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 낮은 젖소만 거래…보상금으로는 초임우 구입 불가능 구제역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던 지난 1월 방역당국은 현재 시가로 보상할 테니 염려 말고 살처분에 동참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누가 자식처럼 키우던 가축을 땅 속에 묻자는데 쉽게 동의할 수 있을까? 그러나 구제역 상황이 워낙 급박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대부분의 농가들이 살처분에 동참했다. 여기에는 비상대책상황실을 찾은 방역당국 관계자는 물론 경기도지사, 국회의원 등이 한결 같이 충분한 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농가들은 조금이나마 위안이 됐고 내심 기대도 했었다. 그로부터 2개월이 지난 지금 대부분의 낙농가들은 지금 후회와 배신감을 느끼며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물론 정부에서 발표한 보상대책에는 고능력우 인정, 유대 손실분 보전 등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되기는 했다. 하지만 최근 낙농업을 둘러싼 요인들을 감안하면 충분한 보상은 고사하고 오히려 막대한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분명 낙농업은 타 축종과 달리 최종 산물이 가축이나 고기가 아닌 젖소를 이용해 우유를 생산하는데 있다. 때문에 낙농가들의 주 소득원인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송아지 생산에서부터 첫 우유를 생산하기까지 최소한 28개월 이상의 투자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목장을 처음부터 시작하면 28개월 후에나 소득이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곧 바로 우유를 생산할 수 있는 젖소를 구입해 이용할 수 있으나 이 경우 민감한 젖소의 특성상 도태율이 매우 높아 완전히 적응하는 개체는 채 50%를 넘지 못하며 이마저도 사용연한이 2년을 넘지 못하고 도태되기 일쑤다. 그런데 현재 정부의 보상기준은 이러한 낙농업의 특성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때문에 낙농가들이 바라는 것은 결코 무리한 수준이 아니라 젖소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근거한 보상 대책을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현재 거래되고 있는 산지 가격 자체가 잘못됐다. 젖소의 경우 가축시장 등을 통해 거래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상인들에 의한 중개거래가 대부분이다. 이 경우도 판매자와 구매자가 있을 경우에만 거래가 이뤄지고 일반거래 자체가 전무한 상황이다. 낙농가의 경우 쿼터에 의해 사육규모를 결정하게 되는데 우수한 개체를 중심으로 사육하고 나머지 목장 내에서 능력이 떨어지는 개체를 매물로 내놓는다. 때문에 현재 거래가격은 목장에서 이용할 수 있는 개체가 아니라 키우기에는 생산성이 떨어지고 도태시키기에는 조금 아까운 개체들의 가격이란 것이다. 그런데 보상가격이 이 개체들의 거래가격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 낙농가들의 불만이다. 다시 말해 고능력우는 고사하고 목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개체는 거래 자체가 전무하고 구입한다고 하더라도 살처분 보상금으로는 구입 자체가 불가능하다. 상황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100% 시가 보상이라는 덫에 걸려 낙농업을 모르는 사람들은 낙농가들의 요구가 무리한 요구라고 오해하기 쉽다. 왜 100%시가 보상을 해주고 거기에 유대 손실분까지 6개월치나 보상해주는데 무엇이 문제냐는 식이다. 이로 인해 낙농가들은 대놓고 보상금이 적다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조심스럽다. 하지만 지금 당장 낙농가들이 보상금을 더 받아내려는 얄팍한 요구가 아니라 적정한 보상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다. 더욱이 살처분보상안의 기준을 마련할 당시 업계 대표로 협동조합, 협회 관계자들만을 참석시키고 실제 피해농가들은 단 한사람도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것이 더욱 문제다. 뿐만 아니라 기준안 마련 이후에도 의견 청취를 위해 행정고시를 실시했지만 단지 인터넷을 통해 공개함에 따라 정보력이 약한 대부분의 낙농가들은 이 같은 사실조차 몰라 의견을 개진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향후 언제 어디에서도 질병은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보상 기준 자체가 잘못됐다면 누가 방역당국의 방역조치에 협조할지 의문이다. 보상금을 무리하게 많이 달라는 얘기가 아니다. 또 보상금을 갖고 호의호식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살처분 당한 농가들이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적정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농가가 질병이 발생해 살처분 당할 경우 손해가 뻔히 보이는데 과연 누가 살처분에 동참하고 질병청정화에 노력할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