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여름, 축산 농가는 폭염과 장마에 대비하느라 분주하다. 최근에는 여기에 매개체성 질병(vector borne disease)이라는 새로운 위협까지 더해지면서, 축산농가의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모기, 진드기, 파리 등 질병을 옮기는 매개체에 의해 발생하는 이들 질병은 가축의 건강뿐 아니라 농가의 경제적 피해로 직결되기 때문에 더욱 심각한 문제다.
과거보다 길어지고 고온다습해진 여름 날씨는 단순히 가축의 사료 섭취량 감소나 증체율 저하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 몇 년 사이, 국내 축산현장에는 이전에는 보기 어려웠던 매개체성 가축질병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럼피스킨병, 아까바네병, 유행열, 일본뇌염 등이 있다. 기후변화로 국내 평균 기온이 상승하면서 흡혈곤충인 모기, 진드기, 등에모기(Culicoides) 등의 연중 서식 기간이 길어지고, 활동 가능 지역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실제 2023년 10월, 국내 최초로 ‘럼피스킨병’이 충남 서산의 한 한우농가에서 발생했다. 이 질병은 모기와 흡혈 파리 등 매개곤충이나 감염된 개체와의 접촉을 통해 전파되며, 감염 시 우유량과 체중이 감소하고 가죽이 손상되는 등 큰 경제적 피해를 유발한다. 지금까지 국내 발생이 없었고, 주로 아프리카나 중동 지역에서 유행하던 병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서해안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됐고, 정부는 즉시 위기경보 ‘심각’ 단계를 발령해 전국 소에 대한 긴급 백신접종을 실시했다.
당시에는 약 두 달 만에 확산세를 진정시켰지만, 2024년 들어 매개체 활동기와 맞물려 산발적 발생이 이어졌다. 발생 건수는 줄었지만 더 길어진 발생 기간과 넓어진 발생 지역 분포는 럼피스킨병이 일시적 유입이 아닌, 국내 매개체를 통한 지속적 발생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매개체성 질병은 잠복기 동안 증상이 나타나지 않다가, 감염 질병에 따라 어느 날 갑자기 유량감소, 유사산, 번식 장애 등이 나타나기 때문에 조기 감지 또는 즉각 대응이 쉽지 않다. 럼피스킨병, 아까바네병, 돼지의 일본뇌염 등 백신으로 예방 가능한 질병도 있지만 여전히 백신이 없거나, 아직 정체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새로운 바이러스들도 다수 존재한다.
이에 따라 농림축산검역본부는 신종 질병 유입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2025년 3월 아프리카마역 등 모기, 파리 등 매개체성 질병에 대한 긴급 대응 지침과 백신 비축 계획을 포함한 중장기 방역 대책을 발표했다.
이러한 대응이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정책뿐만 아니라, 현장 농가의 실천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 질병 발생 고위험 지역 관리 및 조기 경보 체계, 흡혈곤충에 대한 계절별 감시와 방제 프로그램 제시가 선행되고 적절한 해충 방제 프로그램 및 교육을 통한 농가의 인식 개선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무엇보다 주변국과의 정보교류 및 협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지구의 열기’는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의 가축질병 지도를 서서히 바꾸고 있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신종 바이러스의 위협 속에서, 더 늦기 전에 우리가 함께 나서야 한다. 축산농가와 정부, 국민 모두가 방역의 주체가 되어야만, 기후변화 속에서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축산을 지켜낼 수 있다.
축산신문, CHUKSAN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