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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내가 걸은 60 성상(星霜)의 목장길><35> 5.16 군사 혁명 동지에 대한 박 대통령의 배려

  • 등록 2016.02.03 10:11:37

 

5.16 혁명동지 노후생활 안정위해 초지 조성 축산업 권유
본인에게 농장 지도 부탁…퇴역 장성 내려보내

 

1972년 5월 22일 박 대통령 임석하에 인공유 육성 비육시험 결과를 보고한 1~2년 후인 1973~1974년경 별 셋 중장의 계급장을 달고 제대한 군사 혁명 동지에 대한 박정희 대통령께서 배려하고 있는 것을 몸소 느낀바 있어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5.16 군사 혁명 공약 맨 끝의 6항에 “혁명 과업이 완수되면 군 본연의 임무로 복귀한다”라고 되어 있었으나 일부 장성은 군복을 벗고 공화당 창당에 참여, 군사 혁명 과업 목적이었던 국가질서와 조국 근대화를 위한 정치에 참여하였고, 일부는 6항의 혁명 공약의 임무가 완수되면 군 본연의 임무로 돌아간다는 혁명 공약을 지키기 위해서 군으로 돌아갔다.
1973~1974년경 별 셋 중장을 달고 제대 후 당시 동부이촌동 등 변두리의 허름한 서민 아파트에서 청빈하게 살고 있던 장성을 불러 위로금으로 금일봉을 하사하시면서 그간의 노고를 치하 위로하고, “조용한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지으면서 여생을 뜻있게 보내달라”는 말씀을 듣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말씀대로 “강원도 산골에 가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겠습니다” 하였더니, “아니 아니 강원도 산골의 농사는 생계도 좀 어렵고 고생만 되니 내가 지적해준 곳의 야산에서 소를 기르는 축산을 하라”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면서 “수원에 가면 김 연구관이 있으니 김 연구관에게 연락해 놓겠으니 찾아가지도 받으라”는 이야기를 주인공은 당시 군수기지 사령관을 지낸 김묵 장군과 8사단장이었던 최영규 장군이었다.
비서실장께서 농촌진흥청장에게 어느 장군이 축산시험장을 찾아갈 테니 책임지고 농장이 성공할 수 있도록 기술 지도를 하라는 연락을 받고 청장은 장장과 본인에게 지시를 한 바 있다.
며칠 후 김묵 장군이 찾아왔을 때 본인은 마침 작업복에 장화를 신고 시험축사에서 실험보조원과 같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 당신을 대통령이 직접 지도받으라는 이유를 알았다고 하시면서 축산농장을 지도하여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 후 대통령께서 지목한 근처의 야산을 구입하였기에 그곳에 초지를 조성하고 젖소 및 한우 50두 정도를 사육하는 목장으로 조성하고 기술지도 한 바 있다.
또 한 가지는 “축산만 가지고는 밥 먹기가 어려우니 조경수를 기르라”고 하시면서 “시골 우물가에 가면 비틀어진 쓸모없는 고목 상나무가 있으니 돈 좀 넉넉히 주고 사다가 손질해서 잘 길러놓으면 내가 팔아 줄게” 하셨기에 농장 입구 주변에 상나무를 사다 기르고 있었다.
대통령께서 지적한 곳은 후에 개발단지가 되어 축산, 조경수 농장보다 공업단지 땅값으로 상당한 돈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상과 같이 “당시 축산농업은 큰돈이 안 되고 강원도 산골은 투자에 비해 돈이 안 된다. 시골 우물가의 비틀어진 상나무는 가꾸어 놓으면 큰 돈이 된다”까지 장래를 꿰뚫고 있는 대통령이었기에 밥도 제대로 못 먹던 우리나라를 근대산업국가로 발전시키는데 영국은 300년, 미국은 200년, 일본은 100년 걸린 것을 우리 한국은 단 30~50년만에 근대산업 국가로 발전시켰다는 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예리한 통찰력과 추진력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한편, 1978년경 5.16 군사혁명과 공화당 정부의 1~5차경 재개발 5개년 계획에 참여하여 근대 산업국가의 기반을 다져놓고 물러나는 혁명 동지의 노후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당시 5.16 동지회 회장이면서 공화당 당의장인 JP는 충남 서산 안면도 국유임야지에 단지 초지를 조성,  젖소농가로 입주시킬 계획으로 본인이 축산국장이던 1978년 10월경 입주 혁명동지 30~40명을 서산목장에 모시고 젖소농장의 전망과 경영에 대한 강의를 약 2시간 정도 한 바 있다.
JP께서는 동지여러분 우리는 60년초 암울한 국가운명을 구출하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혁명을 일으켰고, 그 후 추진한 경제 개발 계획도 성공시켰으니 이제는 노구의 몸으로 낙후된 우리 농촌, 농업 혁명을 이루자는 다짐을 하던 장소를 목격한 바 있었으나 당시 목장 개설 계획 준비 과정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와 신군부에 의해서 무산된 것으로 알고 있다.
만일 당시 5.16 동지회 계획대로 충남 서산의 안면도에 그림 같은 목장이 개설되었다면 지금쯤은 농촌 휴양지로 각광을 받는 관광 명소가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당시 안면도 집단농장 입주 예정 퇴역 5.16 혁명 동지와의 좌담과정에서 당시 축산국장 입장에서 정부에 대한 불만을 당돌하게 이야기한 사실이 있다.
내용인 즉, “낙농 농가가 유가공장에 납유하는 원유가격은 정부 물가안정 차원의 물가 대책회의에서 경제기획원의 승인을 받아야 할 사항이다. 그 당시 원유가격은 2년전에 승인된 가격으로 그 동안 국제 곡물가격 상승, 전기료의 인상 등 원유가격이 생산비 이하 가격으로 낙농 농가의 고충과 원성이 이만저만한 시기였다. 그래서 JP전 총리님께 물가안정을 위하여 가격인상을 억제하는 것도 좋지만 낙농 농가를 죽이면서 물가정책이 필요하냐”며 “이를 시정할 수 있도록 경제기획원에 한 말씀 하여 주십시오” 하고 건의 드린 바 있다.
며칠 후, 경제기획원 당시 서석준 차관님께서 오라는 하명이 있어 가보니 물가국장(당시 문희갑)이 불러놓고 금주내로 우유(원유)가격 인상을 승인하라는 명이었다.
당시 농림부가 요구한 원유가격 인상은 22%와 15% 2가지의 안을 제출하였는데 22%로 승인되어 전국 낙농 농가는 축제의 분위기였다. (기존에 승인받고자 한 안은 15%)
실은 불평스러운 건의를 들으신 JP께서 경제기획원 장관님께 이야기 하신 것으로 알고 있으며, 물가국에 대한 나의 위세도 당당하게 된 기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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