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성 우 박사(농협대학교 총장)
기업자본 축산업 잠식 가속화…영세 생산농가 급속 붕괴
산업 특수성 외면, 자본주의 역설…식량안보·농촌경제 위협
세계 1위 美 양돈 계열사, 중국기업이 삼켜 ‘종속화’ 교훈
생산은 농민, 기업은 전·후방서 역할 분담…조화 이뤄야
“무너지는 축산농가…한우農 4년새 반토막.”
2015년 7월 14일 자 한국경제신문의 기사 제목이다. 그로부터 열흘 뒤 7월 24일자 축산신문의 헤드라인은 “기업, 공격 경영…축산지형 흔드나”였다. 축산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앞에 기사 내용에는 2005년 35만8천호였던 전체 축산농가 수가 10년 후인 2014년 말에는 12만9천호로 64%가 감소했고, 특히 20두 이하의 한우를 기르는 소규모 농가는 2010년 13만5천호에서 2014년에는 7만호로 4년 사이에 반토막이 났다고 했다. 한마디로 축산농가의 몰락이다. 뒤의 기사 내용은 공격경영을 앞세운 기업자본의 축산시장 잠식이 가속화되고 있다. 그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는 추세로 수직계열화사업 뿐만 아니라 풍부한 자본력을 무기로 농장신축과 인수에 왕성한 식욕을 드러내며 이제 가축사육업에서도 그 세를 확장, 양축농가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했다. 한마디로 기업의 축산 굴기다.
이런 현상에 대한 축산농가들의 주장을 보면 기업이 ‘가축사육업’에 까지 진출하여 막강한 자금력으로 밀어부치면 중소규모 생산농가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기업은 가축사육업에 참여해서는 안된다. 제조업분야에서 중소기업고유업종을 지정해 놓은 것처럼 가축사육업은 농가에게 맡기고 기업은 도축, 가공, 유통 등 농가가 할 수 없는 분야에 전념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농가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논리다.
기업이 직접 한우를 사육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부업규모의 영세 한우농가들이 급속히 무너졌다. 그나마 규모가 다소 큰 전업한우농가가 애써 버티면서 한우산업을 이끌고 있다. 그런데 기업이 직접 한우사육을 대규모로 한다면 자금, 시설, 기술 등 모든 면에서 열세에 있는 전업농이 경쟁에서 견딜 수 있겠는가? FTA에 따라 수입관세가 매년 낮아지게 되므로 수입육의 국내시장 점유율이 높아질 것은 자명하고, 따라서 한우가격은 하락할 것이므로 수익성이 악화되어 전업농가마저도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기업이 아니라도 자금력이 있는 개인들이 사육규모를 늘려서 혼자서 수 백 마리의 한우를 기르고 있는 기업형 농가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양돈·양계 등 타 축종의 경우 또한 마찬가지다. 경제적인 논리로 볼 때 사육의 규모화를 통해서 생산성 향상과 원가절감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중요한 관점이 있다. 전업농가가 기업형 농가로 사육규모가 커졌다 할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축산농가의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의 경우는 다르다. 그들은 축산농가가 아니라 축산기업이다. 기업이 가축사육업에 진출하는 것은 기업이 농가의 자리를 뺏는 결과가 된다.
소, 돼지, 닭 등 가축을 사육해온 농가는 축산을 천직으로 알고 평생을 살아왔다. 돈을 빌려서 땅을 사고 축사도 짓고 사육기술도 배워 가면서 축산을 생업으로 이어왔다. 농촌을 지키면서 많은 어려움을 견뎌왔다. 가격이 폭락해 빚만 늘었던 때도 있었고, 질병이 발생하여 가축을 땅에 묻기도 했지만 할 수 있는 것이 그나마 축산 밖에 없기 때문에 축산을 떠날 수 없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축산을 할 것이다. 이런 축산인들의 삶의 터전을 기업이 빼앗아서는 안된다.
기업의 가축사육업 참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를 보면 축산업에도 기업자본이 유입되도록 하여 사육시설 등 인프라 개선, 대규모 사육, 선진기술 도입 등을 통해 생산성을 높여나가야 한다. 나아가서 우리 축산물의 해외수출을 늘릴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어 국제화시대에 축산업의 체질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논리로만 볼 때는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농축산업은 경제논리로만 따질 수 없는 특수성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농촌에 거주하며 농축산업을 영위하고 있는 농민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기업이 들어오면 농민들은 어디서 무엇으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 막막한 일이다. 다른 산업분야에서 이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남다른 기술이나 능력도 없는 농민들이 감당할 수도 없다. 국가에서 농민복지정책으로 생계를 책임지지 않는 한 그들은 새로운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는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요, 사회적 문제가 된다.
