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초 대기업 축산금지…정부지원 발판 전업농 고속성장 |
본지가 처음 발행된 1985년은 사양기술에서부터 제도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시도가 이어지면서 한국의 ‘현대양돈산업" 태동기가 됐다. 이시기의 주역은 당시 대다수를 차지했던 부업규모가 양돈농가가 아닌 기업형 양돈장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80년대말 대기업의 축산업 규제에 따라 크게 위축되기는 했지만 70년대 후반 용인자연농원을 시작으로 본격화된 기업자본의 양돈시장 유입은 80년대 중반에 이르러 크게 활성화됐다. 이들 기업형 양돈장들은 단순히 다두사육이라는 외형 확대에만 그치지 않았다. 풍부한 인력과 자본을 토대로 해외의 선진양돈기술 도입을 꾸준히 시도하면서 90년대 ‘기술양돈’ 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사반세기가 흐른 지금도 국내 양돈업계로서는 좀처럼 기대하기 힘든 SPF돈 사육이 시도되거나 수정란이식, 종돈의 계통조성에 성공한 사례 등은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특히 기업형양돈장은 국내 양돈업계의 인력양성소로 지대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이론과 실기를 두루 갖춘 기업형양돈장 출신 양돈인들은 80년대 후반 전업양돈의 주축세력으로 등장, 한국양돈사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하지만 80년대 중반 기업양돈에 대한 거부감이 점차 확산되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85년 마련된 정부의 양돈계열화 육성정책은 양돈농가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히며 국내 양돈업계가 큰 논란에 휩쌓이기도 했다. 관주도의 종돈시장에도 민간 종돈장이 속속 출현하기 시작했다. 미국이나 대만, 일본, 호주산이 주류를 이루던 수입종돈 역시 1982년 유럽산 수입이 허용되면서 더욱 다변화 됐다. 다만 변변한 검역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데다 관리도 허술, 검역과정에서 질병이 확산되거나 폐사되는 사례가 속출했으며 80년대 후반에는 오제스키병과 PRRS가 유입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 시장개방 정부지원 본격화 계기 하지만 ’90년대 들어 사정이 달라진다. ’89년 축산법 개정으로 대기업의 축산업 참여가 금지되자 축산물 수입증가와 가축분뇨에 대한 규제강화, 인건비 상승 등으로 경영환경이 어려워진 기업형양돈장들은 급격한 쇠퇴기를 맞게된다. 천광산업과 원광산업, 상천농원, 대영농산 등 손꼽히는 기업형양돈장들이 문을 닫은데 이어 허가규모 상한제로 모돈 1천두 이상 사육이 금지된 ’91년 기업형양돈장의 상징인 용인자연농원까지 폐쇄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기업형양돈장의 몰락과 함께 한국양돈산업의 주도세력을 떠오른 전업양돈농가들은 한국경제와 더불어 고속성장을 구가했다. ’93년 UR협상 타결과 ’95년 WTO 체제 출범은 돼지고기 시장 개방이라는 거센 파도가 국내 양돈산업에 몰아치는 결과를 가져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속에 전업양돈농가들의 시설현대화와 사육규모가 크게 확대되는 결정적 배경이 됐다. ’91년 첫 시행된 ‘육류등급제’는 증산 일변도의 국내 양돈산업에 품질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시작한 단초가 되기도 했다. 민간종돈장들의 경우 외국의 고능력 종돈을 앞다퉈 수입, 양돈농가들에게 공급하면서 생산성 향상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국가단위의 개량체계 구축없이 수입돈 의존한 종돈개량 추세는 ‘종돈속국’을 고착화 시킨데다 외래질병 유입으로 TGE와 오제스키병, PED로 인해 전국의 양돈장들이 몸살을 앓는 근본원인이 됐다. 이런 가운데서도 검증되지 않은 외국문물까지 무분별하게 도입, 적잖은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지만 생산성 향상을 위한 선진지 시찰과 각종 교육을 통한 선진기술 도입이 활발히 이뤄지면서 ‘기술의 양돈산업’이 자리매김하는 시기가 됐다. 더욱이 일본시장을 중심으로 한 돼지고기 수출 활성화는 ’93년부터 시작된 수출보조금 사업 등 정부의 품질개선 대책과 더불어 국내 양돈산업 기술을 한단계 더 끌어올리는 기폭제가 됐다. 