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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내가 걸은 60 성상(星霜)의 목장길><38> 일본 한우 비육투자 회사 ‘사장 ’기용 제안 정중히 거절

  • 등록 2016.02.17 11:03:03

 

한우비육우 시험도축 호평…日측 “한일합작 농장 사장 맡아달라” 말에
“20년간 한국축산 위해 국가의 녹을 먹은 몸”

 

1972년 4월, 한우 조기육성 비육시험이 완료됨에 따라 시험도축을 하게 됐다. 시험도축 후 생산된 쇠고기 전량을 일본 (주)全畜에 시험수출을 했다. 우리 한우고기에 대한 일본 쇠고기 유통업체의 호평으로 한우 비육 쇠고기 수입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일본 쇠고기 수입 유통업체가 한국에 비육농장을 설립했다.
일본 몇 몇 업체에서는 합작회사를 설립하여 3개월령 이유송아지를 농가로부터 수매하는 것과, 5~6개월령을 육성시켜  180~200kg의 비육용 중소를 수입하는 방법, 그리고 20~24개월을 500~600kg의 비육우로 길러 도살해 쇠고기로 수입하는 안 등을 놓고 검토하고 있었다.
그 중 일본 (주)全畜의 모 기업인 (주)林兼가 수원의 홍성철(수원축협조합장)과 사육두수 2천두 규모의 합작회사 설립을 진행 중인 것을 당시 본인은 알고 있었다.
자본투자의 51%를 (주)林兼가 보유하기 때문에 사장은 일본측이 맡아야 할 실정이었다. 일본의 (주)林兼은 축산농장, 배합사료공장, 도축 및 육류유통 회사로, 본인이 일본 기술 연수 시 일본 축산시험장 영양부장이었던 森本廣 박사를 통하여 한국에 합작 비육농장을 설립하면서 본인을 일본 측 사장으로 교섭하여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고 한다.
모리모도박사는 본인에게 구체적 내용 없이 일본의 (주)林兼 전문가 한국을 2월초에 방문할 예정이며 나를 만나고자 하니 한번 만나주라는 편지의 내용이었다.
나를 왜 만나려하는지 내용을 모르고 있었던 차에 松本라는 전무가 본인을 서울 세종호텔에서 만나자고 해 만나게 됐다. 그는 한우 비육사업 합작회사를 한국에 설립, 한우 비육 쇠고기를 수입하고자 하니 사장 승낙여부를 요청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한마디로 20년동안 국가가 주는 월급을 받고 국가와 전 농민을 위해 일을 했는데 한국과 일본의 합작회사를 위한 일보다는 한국 전체의 농민 및 축산농가를 위해 일을 해야지, 어느 특정의 한국 및 일본투자회사를 위한 일을 전담하기는 곤란하지 않겠냐고 호의를 받아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였더니, 모리모도박사가 이야기 한 것과 같다고 하면서 앞으로 설립하는 합작회사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이야기를 남기고 헤어졌다.
이와 관련해서 남기고 싶은 이야기는 당시 축산시험장에서 비육시험한 소는 수원축협도축장에서 시험도축을 하고, 부분육 작업 후 일본수출은 (주)풍양산업이 했다.
당시 (주)풍양사업의 전무 겸 관리수의사 김모씨(일본 마포수의 전문 출신)가 일본 (주)林兼과 수원목장을 연결하여 합작 비육사업을 추진한 것으로 알고 있다.
김모 수의사는 돼지고기 수출업체인 (주)풍양산업에 소속된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주)林兼과 합작사업을 추진해야 하는 것은 이해되지만, 본인이 개발한 비육사업으로 생산된 쇠고기 수출이었기 때문에 한번쯤은 본인에게 당연히 이야기 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체 비밀로 추진한 것과 자기 소속사를 배신하고 타 회사와 연계한 대일 수출 비육농장을 설립, 추진한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였다.
또 충남 천안 성거읍에서 200ha 정도 떨어진 우시장에 팔러 나온 젖 떨어진 송아지를 일본 오사카 사카이시에 있는 사카모토 비육농장이 구입, 3~4개월 사육 120~150kg의 중소로 육성한 소를 일본으로 수입하는 육성우 농장을 기술자문한 바 있으며, 육성우로 수출하는 것보다는 500~600kg 비육우로 길러 고기로 수출하는 것이 한국에 남는 부가가치도 높고 해서 고급 쇠고기로 수출할 수 있도록 유도 한바 있으나 국내 쇠고기 수급상 문제가 되어 정부는 수출을 중지시킨 바 있다.
본인은 그때 한우 비육 쇠고기는 일본에 고가로 수출하고 수출가격의 30~40% 가격으로 미국 및 호주의 쇠고기를 수입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 농림부에 건의하였으나 농림부가 받아주지 않는 것을 지금도 아쉽게 생각하고 있다.
그 뒤 1990년대에 강원도 평창축협이 3~4개월된 송아지를 구입, 180kg 내외의 비육용 중소로 육성 수출, 일본(이와데 현)에서 비육, 오사카 도축장에서 도축하고 있을 때 축산시험장 육가공과의 연구관과 같이 일본(이와데현) 비육농장 오사카 도축장을 방문, 지육기준의 육질은 볼 수 있었으나 부분육의 질은 보여주지 않았다.
추측하건데 일본 화우보다 육질이 월등하였기 때문에 이를 한국측이 알게 되면 수출하는 중소가격을 더 요구할 것을 예견하고 보여주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그 후 평창축협에서 육성우로 수출, 일본 최고 비육우 생산지인 (이와데현)에서 비육 출하한 비육우의 육질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동경에서 한국식 불고기집과 유통업을 경영하고 있는 제일교포 森本씨로 하여금 오사카 식육도매시장에서 부분육으로 경매하고 있는 강원도 평창에서 중소로 도입 비육한 등심을 구입, 동경에서 등심 육질평가와 시식을 한 결과 일본 화우에서 느낄 수 없는 향미와 등심내의 지방교잡은 일본 화우보다 굵게 들어갔으나 맛은 독특하다는 평가를 받고 일본식 비육기술을 도입, 한우 비육 쇠고기를 수출하려고 준비했으나 1992년 3월 구제역 발생으로 이루지 못한 것을 지금도 아쉽게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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