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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내가 걸은 60 성상(星霜)의 목장길><44> 통일벼 신품종 육종에 이은 또 하나의 녹색혁명

  • 등록 2016.03.16 10:55:11

 

식량증산운동 일환 통일벼 보급, “상품성 떨어진다” 제동
쥐 실험 통해 영양가치 규명…미곡 완전자급 기여

 

1964년 3월 13일 박정희 대통령은 전국의 시·도 지사 중앙 농사시험연구기관장, 농촌진흥원장, 시장군수 및 시·군 농촌지도소장이 참석한 식량증산 연찬대회에서 “20세기 후반기에 들어선 오늘 세계 모든 민족이나 국가는 ‘자주’라는 목표 달성을 위하여 경제적 자립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적 자립은 식량의 자급자족으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우리의 식량은 우리의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전례 없는 강렬한 결심 하에 범국민적인 일대 식량 증산운동을 전개해야 합니다. 이것은 결코 불가능한일이 아닙니다. 반드시 이룩할 수 있는 과제이며 또한 반드시 이룩해야 할 우리 민족의 활로인 것입니다”라고 엄숙히 강조하였다.
이 유시를 받들어 정부는 1965년을 기점으로 식량 증산계획을 수립, 1977년 쌀 4천만석 생산 달성까지 농촌진흥청에서는 당시 쌀 10a당 330kg 생산량을 494kg로 기타 경제 성장에 따라 수요가 자연히 증가되는 고급식품(채소, 과일, 축산물) 증산을 위한 농사시험연구 사업 장단기 계획을 수립 추진하였다.
쌀 증산 및 자급을 위해 1965년 필리핀에 있는 국제미작연구소와 같이 우리나라 벼 품종과 난방계 품종을 교잡 육종하고 있던 과정에서 1968년 5월 농림부 농산차관보에서 농촌진흥청장으로 부임한 김인환 청장(농촌진흥청 시험국장 역임)은 당시 작물시험장 벼 품종개량 담당 연구 관계자로부터 현재 진행 중인 다수성 품종 육종의 가능성이 보인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후 김 청장은 육종 시험포장 현장을 직접 확인하고 다음해 2월 필리핀 국제미작연구소를 방문, 벼 다수성 품종개량 협력연구를 더욱 강화할 수 있는 체계를 수립하고, 1970년 시험포장에서 반당 624kg을 생산할 수 있는 IR 667(통일벼) 신품종을 육성하여 1971년 전국 550개 단지 2천750ha, 8천451농가에 시험 재배한 결과 평균수량 500kg(최저 474, 최고 551)의 획기적인 수량을 올렸다.
그럼에도 일부 당국에서는 ▲통일벼는 탈입성이 높아 일반농가에서 재배 거부 ▲키가 작아 볏짚이용 불가(새끼, 가마니) ▲비료 20~30% 더 필요 ▲밥맛이 없어 상품가치 없음 등의 이유로 농가 확대 보급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러던 1972년 본인은 당시 축산시험장 영양생리과장으로 재직하고 있어 통일벼의 재배 이용상 특히 밥맛이 없어 소비자가 외면한다는 말을 드렸다.
하지만 바로 지은 따뜻한 밥의 맛 차이는 없었지만 식은밥의 맛 차이는 문제가 있다고 평가하여 식품영양학 측면에서 검토하여 본 결과, 단백질 함량 일반쌀 7.3%, 통일쌀 9.1%(125%), 아미노산(라이신)이 함량은 일반벼 0.29%, 통일벼 0.42%(145%)로 인체에 필요한 영양성분이 25~45%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쥐를 실험동물로 하여 발육시험을 한 결과 체중에서 일반벼 ‘팔굉’ 78.5g 대비 ‘진흥’ 80.5g(102.5%), ‘통일벼’ 90.9g(116%) 가 더 높다는 성적과 쥐 실물사진을 청장께 보고 드렸더니 시험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확인하시고는 대단히 만족해 하셨다.
시험 비교한 쥐의 천연색 사진을 액자에 담아 본인이 개발한 인공유에 의한 송아지 위 발달사진과 같이 청장님의 탁자의 제일 잘 보이는 곳에 놓고 통일벼의 밥맛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설명 자료로 활용하는 것을 본 바 있다.


◆통일쌀과 재래품종 쌀을 급여한 쥐의 크기
이런 과정에서 1972년 12월 20일 박정희 대통령의 식량 자급자족 특별 지시에 따라 1973년 통일벼 12만1천ha로 확대 재배한 결과, 반당 수량이 일반벼 350kg, 통일벼 481kg(137%)로 그 후 통일벼 확대 보급에 갖은 저항을 겪으면서 1977년 쌀 4천만석을 생산함으로써 미곡 완전 자급을 달성하게 되었다.
축산물은 1965년 기준 1977년까지의 육류 전체소비량은 77만톤에서 296만톤(384%), 우유는 1만3천톤에서 2만6천200톤(340.6%), 계란 2만2천톤에서 5만톤(230%)으로 증산 공급하여야 할 문제가 쌀 증산보다 더 큰 문제로 대두되었다.
1976년 5월 축산국장으로 부임한 본인은 통일벼 육성 보급으로 쌀 자급달성을 위한 통일벼 육종 과정과 농가보급 과정에서 문제점을 해결, 농가보급에 성공하여 쌀 자급을 달성하던 과정을 잘 보고 느낀 점을 참고하여 축산물 증산에 최대 활용하기 위한 기술대책을 우선 생각하여 1976년부터 1981년까지의 축산물 공급계획을 수립 추진하였다.
우선 우육은 7만3천톤에서 116만톤까지 늘리기 위하여 당시 전국 소 도살체중 359kg(정육 144kg)를 1974년 축산시험장의 비육시험 결과, 큰 소 비육 90일 비육 386kg(정육 164kg), 150일 비육 455kg(정육 200kg), 210일 비육 509kg(정육 230kg)으로 두당 정육 생산량을 13~59%(20~116kg) 증산시키고, 두당 소득 25만5천원~36만1천원 소득의 큰 소 비육으로 쇠고기를 증산 보급시켰다.
그 다음 단계를 생후 90일까지 인공유로 육성, 100kg 내외에서 이유한 송아지의 조기 육성비육 방법으로 종전 24~36개월령 359kg(정육 144kg), 도살체중을 18개월령 517.8kg(정육 258.5kg), 20개월령 564.6kg(정육 287.9kg), 24개월령 (정육340kg) 비육우는 종전 정육생산 144kg 보다 258kg(226%) 증산 효과는 통일벼 신품종 육종 다음에 이은 제2녹색혁명이라고 찬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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