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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내가 걸은 60 성상(星霜)의 목장길><19> 기술연수 중 김인환 농촌진흥청장

  • 등록 2015.11.20 09:49:50

 

청장 해외서 귀국 도중 연구소 방문…1주일간 현지시찰 수행
내 연구활동 큰 관심…“승진 대신 연수, 전화위복 기회” 격려

 

1967년 농촌진흥청의 대대적인 기구 확대 시 일등공신인 본인은 피팻트도 잡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과장승진의 기회를 놓쳐버렸다.
일본 축산시험장에서 한우의 경제가축화를 위한 기술연수중인 1968년 2월초에 이태현 청장 후임으로 농림수산차관보에서 농촌진흥청장으로 부임한 김인환 청장(농촌진흥청 연구기획과장, 시험국장 역임)이 당시 통일벼의 육종 및 세대단축을 위한 필리핀 국제미작연구소의 육종현장을 시찰하고, 귀국길에 일본을 방문하였다. 약 1주일정도 일본 농림성 각 시험장 연구소를 시찰하게 되었다.
본인이 연구기획과장 및 시험국장으로 모셨기 때문에 본인에게 연수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수행을 부탁하기에, 마치 동물실험도 끝나고 실험한 사료와 분의 분석준비가 완료단계에 있어  1주일정도 시간은 낼 수 있었던 처지였다.
우선 첫 일정으로 본인이 연수중인 축산시험장을 방문한 김인환 청장님에게 일본 축산시험장 영양부장과 장장은 본인에 대한 분에 넘치는 칭찬을 해 주셨다. 송아지 조기육성에 대한 기술이론에다 볏짚과 같이 저질사료의 사료가치 향상을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는 내용 등이다.
본인 역시 열심히 연수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일본 축산시험장 영양부장이 믿어주고 있다는 점을 처음으로 느끼면서 보다 열심히 연수생활을 마치고 귀국하겠다는 생각을 다시 다짐하고 김인환 청장의 방문 스케줄대로 1주일간 수행 안내 하였다.
김인환 청장님이 일제 말기 규슈대학 재학 중 학도병에 끌려가 동경 요요기에 있던 육군훈련소(지금은 요요기올림픽경기장) 815 일본정부의 2차대전 항복당시의 군에 근무하던 나고야, 본인의 모교인 구주대학 등 방문에 수행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바 있다.
5일 정도를 안내하면서 호텔 투숙 때는 다른 방을 쓰지 못하게 하고 한방에 같이 머물면서 본인의 연수내용과 일본이 당면하고 있는 연구과제와 연구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듣고자 하셨기에 본인 역시 1년 반 동안 연수과정을 상세히 보고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고 영광으로 생각했다.
본인의 과장 진급의 기회를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일체 이야기 드리지 않고, 동경 아카사카에 있는 뉴재팬 호텔을 출발하여 하네다공항을 향하고 있는 택시내에서 김 연구관이 과장으로 승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일본에서 매우 업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는 말을 들으니 오히려 그때 과장 승진 못한 것이 전화위복이 되었다고 생각하라는 격려의 말씀을 해 주셨다.
아마도 본인의 신상에 대해 일체 함구하고 있는데 대한 위로 격려의 말씀이었다고 생각하고 당시 축산시험장 과장승진을 못하고 일본 연수를 오게 된 것이 하느님이 본인에게 주신 한우 경제가축화를 위한 기회였다고 보고 남은 6개월 동안 연구를 마치고 귀국하고자 했다.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연수 후 귀국하면 꼭 축산시험장에서 과장보다 연구관으로서 일본에서 연구한 과제를 한국에서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하네다 공항으로 가는 과정에서 말씀을 드렸다.
김인환 청장님의 체류 중 일화 몇 가지를 이 글을 통하여 남겨놓고자 한다.
첫 번째는 일본 동경 요요기올림픽경기장, 일본 나고야성 방문하고자 했던 동기는 일제 말기 학도병으로 끌려가 훈련받던 요요기육군 신병훈련소와 훈련 후 배치된 나고야 군부대에서 매일같이 미군의 폭격을 받으면서도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추억의 옛터를 회고하고자 하는 심정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극작가 한운사의 현해탄을 알고 있다는 영화장면 주인공이 한운사이고, 한운사와 같이 일본 선임병에 기합을 같이 받던 일등병이 바로 김인환 청장이었다고 하며 그때를 회상하기 위한 나고야 방문이었다.
두 번째는 당시 작업시험장의 백광훈 연구관이 일본 잠사시험장 기술연수 중 입수한 장종(누에씨)을 청장님에게 드리니, 일국의 고위직인 청장이 가지고 가다가 일본 당국에 절박되면 국익손상에 문제가 있으니 유보하자는 이야기가 있어 청장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하고, 출국 날 아침 짐과 같이 트렁크에 몰래 넣어드렸다. 그리고 나서 공항에서 화물로 통관된 것을 확인하고 짐 속에 누에씨가 있다는 것을 말씀 드리면서 “이조시대 목화씨를 몰래 가져온 문익겸 역할입니다” 하던 대화가 지금도 생각이 난다.
세 번째는 당시 청와대 윤근환 농림담당비서관께서 청장 귀국시 고위직 몇 분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였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박종문 연구기획과장(농림부장관 역임)이 본인에게 국제전화가 있다는 말씀을 드렸더니 김 청장께서는 단호하게 거절하셨다.
그러나 본인 의사대로 미쓰고시 백화점에서 당시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고급 스웨터 3개를 구매하여 당시 농촌진흥청의 통일벼 육성에 관심이 있던 청와대 및 정부관계관님께 귀국선물로 정중하게 전하여 고맙다는 인사를 받고, 본인이 거절한 선물 준비에 김연구관의 판단으로 대신 선물을 준비해준 것이 고마웠다는 이야기를 다른 지인을 통하여 후에 들은바 있다.
이는 선물이라기보다 농촌진흥청 발전과 우리나라 농업발전에 도움을 주고 있는 관계자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며, 공직사회의 개인 이익을 위한 뇌물이 아니고, 우리나라 농업발전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하여 주신 관계관에게 적절하게 감사 표시한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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