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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내가 걸은 60 성상(星霜)의 목장길>18. 귀국 인사 때 일본 축산시험장장의 전기료 물고 가라는 에피소드

  • 등록 2015.11.18 09:47:35

 

김강식 고문((사)한국육류유통수출협회)

 

큰아들 심장병 재발 한국행 비보에 고심하다 ‘한줄기 빛’
연구소와 연이 닿아 우여곡절 끝 日서 수술…현지 성공사례로

 

본인의 장남은 1959년생으로 출생시부터 입술과 손톱, 발톱이 파란색 기운이 돌면서 호흡현상이 점차 급해져 1962년(당시 4살)때 서울대학병원에서 전문 진단을 받았다. 그 결과 소아심장병인 화로4증후군이라는 병명의 진단을 받고 수술까지 하게 되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정상으로 회복되고 있었다. 하지만 1969년 4월경 한국에서 나에게 편지 한통이 왔고 아들의 증상이 갑자기 심해져 다시 병원에 가야 한다는 연락이었다. 재진단을 받게 되었고 별도의 수술방법이 없다고 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만 가득하였고, 연수생활도 손에 잡히지 않아 같은 연구실의 하마다씨에게 현재의 상황을 토로했다.
하루는 하마다 연구원이 아사히과학이란 월간잡지를 보이면서 지바현의 쓰루마이 소아병원에서 5살된 딸의 심장병 수술이 성공하였다는 기사를 보여주며 기사를 쓴 아버지를 만나보라고 하면서 위로성 격려를 했다. 그러면서 월간 아사히과학이란 잡지의 기사취재에 응한 아라이와 대면할 수 있는 장소와 시간을 알려줘 그분과 만나 지바현의 쓰루마이 병원이 일본 최고 수준의 소아심장병원임을 소개받게 되었다.
마침 일본축산시험장이 지바현 지바시 아오바정에 위치하고 있고, 지바의과대학과 부속병원이 인접해 있을 뿐 아니라 동 대학의 미야모도 교수가 본인의 연구실장인 가미오가 실장과 동물실험을 같이하고 있어, 미야모도 교수의 소개를 받아 서울대학병원의 병상기록을 가지고 쓰루마이병원을 방문하여 상의한 결과, 치료 수술이 어렵게 되었다며 난색을 표하였다.
본인은 병원장의 의견을 받아들이면서도 심장병을 재수술할 시 만약 실패하더라도 어떤 원망도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수술을 받아주기를 간곡히 요청했다. 이런 본인의 뜻이 닿았는지 며칠 후에 수술을 하겠다는 연락을 받고, 심장병 환자인 10살 장남과 아내를 일본으로 오도록 여권 수속을 받아 4월말 경에 일본에 도착했다.
막상 도착시켜 정식 입원 일자에 입원하려고 할 때의 마음은 아내와 같이 헤아릴 수 없는 착잡한 심정을 달래기 위해 입원 전에 동경타와 우에노 동물공원 등을 구경시키고, 지정된 입원일자에 입원시켰다.
입원한 지 30일이 경과했어도 수술일자가 잡히지 않아 초조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이와 같이 수술일자를 잡지 못한 원인은 수술 집도팀의 의사 5명의 의견 불일치였다.
드디어 6월 10일로 수술일자가 결정되어 오전 8시경 장남을 수술실로 보내고 본인 내외는 착잡한 심정으로 본인의 연구 성과와 같이 개선장군의 심정으로 무사히 성공하여 귀국할수 있도록 해달라는 기도만을 끊임없이 했다.
오후 5시경 주치의사 오카모도원장이 수술실에서 나오면서 잘되었으니 두고 보자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 아내와 나는 부둥켜안고 한없이 기쁨의 눈물을 흘린 기억이 생생하다.
후에 알았지만 처음 서울대학병원에서 실시한 수술은 당시 의학기술로는 최선의 방법이었지만 일단 수술 후 재발한 심장병(화로4 증후병) 치료는 당시 의학기술로는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동 의뢰진이 개발한 시술방법인 저체온마취법(체온을 15℃로 내림)으로 세계에서 2번째로 (1번째는 소련) 성공한 사례로 수술 후 2주째 되던 날 일본 외과학회가 동 병원에서 개최할 정도의 심장병학회의 쾌거로 다루고 있었다. 이는 바로 일본 축산기술연구 이외의 또 하나의 쾌거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후 고등학교 국내 과정을 마치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으며, 이민 온 우리 교포자부와 결혼, 각별한 내조와 건강관리를 받으면서 일본 쓰루마이 병원 수술 후 30년, 1989년 세계적 심장병으로 유명한 뉴욕 콜롬비아대학병원의 제3차 수술을 마치고, 계속적인 관리를 받으면서 60세 갓 넘은 인생으로 두 손자에게 한국의 혼을 심어준 가정교육과 교포사회의 총망을 받으면서 미국시민이 된 장남과 며느리에게 끝없는 찬사를 보내주고 싶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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