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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내가 걸은 60 성상(星霜)의 목장길><30> 인공유 제조 특허 획득과 공무원 직무발명보상

  • 등록 2016.01.13 10:41:16

 

송아지 인공유 개발 연구 특허권 국가 승계 불발
심의서 축산계 인사가 평가 절하…질투성 견제인 듯

 

1972년 6월 5일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한 5월 경제동향 보고 시 특별 보고한 인공유 개발에 의한 한우조기 비육 연구보고 맨 끝에 인공유 생산 특허권은 정부 보유로 하겠다는 보고에 의해 ‘송아지 조기 이유 대용 인공유’ 제조에 관한 특허를 신청하였고 1973년 4월 10일자로 특허가 인정되었다.
1972년 6월 5일 동 보고 시 박 대통령이 총무처 장관에게 말씀하신 공무원이 신체에 손상을 입으면서 국가와 농민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연구 성과를 거두었는데, 훈장수여 하나로 되겠느냐는 말씀에 연구 공무원의 발명 의욕을 촉진하고 이들의 이직을 막기 위해 공무원의 발명에 대한 보상 제도를 곧 시행에 옮기도록 지시했다.
이날 박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청와대 정소영 경제수석비서관실이 마련한 보상제도안을 총무처가 공무원이 직무 발명이나 자유 발명에 대해 정부가 보상할 수 있도록 하는 직무발명 보상법을 제정하였다. 그 골자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고 발명자에 10~100만원의 보상금을 우선 지급하고 심사에 따라 특허권을 국가가 승계하여 특허에 의한 발생한 금액의 1/3를 발명자에게 지급하도록 하는 것이다. 본인은 9월 30일 제 1차로 100만원의 발명 보상금을 받은바 있다. 단, 특허권 실시로 국가가 얻어지는 특허수입액의 1/3를 매년 지급하도록 하기 위한 전단계로 특허권 국가승계 여부를 심의하는 정부 및 학계 전문가로 구성된 소위원회에서 발생한 특허료를 본인에게 지급하도록 되어 있어 인공유 특허권 국가승계 여부에 대한 심의 소위원회에서 불승계하기로 심의되었다.
동 심의 소위원회에 참여한 당시 농림부 김철 사료과장이 본인에게 “축산계 사람들 왜 그래” 하면서 1967~1972년까지 송아지용 인공유를 개발하여 35두에 급여한 결과 18개월령에서 451kg의 비육우를 생산하였고, 그 결과를 대통령과 각 부처 장관, 공화당 당료 앞에서 발표한 성과를 국가가 승계할 가치가 없다는 발언을 듣고 실망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본인은 소위원회 위원 명단을 물어 볼 수 있었으나 알려고 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이야기가 심의소위원회에서 나왔다는 것은 짐작이 갔다. 실은 1972. 6. 5 경제동향 보고한 다음 6월초에 전국의 축산전문가, 대학관계교수 300여명이 축산시험장으로 초청하여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한 경제동향 보고에 보고한 자료를 그대로 보고하였다.
보고 후 난상 토의 과정에서 우리 축산계의 원료이시며 학식도 풍부한 분의 첫 질문이 우리나라에서 생산되지 않은 옥수수, 대두박을 주원료로 한 배합 사료를 먹여 18개월령에서 453kg의 비육우를 생산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을 제시하였기에 본인은 실망스럽기 한이 없었으므로 그 질문에 대한 구차한 답변보다는 한마디로 “금덩어리를 먹여서라도 소를 기르는 것이 농민에 도움이 되고, 외국 쇠고기 수입을 막을 수 있다면 해야지요” 라고 답변하니 그분의 안색이 급변하는 것을 단상에서 느낀 바 있다.
후배나 같은 동료가 좋은 연구 성과를 내면 격려와 칭찬하는 것이 도리인데 이와 같은 비판 아닌 비판, 부정 아닌 부정 하는 것은 우리 속담에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것과 상통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같이 본인을 평가 절하하려는 원인은 질문자는 본인과 같은 연대의 연구직은 축산시험장에서 15~20년간 연구 사업에 종사하였는데 농촌진흥청 본청에서 펜만 쥐고 연구행정만 하다가 1967년 일본 연수 후 1969년 귀국, 1972년 3년 만에 이와 같은 큰 성과를 내니 그분의 입장도 난처하였으리라고 이해하고 싶다.
당시 같이 참석한 김영진 축산국장은 본인에게 선배에게 너무 심하게 답하지 않았느냐는 이야기를 듣고 젊은 혈기에 분을 참지 못했구나 반성한바 있다.
이와 관련하여 박정희 대통령께서 1972년 4월 6일 농촌진흥청 새마을 지도자 대회 시 비육시험우를 직접 보시고 5월 20일 경제수석비서관실에서 시험연구 결과를 보고한 자료의 맨 끝에 5월 경제동향 보고시 연구자 본인이 직접 보고토록 하고 응분의 훈격의 훈장을 수여할 것이라는 대통령의 친필이 있는 보고서를 받은 총무처는 응분의 훈격 해석에 고민이 생겼다고 한다.
먼저 본인이 3급 과장급이기 때문에 녹조근정훈f장이 적합하지만 응분의 훈격이라고 할 때 한급 승격시킨 홍조훈장이나 두급 승급시킨 황조로 고민하다가 청와대와 협의한 결과 응분이라고 하셨으니, 황조가 좋겠다는 상호협의가 되어 6월 2일(화요일) 발표시 대통령께서 직접 친수하려면 6월 1일(월요일) 국무회의에서 의결이 되어야 할 사항으로 5월 29일(금요일)까지는 국무총리의 제가를 받아야 할 사항으로 총무처장관의 제가를 얻고 오후에 국무총리 결재를 받으려고 준비하였다고 한다.
5월 29일 중앙청 식당에서 총리님과 총무처장관이 오찬을 같이 하는 자리에서 서산목장과 관계있는 김총리께 농촌진흥청 축산시험장의 연구관이 이와 같이 훌륭하게 연구한 결과를 대통령께서 직접 현장을 확인하고 보고를 받고 경제동향 보고 시 직접 보고하라는 지시와 당일 응분의 훈장을 수여하라는 지시에 의해 “황조 훈장을 수여하고자 합니다”라고 오찬 중에 지나가는 이야기로 보고하였다고 한다.
김종필 총리께서 그게 아니야 하며 대수롭지 않은 연구라는 인상을 받은 총무처장관과 상훈과에서는 난처하게 되어 국무회의에 훈장 수여에 대한 국무회의 의결도 거치지 않고 6월 2일 한 급만 올린 홍조근장훈장을 준비 수여하였다는 총무처 관계관으로부터 한참 뒤에 들었던 사실이 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본인은 훈격이 문제가 아니고 당시 서산 목장을 경영하고, 개시는 김종필 국무총리께서 인공유 개발성과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면 한우 경제가축화를 위하여 개발한 한우육성비육 기술 농가 보급에 문제가 있겠다고 판단하여 장고의 고민에 들어간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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