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시대 양봉산업, 생존 전략 시급하다

  • 등록 2025.08.28 10:4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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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신문]

 

이 시 혁 교수
서울대학교 농생명공학부

 

2025년 여름, 전국적으로 40℃를 웃도는 불볕더위가 연일 이어지며 기후변화의 파급력이 다시금 실감되고 있다. 이러한 이상 고온 현상은 인간의 건강뿐 아니라 농업과 축산업 전반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특히 양봉산업은 그 구조적 특성상 기후 위기의 최전선에 놓여 있다. 극심한 외기 온도(38~46℃)는 봉군(벌무리) 붕괴의 원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중에서도 여왕벌의 생식능력 저하는 봉군 유지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위협으로 부상하고 있다.

 

고온 스트레스가 여왕벌과 봉군에 미치는 영향
여왕벌은 군집 내 유일한 번식 개체로서, 하루 평균 2천여 개의 알을 산란하며 봉군의 유지와 성장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여왕벌의 생식 생리는 온도 변화에 극도로 민감하다. 꿀벌은 벌통 내부 온도를 약 35℃ 정도로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여왕벌의 최적 생식 온도와도 일치한다. 그러나 외부 기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면 벌통 내부 온도 역시 35℃를 초과하게 되고, 이로 인해 여왕벌의 저정낭 내 정자 생존율이 급격히 저하되며 수정률 또한 감소한다. 수정되지 않은 무정란은 수벌로 부화하게 되며, 수벌은 꿀 수집이나 유충 육아 등 군집 유지에 기여하지 않기 때문에 노동력 부족을 초래한다. 더불어 고온 스트레스는 여왕벌의 산란량 자체를 감소시키며, 일부 개체는 산란을 중단하거나 봉군을 이탈하는 행동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봉군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다행히 꿀벌들은 집단적 행동을 통해 열 스트레스를 완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일벌들은 날갯짓을 통해 통풍을 돕고, 물을 운반하여 벌통 안에 뿌려 증산에 의한 냉각을 유도한다. 일부는 벌통 밖으로 몰려나와 ‘비어딩(bearding)’이라 불리는 수염 모양의 군집을 형성하여 내부 발열을 감소시킨다.
이러한 협력 덕분에 벌통 내부의 번식 구역은 일정한 온도로 유지되어 여왕벌이 간접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 그러나 외부 기온이 지나치게 높을 경우, 이들의 노력만으로는 내부 온도 조절이 한계에 부딪힌다. 이 과정에서 일벌들은 과도한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며, 꿀 수집 등 외부 활동 시간이 줄어들어 생산성이 저하된다. 결과적으로 양봉 농가는 꿀 생산량 감소, 여왕벌 교체 비용 증가, 봉군 붕괴 등 복합적인 피해를 입게 된다.

 

기후 적응형 양봉 관리 방안
이러한 고온 스트레스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벌통의 위치와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 벌통을 직사광선이 닿지 않는 그늘진 장소로 옮기거나 차광막을 설치하면 내부 온도 상승을 억제할 수 있다. 또한 벌통의 환기 구조를 강화하거나 바닥을 메쉬 형태로 바꾸면 공기 흐름이 원활해져 열 축적을 줄일 수 있다.
벌통 외부에 흰색 페인트를 칠하거나 단열재를 덧대는 것도 태양열 흡수를 줄이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수분 공급 역시 꿀벌의 고온 스트레스 완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벌통 근처에 깨끗한 물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면 일벌들이 물을 운반하여 벌통 내부에 뿌려 증산 냉각을 유도할 수 있다. 이는 온도뿐 아니라 습도 유지에도 도움이 되며, 여왕벌의 산란 환경 안정화에 기여한다. 벌통 내 개체 수가 과밀할 경우 내부 발열이 증가하므로, 적절한 분봉을 통해 밀도를 조절하는 것도 필요하다. 특히 고온기 이전에 분봉을 유도하면 벌통 내 열 발생량을 줄이고 여왕벌의 스트레스를 완화할 수 있다. 여왕벌의 생식능력 저하가 감지될 경우, 산란량을 모니터링하여 교체 시기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불어 양봉장 전체의 환경을 개선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벌통 주변에 나무나 덩굴식물을 심으면 자연 차광 효과와 함께 미세 기후 조성에 도움이 되며, 벌통 위에 간이 지붕을 설치하면 태양열 차단과 빗물 보호 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

 

기후변화 시대 양봉산업의 생존 전략
무더위는 단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기후 위기의 일상화로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다. 양봉산업은 단기적 피해 복구를 넘어, 기후 적응형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적 지원, 과학기술 기반의 현장 적용, 그리고 양봉인의 자발적 대응이 함께 이루어질 때만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여왕벌은 작지만, 생태계와 식량안보를 지탱하는 ‘열쇠’와 같은 존재다. 그 한 마리의 생식능력 저하가 결국 우리의 식탁과 농업 경제에 파급효과를 가져온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과학에 기반한 대응과, 더 나은 공존을 위한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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