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한·미 FTA 협상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가운데 지난 2일 외교통상부 주최의 한·미 FTA 공청회가 무산됐다. 이날 공청회가 무산된 것은 공청회의 본래 목적인 다양한 이해 계층의 의견을 듣기 위한 공청회라기보다는 이미 ‘짜여진 각본’에 따른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농축산단체들의 분노에 찬 이의 제기로,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럴만도 한 것이 이날 오전 공청회에 이어 오후 대외경제장관회의를 갖고 다음날인 3일 한·미 FTA 협상 개시를 선언할 것이라는 소식이 공청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전해졌던 것이다. 다시 말해 이날 공청회는 공청회다운 공청회로서 의미를 상실했으며, 그런 만큼 농민단체들의 이의 제기와 공청회 무산은 예고된 것이나 다름 없었던 것이다. 이날 공청회는 굳이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공청회 날짜를 설 연휴가 끝난 지 불과 이틀뒤로 정했다는 점, 공청회 시간 또한 오전 9시 30분에 시작함으로써 지방에 있는 농민들이 참석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는 점, 거기다 공청회 주제 발제와 토론에 걸리는 시간을 오전 9시30분부터 정오 12시까지 불과 2시간 30분으로 타임스케줄을 잡은 점도 주최측이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을 충분을 듣겠다는 공청회 목적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는 지적이다. 애당초 한·미 FTA 체결에 따른 득과 실을 저울질할 때 국내 농축산업과 영화산업이 많은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됐었다. 따라서 한·미 FTA 협상을 위한 절차 중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을 듣는 공청회는 그 목적에 충실하게 일정을 짜고, 공청회 결과에 따라 한·미 FTA 협상 여부를 결정하려는 우리 정부로서 최소한의 성의라도 보여야 했다. 그럼에도 외교통상부는 그런 성의는커녕 농축산인들의 이해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한 ‘밀어붙이기’식 절차를 진행함으로써 이날 농민단체 기자 회견중 어느 단체장의 지적처럼 ‘외교통상부가 매를 번’셈이 됐다. 한·미 FTA 협상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정말 이런 식으로는 안 된다. 스위스의 경우 미국과의 FTA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스위스가 그런 과감한 결정을 내린데는 스위스 농민을 보호하기 위한 정부의 의지가 상당히 작용했다는 것이 농민단체들의 주장이고 보면 우리 정부도 무조건 한·미 FTA를 받아들일 것은 아니라고 본다. 설령 한·미 FTA에 따른 국익이 크다고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많은 피해가 우려되는 분야에 대한 보완대책을 충분히 강구한 다음 그 이해 당사자를 설득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노력이 절대 필요하다 하겠다. 그런 점에서 외교통상부의 이번 한·미 FTA 공청회는 정부가 우리 농축산인들을 보는 시각이 어떠한 지를 보여 준, 실망스런 공청회였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우리 정부의 수준이 과연 이 정도밖에 안되는가 하는 자괴감마저 준다. 어쨌든 한·미 FTA 공청회 무산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 협상 개시가 3일 새벽(미국 현지 시간 2일 오후) 공식 선언됐다. 농축산인들의 목소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예정된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다. 농축산단체들의 대응이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