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신문]
김민수 대표
애그스카우터
농업경제학 박사
2025년 1월 20일 제47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해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를 천명하고 전 세계를 대상으로 관세 전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트럼프 1기 때는 대중국 견제 장치로 중국과 관세 전쟁을 치렀다면 이번에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 규모나 파장은 어마어마하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자유무역질서가 훼손되고 미국 중심의 보호무역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중국, 캐나다, 멕시코에 대해 추가 관세를 부과했으며 지난 4월에는 미국산 상품에 대한 상대국의 관세나 비관세 장벽을 고려해 국가별 상호관세를 발표했다. 고율의 관세를 책정하되 협상을 통해 관세율을 낮춰주는 전략으로 상대국으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유치함으로써 미국의 제조업 재건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힘을 실으려 하고 있다.
주요 무역 상대국은 미국과의 무역협상을 통해 관세율을 낮추는데 사활을 걸고 있는데 무역 손실로 인한 경제적 위기가 그 나라의 정치 체제에 큰 변화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우 2026년 11월에 치러질 중간선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으며 국정 동력 유지와 정권 재창출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 무역협상 카드로 상대국에 미국산 농산물의 개방을 요구하고 있다. 세계 1위 농업대국인 미국에서의 팜벨트(미 중서부 농업지대) 표심은 재선이든 중간선거든 선거 결과에 중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재선이나 중간선거를 앞두고 농민의 표심을 얻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왔다. 미소 냉전이 치열했던 시절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소련과의 곡물 거래로 재선에 성공했던 유명한 사례가 있다. 당시 닉슨 대통령은 미소 관계의 긴장을 완화하고 협력을 끌어내기 위해 1972년 5월에 전후 최초로 모스크바를 방문했으며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의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가졌다. 여기에서 미국과 소련 양국은 별도로 곡물 거래 협정을 맺었는데 닉슨 대통령은 소련과의 관계 개선을 통한 소련 길들이기 목적 이외에 재선을 앞두고 농부들의 표심을 얻고자 하는 목적도 가지고 있었다. 브레즈네프 공산당 서기장 역시 극심한 가뭄과 작황 부진으로 인해 식량난을 겪고 있는 인민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미국의 곡물 지원이 절실히 필요했다. 모스크바 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닉슨 대통령은 향후 3년간 소련으로 7억5천만 달러의 곡물을 지원하는 예산안에 서명했는데 당시 이 규모는 미국 곡물 생산량의 30%, 미국 곡물 소비량의 80%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이었다. 닉슨 대통령은 소련과의 곡물 거래 협정으로 농가의 표심을 얻기에 충분했으며 1972년 11월 재선 투표 결과 49개 주에서 승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기에서 재선에 실패했던 직접적 원인은 코로나19에 대한 대응 실패였지만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한 중국의 미국산 농산물 수입 배제로 직격탄을 맞은 농가의 표심 이탈도 문제가 됐다. 2기에 들어서서는 국제 곡물 시세 하락과 수출 경쟁 심화로 인한 미국의 수출 부진이 또 하나의 문제가 되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협상 카드에는 상대국의 미국산 농산물 특히 곡물의 수입 확대도 포함되어 있다. 일찌감치 베트남은 3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농산물 구매 협약을 체결했으며 인도네시아도 미국과 옥수수, 대두, 에너지 제품 등을 포함한 340억 달러 규모의 무역협정을 맺었다. 방글라데시도 미국과의 무역협상으로 향후 5년 동안 미국산 소맥을 매년 70만 톤씩 구매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곡물 수입국의 입장에서는 국내 생산 농가를 보호하고 식량 주권을 완전히 빼앗기지 않기 위해 적절한 가격으로 부족분을 수입해야만 한다. 미국의 상호관세 위협으로 인해 미국산 농산물을 대거 의무적으로 수입한다면 자국의 농업 붕괴를 초래하게 될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정권이 바뀌는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도 발생할 수 있다.
일본도 미국과의 무역협정을 통해 5천500억 달러 투자와 8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농산물을 구매키로 했는데 중요한 것은 미국의 압박이다. 무역협상에 따른 후속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미국 정부는 일본의 쌀 수입 확대와 농산물 관세 인하를 대통령 행정명령에 담겠다는 의향을 일본 정부에 전달해 일본 사회는 발칵 뒤집혔으며 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입지는 흔들리고 있다. 이 문제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며 우리에게도 위협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미국과의 무역협상에서 미국에 3천500억 달러 규모를 투자하는 조건으로 관세 인하의 혜택을 받았다. 우리 정부는 민감 품목인 쌀과 소고기에 대해서는 시장을 추가 개방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으나 미국은 한국이 레드라인(한계선)으로 설정한 쌀, 소고기 등 농축산물의 수입을 확대키로 했다고 주장하는 등 이견을 보였다. 이에 대한 후속 논의가 이루어져야 하는 상황에서 미국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도 쌀을 포함한 농산물 추가 개방을 적극적으로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정권 교체가 이루어진 지 이제 만 3개월이 되어가고 있는 현 정부에 큰 파고가 들이닥칠 기세다. 과거 한미 FTA 협상에서 보여줬던 쌀 시장 사수를 위한 궐기 대회는 우리의 식량 주권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미국과의 이해관계가 맞아 쌀의 개방만은 막을 수 있었으나 지금의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지금 미국이 일본에 압력을 가하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같은 잣대로 계속해서 들이댄다면 현 정부는 이 사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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