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농진흥회의 잉여원유 차등가격제 실시 방침이후 서울우유조합의 낙농진흥회 탈퇴에 이은 낙농육우협회의 잉여원유차등가격제 철폐 요구를 위한 전국낙농인대회 개최 등 남아도는 원유 처리 문제를 놓고 나타나고 있는 최근 낙농업계의 움직임은 낙농업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 있는가를 보여주고도 남음이 있다. 우리 낙농업이 이지경에 이르도록 과연 정부는 무엇을 했으며, 낙농 지도자들은 또 무엇을 했으며, 동시에 낙농 농가들은 정부의 가격지지 정책에 너무 안주하지 않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보지만 지금은 그런 질문마저 소용없게 됐다. 우유는 엎질러졌고, 이제 다시 컵에 줏어 담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본지가 창간된지 17년, 지금까지 낙농문제를 놓고 이렇게 암담한 상황에 젖어 보기는 처음인 것 같은데, 지난주말에 데스크에 걸려온 한 낙농가의 전화는 낙농문제의 심각성을 다시한번 일깨워 줬다. 서울우유 조합원이라고 밝힌 한 낙농가는 본지 '지상복덕방'란에 광고를 하겠다기에 무슨 내용이냐고 물었더니 '원유 생산 배정량(쿼터)'을 팔겠다는 것이었다. 지상복덕방 광고에 실리는 내용이 다양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원유 생산 배정량'을 팔겠다는 것은 처음이어서 좀더 자세히 말해달라고 했더니 서울우유 조합원으로서 원유 6백80kg 생산을 배정받았는데 이정도로는 앞으로 낙농을 해도 희망이 없기 때문에 양도 양수가 가능할 때 희망자가 있으면 이를 양도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선친의 낙농업을 물려받아 부부와 함께 20년 가까이 지속해온 낙농업을 그만두게됐다며 착잡한 심정을 토로했다. 우리는 그동안 축산업을 그만두는 경우를 수없이 보아 왔다. 지난 80년대 이후 축산업의 규모화 전업화가 급속하게 이뤄지면서 한해에도 수십만 축산농가들이 축산업을 포기한 것을 통계로 확인하면서 착잡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그동안 축산업을 포기한 수십만 축산농가를 생각하면 한 낙농가의 낙농업 포기는 그렇게 특별할 것도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낙농가의 전화 목소리가 귓전을 떠나지 않는 것은 나름대로 축산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는 농가가 하루아침에 '축산부농'의 꿈을 접어야 한다는 것, 아울러 단기적인 축산 정책과 축산지도자의 지도력 부재에 희생양이 된 것이 아닌가하는 안타까움 때문이다. 하지만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도태되는 것이 어쩔수 없는 생존경쟁의 법칙이다. 그런측면에서 서울우유 조합이 취한 자체 조치는 모든 낙농가들이 공멸하기 전에, 더 이상 물러설수 없는 상황에서 나온 자구책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말해 이런 상황에서도 낙농업을 계속할 사람은 계속하고, 그만둘 사람은 그만둘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조합원들이 받아들인 것이다. 따라서 서울우유 조합의 이같은 결정은 앞으로 우리 낙농산업의 장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시금석이 될 것이란 점에서 주목된다. 또한 서울우유 조합원들의 원유 배정량(쿼터) 거래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도 관심의 대상이다. 문제는 서울우유조합이 우리 나라 낙농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는 하지만 서울우유조합만 계획생산 체제를 갖추면 우리 나라 낙농 문제가 저절로 해결될 것이냐는 것이다. 실제 낙농진흥회가 시행하고 있는 잉여원유차등가격제와 서울우유조합의 자율감산과 계획 생산체제가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 아니면 불협화음 속에서 해당 낙농가들이 서로 이해를 다툴지 알 수 없다. 단기적으로는 서울우유 조합원이 현행 잉여원유차등가격제에 참여하는 낙농가에 비해 불이익이 불가피한 상황이어서 이를 어떻게 감내해 낼 것인지 주목된다. 낙농산업은 지금 일부 시장경제 체제가 필요하면서도, 우유가 국민의 주요한 식량이라는 측면에서 쌀과 같은 보호 정책도 동시에 요구되고 있다. 결국 정부 역할이 관건이다. 일단 정부가 이 상황을 어떻게 추스려 나갈 것이며, 또 장기적 안목에서 어떤 정책을 펼쳐나갈 것인지 지켜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