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조직이든 규모가 커지면 운영이 경직되고 권위(관료)주의에 빠지는 것일까? 거대기업이나 국영기업의 해결사로 나서는 CEO(전문경영인)들의 처방이 한결같이 관료주의적인 경직성을 부수는데 초점이 맞춰지는걸 보면 모르긴 몰라도 예스(yes)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권위주의나 관료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하다. 국어대사전은 권위주의를 사회현상을 권위에 의해 해결하려는 주의로 정의하고 이는 권위에 대해 자신을 낮추거나 맹목적으로 추종하며, 약자를 괴롭히는 태도나 행동으로 나타난다고 했고, 관료주의는 관료층에서 볼수 있는 일종의 독선적인 경향으로서 국가권력을 배경으로 엄격한 조직밑에서 행위하며 독선으로 민의를 저해하는 경향이 농후하다고 했다. 이렇게 보면 권위주의나 관료주의는 사촌뻘로서 동일선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일선조합과 농민들로부터 적지 않은 비판을 받고 있는 농협의 권위주의적 체질은 정말이지 큰 일이 아닐수 없다. 사실 농협의 권위주의적 행태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농협의 권위주의적 행동양식이 진하게 묻어나는 편린(片鱗)들을 모아 보면 기가 막힌 일이 한둘이 아니다. 지역본부장 취임식에서 조합장들이 일렬로 줄을 지어 본부장에게 악수를 하는 사례나 조합방문시 본부장에게 상석을 양보토록 종용하거나 차지하는 사례는 - 물론 알아서 내주는 경우도 있지만 - 일선에서는 쉽게 볼수 있는 일이다. 얼마전 회의석상에서 만난 모업종축협 조합장은 “얼마전 큰맘먹고 본부장에게 구조조정의 문제점을 지적했더니 ‘설령 잘못되었더라도 상부의 지시는 이행해야 한다’고 하더라”면서 “본부장의 입장을 모르는바 아니지만 조합장의 면전에서 그렇게 말할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하기야 일부 농림부 관료들조차 농협은 자신들보다 더 한 것 같다며 혀를 내두르는 지경이다. 민선회장체제가 출범하고 급기야는 조합장출신의 회장이 탄생하면서 나아진 면도 없지 않지만 수십년 굳어온 농협의 권위주적 체질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채 도처에 이런 편린들을 흘리고 있다. 생각해보자. 지역본부장은 중앙회 부장급 간부가 아닌가. 엄격히 말하면 주인(조합원, 조합)이 자신들의 재산을 잘 관리해달라고 채용한 머슴이다. 그런데 왜 취임식장에서 조합원들이 뽑은 조합장이 줄지어 인사를 해야 하며, 상석(上席)은 왜 양보하고 그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또 지역본부장이 시군을 방문할 때 해당지부장이 시군계로 영접을 나가고 조합장이 직원들과 함께 문앞에 도열하는건 또 무슨 경우인가. 농협의 이런 행태를 두고 옳은건 아니지만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런 의견을 개진하는측의 논거는 대충 이렇다. 중앙회가 업무상 감독을 해야 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현상, 또는 거대한 조직을 꾸려나가기 위한 필요악쯤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건 착각이고 오산이다. 주인대접은 업무상 감독과는 다른 차원의 일이다. 거대조직을 꾸려나가기 위한 필요악이라는 주장은 더더욱 말이 안된다. 세상에 머슴이 주인위에 군림하는 협동조합은 해서 뭘하자는 것인가. 권위주의나 관료주의는 필연적으로 획일주의를 낳고, 그것은 개인과 말단조직의 창의성을 짓밟는 폐해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농협은 이런 지적을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수요자인 일선조합이 그렇게 느낀다면 바꿔야 한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친 모습을 떠올려본다면 답은 절로 나오지 않을까. 이익단체인 협동조합에선 누구도 군림할수 없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