기업은 농축산인이 할 수 없는 분야에서 역할을 찾아야 한다. 축산 관련 사업은 광범위하게 보면 가축생산업 뿐만 아니라 기자재, 사료, 동물약품, 종축 등을 생산하는 후방산업과 도축, 가공, 유통, 외식 등 전방산업까지 포함된다. 기업은 전·후방산업에서 역할을 찾는 것이 맞다. 왜냐하면 농가는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그런 분야의 사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농축산분야에서 농민과 기업의 역할분담을 통해서 조화롭게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말이다. 2012년도에 축산법이 개정되면서 기업도 가축사육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으므로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법 이전에 사회적, 정서적 문제가 있음을 결코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농축산물 생산을 기업에 집중, 의존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예를 들어본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스미스필드푸드(Smith Field Foods)라는 세계 1위의 양돈계열사업체가 있었다. 종돈, 사료, 사양, 도축, 가공, 유통, 수출 등 돈육관련산업 전체를 수직계열화하여 사업이 계속 확대되었으며 미국 돈육시장의 30%를 점유할 정도까지 성장했다. 그런데 이런 굴지의 회사가 외국기업에 넘어갈 줄 누가 감히 생각이나 했겠는가? 2013년 5월 중국의 쌍회그룹은 중국시장에 가장 많은 돈육을 수출하는 스미스필드사를 71억불(약8조원)에 전격 인수했다. 쌍회그룹은 일거에 세계 돈육업계 1위로 부상했고 회사명칭을 WH그룹으로 바꾸었다. 이런 것이 기업의 생리이고 자본주의의 역설이다. 이제 수많은 미국의 양돈농가들이 중국회사의 양돈농가로 편입되었고 중국회사의 경영자가 지시하는 대로 움직일 수 밖에 없는 양돈장 근로자로 전락된 것이다. 이 회사가 생산한 돼지고기가 ‘Made in U.S.A, by China’라는 제품설명과 함께 세계인의 식탁에 오를 것이다. 이러한 일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러므로 국가의 식량안보 차원이나 농업, 농촌의 건전한 유지 발전을 위해서도 농축산업 생산분야를 기업이 주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농촌에서 농민이 농축산업을 건전하게 경영할 수 있도록 정책적, 사회적,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농가에 대해서 살펴보자. 과거의 축산은 쌀농사, 채소농사 등 경종농업위주의 농업구조에서 농삿일에 부리거나 퇴비를 생산하기 위해서 소, 돼지, 닭을 기르는 부업축산이었다. 그러나 농가의 가축사육두수가 늘어나면서 축산을 전업으로 하는 농가도 늘어났다. 그들은 전업축산농가로 성장했고 생산주체가 가족노동 중심이었으므로 전업가족농(fulltime family farming)이 되었다. 이후 가족노동력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사육규모로 성장하면서 고용노동력을 쓰게 되었지만 경영의 주체는 여전히 농가자신이므로 역시 가족농의 범위에 속한다.
우리는 가족농의 주요성과 가치에 대해서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유엔은 2014년을 세계가족농업의 해로 정했는데 이는 가족농업의 중요성을 전세계에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UN은 선언문에서 가족농업을 통해서 기아와 빈곤의 종식, 식량안보와 영양 충족, 천연자원 관리와 환경보존, 지속가능한 개발의 성취 등을 목표로 한다고 했다. 경제적 논리로만 따질 수 없는 가치를 가족농업이 지니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가족농업이 식량공급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농촌 경관을 유지해주는 환경관리역할, 농촌의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는 등 다원적인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교우위론에 집착해서 국내 농축산업을 경시하거나 기업농의 경쟁력 논리에 함몰되어 가족농의 중요성을 도외시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작지만 강한 농업 즉 강소농을 육성하겠다고 약속했던 기억이 난다. 건실한 ‘전업가족농’이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고 농업, 농촌을 지탱해 줄 수 있도록 육성해야 한다. 농축산물 생산은 전업 가족농이 담당하는 것이 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