늘려나가 평균 1.5톤 정도를 납유 할 정도까지 성장했다.
어려운 여건이었지만 조사료 장비를 구입해 자급 조사료를 생산하고, 남는 시간 틈틈이 사료작물을 재배해 내다판 돈을 목장 운영비에 보탰다.
김영석 대표는 “당시 목장의 규모로는 수익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목장에서 사용할 조사료를 재배하고 남는 시간에는 인근 농가의 사료작물 재배작업을 대행하거나 사료작물을 재배해 공급하는 일을 해서 모자란 소득을 보충할 수 밖에 없었다”며 “고단한 일이었지만 목장이 커나가는 것에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젖소를 시작하고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2009년에는 오랜 기간 치즈공부를 해온 아내 장미향씨와 함께 일하기 위해 목장인근에 하네뜨 치즈공방을 열어 제2의 도약을 준비했었다.
1차 FMD로 57두 매몰
시련은 갑자기 찾아왔다.
2009년말 포천지역에서 발생한 FMD로 치즈공방이 막 문을 열고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해 보기도 전인 2010년 1월 14일 당시 사육 중이던 젖소 57두를 전부 매몰하는 아픔을 겪었다.
당시 상황을 회상하면 억울한 생각도 든다.
목장에 감염축이 발생한 것이 아니라 역학조사결과 당시 FMD 병원균 전파의 원인으로 지목된 수의사가 거사목장을 방문했다는 이유 때문에 애지중지 사육하던 젖소 전부를 차가운 겨울 땅에 묻을 수 밖에 없었다. 더 이상의 확산을 막기 위한 선제적 살처분 조치였다.
김 대표는 당시의 상황에 대해 “억울한 생각이 없던 것도 아니지만 나 혼자의 욕심으로 살처분을 거부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주변 농가들에게 피해를 주어선 안 된다는 생각에 정부의 조치에 순순히 따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살처분 이후 보상가격을 책정하면서 갈등을 빚었다. 당시 젖소에 대한 보상기준은 농협중앙회에서 조사하는 젖소 거래가격을 기준으로 삼았다. 문제는 이 가격이 시중 거래가격보다 20∼30% 낮게 책정된다는 것.
정부와 끈질긴 협상을 통해 보상기준을 조정하고 문제가 일단락 됐지만 지금 되짚어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아픔 딛고, 다시 의욕적으로 재기했지만 6개월 만에 또 다시…
아픔은 컸지만 쉬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FMD가 종식된 바로 직후인 5월부터 젖소를 입식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화성에서 목장을 폐업하는 농가로부터 30마리를 구입할 수 있었고, 높은 값에 무리를 해서라도 입식을 서둘렀다. 쉬었던 기간의 손해를 만회해야 한다는 조바심에 목장 규모를 매몰당시보다 더 키웠다.
안타깝게도 그 해 겨울은 FMD가 전국을 휩쓸었다. 포천도 피해가지 못했다. 재입식 6개월만인 2011년 1월에 45마리에 대해 살처분 판정을 받았다.
재기는 더욱 어려웠다.
FMD의 피해가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부족해진 원유를 공급받는다는 목적으로 유업체들이 쿼터를 풀면서 젖소거래가격이 치솟았다. 새로 젖소를 구입하기 위해서는 마리당 살처분 보상금에 250만원을 얹어야 했다. 그나마도 쓸만한 젖소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그렇게 어렵게 다시 일어섰다.
아픔 딛고 치즈공방에 몰두…품평회서 금상 3연패 실력 입증
세계 최고급 국산 원유에 10년 노하우 접목…품질 입소문
치즈카페 2곳서 발효유 등 유제품 판매…추가개점 준비도
하네뜨치즈 공방으로 재도약의 길을 찾다첫 살처분 이후 3년이 지났다. 아직도 목장 옆에는 지난 2011년 젖소를 묻은 매몰지가 남아있다. 상처는 다 아물지 않았지만 넋 놓고 앉아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더욱 열심히 일하게 된다.
부인 장미향씨가 대표를 맡고 있는 하네뜨 치즈공방은 빠르게 이름이 알려지면서 희망의 빛을 보여주고 있다. 10년 가까이 치즈를 공부해온 장미향 대표는 목장형유가공연구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전국치즈품평회에서 3회 연속 금상을 받기도 했을 만큼 실력을 입증받았다. 거사목장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되고도 남을 정도다.
장미향 대표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는 “전 세계에서 최고급 원유가 생산되는 곳이 바로 우리나라 낙농목장이다. 이 목장에서 생산되는 신선한 원유로 만든 치즈가 어떻게 맛있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목장형 유가공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치즈와 가공품들이 꾸준히 개발 확산되고 있는 추세기 때문에 머지않아 유제품 판매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치즈 생산뿐 아니라 영업, 홍보, 총무, 품질관리 등 일인다역을 소화해야 하지만 치즈를 만드는 것이 즐겁고, 이렇게 만든 치즈를 소비자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피곤이 싹 가신다고 말한다.
“소비자들로부터 저렴한 가격의 원료를 사용하면서 비싼 가격에 상품을 판매한다는 오해를 받는 것은 안타깝다”며 “일반 유업체처럼 잉여원유를 원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면 생산비를 낮출 수 있다. 정부에서 조금만 배려한다면 원유 소비시장을 크게 성장시키는 길이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치즈카페의 성공과 한국형 낙농업을 실현포천 아트벨리에는 하네뜨 치즈카페가 있다.
이 카페에서는 커피 및 음료와 함께 하네뜨 치즈공방에서 만든 발효유와 치즈를 원료로 한 다양한 메뉴가 구비돼 있다.
치즈를 곁들인 빵에 발효유 한잔은 건강까지 생각하는 영양간식으로 인기가 높다. 이미 먼 곳에서도 소문을 듣고 찾아올 정도로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현재 치즈카페는 아트벨리와 송우리 두 곳에서 운영 중이지만 추가 개점도 준비 중이다.
김영석 대표의 목표는 크지 않다. 하지만 쉽지도 않다.
“우리나라의 실정에서 무지막지하게 큰 규모로 낙농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때문에 우리의 상황에 맞는 한국형 낙농업을 실현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목표”라며 “후세대의 낙농은 아마도 어떻게 한국형 낙농업에 가깝게 가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본다. 나 혼자가 아닌 협력을 통해 경쟁력과 가치를 높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아 고민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포기하기 전에는 끝난 것이 아니라는 말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거사목장과 하네뜨 치즈공방의 모습에서 희망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