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연속되는 한해 겨울의 새벽과 저녁은 고문의 시간 같았다. 여기에 새끼를 낳는 밤이면 차안에서 달달 떨기도 하고 모닥불을 피어놓고 밤새 대기를 해야한다. 뿌연 얼룩 송아지는 한우 송아지에 비해 크기가 두배나 되기 때문에 어미 소의 그 순산의 고통을 마음 조여가며 같이 겪어야 하는 그 기다림은 그야말로 고통의 시간이다. 그리고 젖소들은 발정을 해도 한우처럼 울지를 않기 때문에 눈으로 확인을 하여야하고 재발정일은 적어두었다가 진종일 축사에서 왔다, 갔다 소의 동태를 살피며 멍청하게 하루를 보내는 것도 보통 맥빠지는 일이 아니다. 이런 한겨울의 된추위를 넘기는 듯하면서 낙농업도 차츰 자리가 잡히나 했는데 또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분만후 어미 소들은 식욕이 떨어지면서 설사들을 많이 하였다. 이것저것 수시로 약과 주사 처방을 써봐도 질병에 약한 젖소들은 쉽사리 치료가 안되더니 두달 사이에 이백팔십만원씩 주고 산 네 마리의 어미 소가 죽어 트랙터에 끌려나갔다. 원인은 남부지방에서 들여온 소라 추위를 이기지 못해 그렇다 하기도 하고 또 분만후 관절 마비에 걸려 일어나지 못해 일주일만에 사형선고를 받고 큰 눈을 껌벅이며 멀쩡이 끌려나가는 소도 있었다. 정말 이 광경들은 육체적인 고통에 비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쓰리고 아팠다. 처음에는 이웃집에 알려 도움을 청하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누가볼까봐 겁이나고 이웃이 알까봐 두렵고 창피했다. 송아지는 강아지의 운명에 불과할 정도였다. 경험이 없던 우리는 아무렇게나 대충 관리해도 한우처럼 잘 크는 줄만 알고 무력하게 관리를 소홀히 해온 것이다. 병명도 모르고 섣불리 약을 쓰는 것보다는 전문가의 정확한 진단으로 치료를 해야 한다는 것을 늦게야 깨달았다. 그후 놀란 가슴은 조금만 이상이 있으면 수의사를 불렀다. 치료를 하면서 예방적인 말들은 컴퓨터처럼 머리에 입력이 안돼 세밀하게 적어 놓으니 참고적인 도움도 많이 되었다. 이런 가운데서 차츰 크고 작은 쓴 체험들이 싸이며 다시 착유 소들을 몇 마리씩 늘려갔다. 그러나 관리만큼은 가정집과 떨어져 있어 세밀한 관찰이 부족해 항상 허점이 많이 드러났다. 우리는 생각다 못해 이듬해에 착유실 옆에 여섯평짜리 방을 하나 만들었다. 몇가지의 주방살림에 TV한대 책상하나 아담한 살림을 차린 다용도 내실은 현대식 집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없지만 우리 부부가 사는 데는 별지장이 없었다. 창문만 열면 소들의 발정도 한눈에 볼 수 있고 새끼 낳는 날이면 모닥불을 피워가며 밖에서 떨지 않아도 되고 캄캄한 밤 콧등 시린 새벽길을 걷지 않아도 되니 초라한 이방한칸이 전에 비해 내겐 구원처럼 느껴지면서 축사는 나의 안식처가 되었다. 착유는 전적으로 남편이 하고 나는 볏짚 주는 일, 송아지 먹이는 일을 하면서 착유는 곁눈으로만 보와 왔다. 때로는 착유도 좀 거들까하다가도 어느 목장 선배 아주머니 말씀이 착유 만큼은 버릇되면 남자들은 착유시간이 점차 늦어지다가 나중에는 아예 믿거라 하고 안 들어온다는 말에 공감이 갔다. 손도 대기 전에 앙살을 부리고 조그만 발길에 채이면 엄살 부렸다. 이렇게 1년을 버텨 오다가 남편의 늦은 귀가가 착유를 연착시킬 때는 불어 오른 유방이 아파 울어대는 소들의 울음소리에 나는 감정도 배짱도 약해지고 착유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전화 한 통화 없이 늦어지는 남편을 나는 목이 긴 사슴 마냥 지나가는 차마다 우리차인가 하고 내다보다 나중엔 온갖 방정맞은 엉뚱한 생각만 머리 속에 꽉 차왔다. 초조한 가슴을 조여가며 어쩔 수 없이 착유를 끝내고 냉각실에 들어와 보면 냉각기밸브를 잠그지 않아 그 많은 우유가 하수구로 다흘러 나갈 때도 있었고 때로는 우유 호수를 들어내지 않고 기계청소를 해 냉각통 우유에다 기계 청소물을 가득 채우기도 몇 번을 했었다. 그 누가 나를 이렇게 멍청하게 만들었는지? 늦게야 얼떨떨해 오면서 그래도 큰 소리 뻥 치는 남편이 이웃집 아저씨만치도 정이 안갈 때도 많았다. 그 이튿날 한풀 가라앉은 마음으로 생각해 보면 본의 아니게 농촌에 잇속 없는 사소한 감투라는 감투는 다 뒤집어 쓰다보니 어쩔 수 없이 늦게 돌아오는 남편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남편은 착유만 "쪽" 하고 나면 회의다 행사다 모임이다 잦은 외출에 늦게 돌아와 소의 유방에 덕지덕지 붙은 배설물을 깨끗이 닦아 내는 것이 쉬울리 없다. 원유검사 통지서를 받아 보면 2등급이 보통이고 3등급 갈 때도 있었다. 1~2등급 유대 차이는 한 달에도 볏짚 한차 값이 왔다 갔다 했다. 그때서야 우리는 제시간에 해야 할 일은 누구를 믿어서도 안되고 누구에게 미뤄서도 안 된다는 것을 느끼면서 청결을 최선으로 노력하였다. 그 다음부터는 남편이 유두에 묻은 마른 배설물을 닦기전에 나는 스프레이 분무기에 따듯한 물을 넣어 유두에 충분히 뿌려준다. 물수건으로 1차2차를 닦은 뒤 또 다시 일회용 낙농티슈를 사용하니까 눈으로 밀크필터에 걸리는 이물질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깨끗해져 1A등급을 받을 수 있었다. 낙농업이란, 모든 것이 손과 정성이 가는 것 만치 이루어지고 한우처럼 한번이라도 대충만 넘어가면 어딘가에 꼭 문제가 나타난다는 것도 깨닫고 차츰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의사소통이 안되던 사납고 미련한 30마리 소들도 우리 부부와의 끈질긴 경쟁에서 포기를 한 듯 많은 설움을 받고 서서히 순종을 하여 줬다. 가장 힘들었던 소와의 전쟁은 승리를 했지만, 낙농이란 굴레는 너무 잔일이 많다. 새벽 다섯시 30분에 일어나 끓는 물로 다시 기계청소를 해 착유를 하고 열마리가 넘는 송아지들을 먹이고 우유를 보내고 나면 여덟시가 된다. 늦은 아침을 해먹고 착유실 냉각실 청소를 하고 나면 11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