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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내가 걸은 60 성상(星霜)의 목장길> <36> 시험 가축관리 직접 참여시 다음 연구의 아이디어가 나온다

  • 등록 2016.02.05 11:20:47


日 연수 중 연구원들 실험과정 직접 관리하는 모습 인상적
연구자세 벤치마킹…연속성 있는 성과 도출 원동력


- 무창개방형 축사 한우 비육기술의 아이디어
1967년 10월~1969년 10월까지 2년간 일본농림성 축산시험장 연수중 크게 느낀 점이 두 가지 있다. 자기가 실험할 사료배합은 절대로 타인에게 맡기지 않고 본인이 직접 하는 것을 보았다.
시험사료 배합 시 옥수수는 몇kg, 대두박은 몇kg, 밀기울 몇kg, 기타 등의 배합표에 따라 먼저 저울눈금을 맞추고 개량한 다음 다시 확인하는 절차다. 만일 고용원 등 타인에게 맡겼을 때 오류가 생기면 그 실험의 결과에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연구실장(우리의 과장급)도 자기가 담당하는 실험의 사료배합은 타인에게 절대 맡기지 않았다.

사료잔량조사 역시 시험조수(고용원)에게 착오 없도록 매일 체크하는 것을 보고 우리의 연구 환경과 다르다는 것과 나 스스로도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때 느낀 생각에 따라 출근은 항상 시험축 관리 기능직보다 30분전에 출근하여 시험축사에 들어가 개체별 사항과 배분상태를 먼저 확인했다.
그 이후 관리 기능직으로 하여금 사료잔량 측정기록을 같이하되 잔량계측은 본인이, 기록은 기능직 보조자가 하도록 하여 시험과정에서 기장 오류발생이 없도록 철저한 인상을 같이 연구하는 연구직과 기능직에 각인시켰다. 먹고 남은 사료잔량은 정당한 방법은 아니지만 시험사료의 유출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하여 시험축 관리 고용원에게 균일하게 나누어 자기 집 가축사료로 이용하도록 배려하여 주었다.
시험축 관리에 한 치의 착오발생을 사전방지하기 위해 신경을 썼던 것이 지금도 생각난다. 35두가 수용되어있는 시험축사에서 2번의 엄동설한을 거친 비육시험, 당시 영양생리과장이면서 본 연구의 담당자이기 때문에 출근하자마자 사무실에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축사의 문을 여는 사람은 본인이었다. 봄, 여름, 가을은 축사의 창을 다 개방하였기 때문에 축사안의 공기에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영하 이하로 온도가 떨어지는 겨울철에는 출근하자마자 모든 창문을 꼭 닫은 밀폐상태의 시험우사에 들어가면 눈이 매섭도록 축사내의 암모니아 및 매탄가스로 냄새가 가득 차 있어 이 축사 안에 있는 가축은 암모니아와 매탄가스의 공해를 받았으며 이는 발육과 사료 이용성에 악 영향을 받았겠다고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이것이 연구 아이디어의 발상이다.
이에 따라 1972년 6월~1973년 4월까지 11개월간 축사 내 비육과 야외비육 시험을 실시한 결과, 사내사육의 일당 증체량은 0.84kg에 비해 야외사육(사료 통 있는 곳만 지붕이 있음)은 0.92kg(110%)였다.
1kg 증체 당 TDN섭취량은 야외사육이 6.5% 증가한 0.82kg로 확인되어 그 이후 비육 시 농가는 겨울이면 축사의 창문을 비닐로 바람을 막아주는 것을 창문이 없는 개방 축사 방향으로 지도하였다.
오늘에 와서는 대부분의 비육사는 무창 개방비육 축사를 이용한 비육우 관리가 되고 있는 동기가 되었다. 연구과제의 발상은 한 연구 과제를 연구완료 하였을 때 여기에서 발생한 문제가 다음 연구과제로 이어지는 과제가 되어야 한다.
본인은 한우의 초기발육이 불량한 원인규명과 이를 개선하기 위한 인공유를 개발(1968~1970년)했다. 1970년 10월~1972년 4월까지 인공유로 육성한 후 한우 조기육성 비육시험, 1972년 6월~1974년 5월까지 농가 실증시험으로 1970년대 초에 한우도 18개월령에서 517kg, 24개월령 655.4kg까지 비육시킬 수 있다는 것을 농가에서 실증으로 확인시켰다. 이를 당시의 비육우 가격과 사료가격을 감안하여 적정 출하체중을 회귀곡선 Y=53649+52.694χ-3.744χ2의 경제 분석 최고 순수익 월령은 21개월령 586kg인 것을 제시하였다.
그 이후 1972년~1973년 수입 사료에 의존하는 배합사료의 절약을 위한 농후사료와 조사료의 급여비율 시험결과 증체량 및 경제성에서 7:3이 가장 경제적인 것을 제시했다.
이어 비육시 볏짚과 목건초를 조사료로 할 때 당시 농가실정으로서는 목건초 생산구입 이용보다 볏짚 이용이 현실적으로 용이하여 배합사료는 체중의 1.0, 1.5, 2.0%를 급여시켰다.
볏짚 자유체식 시킨 비육우 일당 증체량은 0.86, 0.78kg에 비해 목건초 자유체식 시킨 후의 일당 증체량은 0.98, 0.89kg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이를 토대로 우리 비육농가가 구입하기 쉬운 볏짚을 조사료로 사용하되 농후사료는 체중의 1.5~2.0%를 꼭 주어야 한다는 기술지침을 제시한 바 있다.
이상과 같이 시험연구는 앞에 했던 연구과제와 연속성이 있어야 만이 산 연구결과가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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