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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성대에서>김병원 농협호의 당면과제

  • 등록 2016.01.29 14:09:59

 

이상호 본지 발행인

 

 타의적 농협개혁, 농협 스스로 자초
 협동조합적 가치 부합한 비전 제시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개혁 가능

 

1989년 일본에서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란 책이 출간되어 불티나게 팔렸다. 우리에게는 망언으로 잘 알려진 극우성향 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와 소니 창업자가 공동 집필한 이 책은 국내 식자층에서도 필독서로 여겨질 만큼 인기를 끌었다.
당시 일본인들은 미국과의 경제전쟁에서 승리한 걸로 생각했다. 국민들의 이런 정서를 등에 업은 저자들은 “미국의 대륙간탄도미사일도 일본의 반도체 없이는 작동할 수 없다”며 미국에 할 말은 하고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외쳤다.
그 외침의 반향은 컸다. 일본열도는 우익인사들을 중심으로 태평양전쟁의 패전을 앙갚음이라도 한 양 들썩였고 곧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봤다. 하지만 그건 주술(呪術)이고 착각일 뿐이었다.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일본경제는 끝 모를 침체에 빠져들었고 책은 서점에서 자취를 감췄다. 열망이 지나쳐서일까. ‘이불 뒤집어쓰고 만세 부른 격’이 되고 말았다. 대미의존이 갈수록 심화되는 현 상황에서 일본을 미국에 ‘할 말을 하는 나라’로 보는 시각은 적어도 지구상엔 없다.
책 설명이 좀 길어졌지만 이 얘기는 민주화 이후 농협의 역사와 쏙 빼닮았다. 역대 농협회장선거에서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양 ‘조합원과 회원조합이 주인이 되는 농협’  ‘강한 농협’이란 구호가 어김없이 등장했다.
이런 공약을 한마디로 응축하면 ‘NO라고 말할 수 있는 농협’ 일 것이다. 후보들의 이런 공약은 농협 안팎에 ‘이제 농협이 바로 설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하기도 했으나 그걸로 끝이었다. 농협은 민주화 이후 민선회장들이 줄줄이 비리혐의로 구속되거나 검찰수사 선상에 올랐는가 하면 조직운영 전반에 걸쳐 명실상부한 협동조합으로서의 면모를 갖추는데 실패했다는 싸늘한 평가를 받고 있다.
농협은 지금까지 조직의 사활이 걸린 사안에서마저 정부에 끌려 다니기 일쑤였다. 정권이 바뀔 때 마다 개혁대상으로 지목되어 수술대에 올랐고 협동조합적 가치를 훼손하는 수술(개혁)에 대해서도 NO라고 말하기는커녕 순응하는데 급급했다. 그 결정판이 지주회사체제로 가는 작금의 지배구조개편이다. 농협을 지주회사로 개편하는 개혁은 엄밀히 말하면 보호자(주인)의 동의를 받지 않은 수술이다. 이를 두고 누군가는 ‘권리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법언(法諺)을 들이댈지 모르나 농협의 주인인 회원조합이나 농민조합원은 지배구조개편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지도 못했을 뿐 더러 애초부터 그럴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 이것이 농협의 현주소다.
최근 농협회장선거에서 김병원당선자가 현행 농업경제지주를 폐지, 1중앙회 1금융지주로 전환하겠다는 공약으로 당선한 것은 주인의 뜻이 지주회사로의 전환에 있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농협은 이제 현행 지배구조개편에 대해 분명히 NO라고 말하고 협동조합적 가치에 부합하는 구조개편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김당선자의 공약(公約)은 그야말로 공약(空約)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의 농협개혁은 농협이 자초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농협이 진정 주인을 위한 협동조합으로 자리매김했더라면 타의에 의한 개혁은 명분을 잃었을 것이며 주인이 용납하지도 않았을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 농협은 체질상 정부가 주도하는 구조개편에 NO라고 말하기 어려운 집단이다. 그러나 확고한 협동조합적 가치에 부합하는 비전을 제시하고 진정 조합과 조합원을 위한 조직으로 바뀌려 한다면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이것이 김병원호(號)가 결코 피해갈 수 없는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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