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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내가 걸은 60 성상(星霜)의 목장길>17. 귀국 인사 때 일본 축산시험장장의 전기료 물고 가라는 에피소드

  • 등록 2015.11.13 10:28:17

 

현지 시험장 전기료, 예산액 대비 10% 이상 더 나와 목간 전용 불가피
스스키 장장 “한국연수생 열정이 원인…전 직원 분발하라”

 

1969년 10월 15일 소정의 일본 축산시험장의 기술연수를 마치고 귀국 인사차 스스키장장에게 장장님을 비롯한 영양부장 및 각 연구실장, 연구사 여러분의 지도와 협조로 많은 것을 배우고 귀국하게 되었다. 앞으로도 아낌없는 기술 지도를 받고자 한다는 인사를 정중히 드렸더니, 귀국해서 여기서 연수한 연구결과가 귀국의 축산발전에 도움 되도록 노력하라는 격려의 말씀을 해 주셨다.
그러면서 본인에게 전기료 지불하고 가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 당시에는 그게 무슨 의미의 이야기인지 알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장장님께 인사를 마치고 나왔다.
1969년 1월초에 일본 축산시험장 영양부 제1연구실에서 같이 일하였던 하마다로부터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그 내용은 1969년 1월 4일 신년 시무식 석상에서 스스키장장이 전 직원에게 “좀 더 분발하여 연구에 매진하지 않으면 후진국에 모든 기술을 선점 당한다. 한국연수생 김군이 귀국 인사차 왔기에 전기료 물고가라고 했더니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 하더라”라고 하시면서, 축산시험장의 연구예산 중 일정 전기료의 예산이 책정되어 있는데 1968~1969년 전기료가 예산액보다 10%이상 사용되어 예산의 목간 전용이 불가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원인을 조사해보니 영양부에 한국에서 기술 연수차 파견된 본인이 새벽 1~2시까지 각 연구실에서 1200℃의 전기료(회분 태우는 가마)를 가동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보고가 있었던 것.
야간에 높은 전력이 소요되는 전기료를 사용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는 말씀을 신년 시무식 석상에서 전 직원에게 하시면서 머지않아 현 일본기술이 한국에 밀리게 될 수 있으니 좀 더 분발하라는 신년훈시가 있었다고 알려준 편지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당시 일본 축산시험장 스스키장장의 판단이 옳다고 본다. 당시 고도 성장기에 있던 일본은 적군파가 주도한 대학은 물론 모든 산업체, 공무원까지 파업을 일삼았으나 우리는 민족부흥, 잘살아 보세 등의 새마을 운동을 농촌과 도시 할 것 없이 전개하며 오늘 현재 세계경제 12개국에 일원으로 참여하게 되었으니, 1969년 시무식 때 스스키장장의 예언이 빗나가지 않았다고 회상한다.
가축사료영양시험연구를 위해서는 사료 및 생산축산물의 영양성분(단백질, 탄수화물, 지방, 무기성분)의 분석평가가 첫째 과제이며, Ca, P 등 무기성분 분석을 위해서는 1200℃의 전기에서 2시간 태워 측정하기 때문에 많은 전력이 소모된다.
본인의 숙소가 시험장 정문 앞에 있어 연구실까지는 불과 5~10분 소요되어 아침 6~7시에 연구실에 들러 전기를 입력하여 직원이 출근하였을 때는 1200℃가 되기 때문에 과거 1회밖에 분석하지 못한 무기물 분석 작업을 2~3회로 늘릴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모든 연구실의 연구자가 본인에게 호의적으로 또는 본인의 연수협력과 지도를 아끼지 않았다고 본다.
여기에 더해서 당시 일본 공무원의 공사를 분명히 하는 몇가지 사례를 소개하면, 당시 적군파가 주도한 파업 등 사회 혼란 속에서도 일본 경제 및 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하고 있는 사회적 저변에는 공무원 사회가 부패되지 않고, 이들이 국가발전에 혼신을 다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공무원 노조는 파업은 하지만 파업투쟁 방법이 한곳에 모여 외치는 집단투쟁 및 행동보다는 투쟁사항이 발생했을 때 요구사항을 머리띠에 매고 자기책상에 그대로 2~3시간동안 앉아있으면서 노조대표만이 직장책임자와 토론으로 결정하는 건전한 투쟁방식인 공과 사를 분명히 하는 일본 공무원 사회였다고 느낀 바 있다.
가령, 당시 전화는 교환이 상대를 연결하는 상태에서 직원이 시험장 외부에 전화 요구할 때는 자기 성명을 대고 교환에게 이야기하면 그 사용회수를 기록했다가 월말 봉급에서 제하는 실태였다. 또 각 연구실에는 전열기가 있어 커피 및 차 등은 각자 필요할 때 끓여먹도록 되어있는데 음료전열기 앞에 각자의 이름으로 된 커피를 자기 스스로 끓여 먹고는 바른정(正)으로 기록하고, 월말이면 봉급에서 먹은 회수만큼 비용을 내고 있었다.
일본이 건전하게 발전하는 것은 이처럼 소소한 부분까지도 공무원 사회가 신경 쓰고 있다고 생각되어 우리 공무원 사회와 비교되는 부분이라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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