특히 구제역이 발생한 대만의 일본수출 중단은 국내 수출의 호재로 작용하면서 ’99년에는 돼지고기 수출액이 3억4천만불에 달하며 효자상품으로 부상하기도 했다. ■ 양적성장 치중…부작용에 ‘몸살’ ’98년 마침내 한육우를 제치고 축산업 생산액 1위 품목으로 부상하는 등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했던 국내 양돈산업은 2000년대들어 일대 전환기를 맞게된다. 생산자중심으로 이뤄져왔던 이전의 산업 구조에서 벗어나 소비자가 중심이 되는 이른바 ‘돈육산업’으로 변신이 본격화된 것이다. ’00년 구제역 발생과 ’02년 구제역, 돼지열병 재발에 따라 돼지고기 수출이 중단된데다 시장전면 개방을 전제한 칠레, 미국, EU 등 양돈강국과의 FTA 협상타결로 수입돼지고기와 차별화를 통해 국내 소비자들로부터 선택받지 않을 경우 지속가능한 양돈산업을 기대할수 없는 시대적 상황이 그 배경이 됐다. 이에따라 국내 양돈업계는 수입돼지고기에 대응하기 위한 생산비 절감과 소비자 눈높이에 맞출수 있는 고품질 안전축산물 생산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쫓아야 하는 상황. 하지만 수출중단과 함께 돼지고기 품질에 대한 관심도 상대적으로 적어진데다 장기적인 계획없이 사육규모 확대와 생산에만 집중해온 이전의 국내 양돈산업 구조는 200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오며, 갈길 바쁜 양돈업계의 발목을 잡게 된다. 양돈현장의 밀사 추세는 소위 ‘4P’로 불리우는 각종 소모성질병으로 인한 생산성 저하로 이어지면서 지난 ’06년 MSY가 13두대로 떨어지기도 했다. 이는 곧 돼지출하 감소와 함께 돼지고기 수입 증가에 따른 시장잠식을 가속화, 돼지고기 자급률이 70%대로 급전직하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위기는 그러나 국내 양돈산업에 또한번의 기회로 다가오고 있다. 브랜드 사업의 활성화속에서 MSY 20두를 훌쩍 뛰어넘는 양돈농가들이 속속 출현하고 있을 뿐 만 아니라 고품질 안전축산물을 요구하는 시대적 추세에 부응하기 위한 양돈농가들의 노력은 HACCP지정 농장 및 무항생제 사육농장의 확산으로 이어지면서 이젠 ‘친환경 양돈’의 실현도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가질수 있게 됐다. 돼지고기 수출향상을 위한 민간차원의 돼지열병 청정화 사업이 본궤도에 오른 가운데 끊임없는 시도끝에 "09년 9월 제주산 돼지고기 일본수출 4년10개월만에 재개된데 이어 7월에는 국내 최초로 돈육가공품까지 일본 진출에 성공하면서 수출양돈의 부활을 위한 물꼬를 텄다.지난 2004년 국내 최초로 출범한 양돈 의무자조금사업은 스스로의 힘으로 난관을 극복하고 미래를 개척해 나가겠다는 양돈농가의 의지가 결집된 것으로 한국양돈산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국내 양돈산업은 지금 국경없는 무한경쟁시대에 나서기 위한 자신과의 싸움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 가축분뇨 ‘폐수’에서 ‘자원’으로 한편 돼지사육두수의 증가는 필연적으로 가축분뇨 배출증가로 이어지면서 환경오염 논란을 야기시켜 왔다. 정부는 91년 9월 오수·분뇨 및 축산폐수 처리에 관한 법률을 통합한 이후 거듭된 법 개정 과정을 거쳐 양돈농가에 대한 압박의 강도롤 높여왔다. 환경에 대한 관심에 비례해 가축분뇨에 대한 규제도 강화돼 온 것. 급기야 ’99년에는 정부의 집중 단속이 이뤄지면서 양돈농가들이 범법자로 전락, 무더기 구속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더욱이 지방자치시대의 개막과 함께 초법적인 위력을 가지게 된 이른바 ‘민원법’의 부상은 수십년간 터를 닦아온 양돈장까지 퇴출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설상가상으로 ’05년에는 악취관리법까지 발효되면서 양돈농가들을 더욱 위축케하는 배경이 됐다. 다행히 이듬해인 ’06년 9월 가축분뇨를 ‘자원’의 시각에서 접근한 ‘가축분뇨 관리 및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이 공식 공포되면서 ‘폐수’로 치부돼온 가축분뇨가 자원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법적 근거가 마련, 자원화를 통한 자연순환농업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가축분뇨를 활용한 에너지 생산까지 적극 추진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국내 양분공급 과잉과 저질액비 논란은 자원화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을 뿐 만 아니라 정부의 2012년 해양배출 중단 방침에도 불구, 일부지역에서는 별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이에따라 가축분뇨 처리문제는 여전히 양돈장의 존립을 불안케 하는 제1의 위협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