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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내가 걸은 60 성상(星霜)의 목장길>10. 취미로 시작한 양봉·우장춘 박사의 가르침

  • 등록 2015.10.16 10:23:58

 

김 강 식 고문((사)한국육류유통수출협회)

 

퇴직 후 양봉 유랑생활 꿈 꾸며 충분한 사양기술 습득
수년간 경험 살려 KBS 라디오 농민방송 전담…집필 계기

 

1957년 12월 경기도 안양종축장에 근무하기 시작한 그 이듬해 봄, 관악산 입구 안양유원지 근처에서 양봉하는 농가가 있어 시간이 있는 대로 방문, 양봉하는 농가와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양봉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꿀벌은 연약한 곤충으로 하나의 여왕벌을 중심으로 이상적인 사회를 이루고 있으며 오로지 자기봉군의 세력과 종속을 유지하기 위하여 몸을 아끼지 않으며, 죽는 날까지 자기보다는 봉군을 위해 일하다가 거룩하게 희생되는 것을 영광으로 안다.
별들의 발전적인 부업으로서 스스로가 자유롭게 각자 맡은 일만을 완수하고 질서를 유지하면서 하나의 공동사회 생활을 형성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인간 사회에 비해 고도의 민주주의 국가 사회를 이루고 있다.
이와 같이 벌의 사회구조는 우리 인간 사회와 비교할 점이 많으며 나아가서는 그 근면성과 질서의 유지 및 분업의 발달, 하나의 영도자와 봉군 등을 볼 때 정서교육상으로도 중요하다.
꿀벌이 노력하여 모아 둔 꿀과 밀랍을 우리 인간이 채취하여 이용 할 수 있는 양봉의 흥미를 느껴 벌 1통을 구입하여 2통으로 늘려 농사원으로 이직 시 벌통을 함께 가지고가 양지바른 곳에 놓고 수원 근처의 밀원의 꽃을 따라 이동하면서 취미삼아 양봉을 시작하였다.
단, 취미로 20여통을 유지하다가 공직 퇴직 후 봉군을 늘려 최남단 제주의 봄 유채꽃으로부터 4~5월 남쪽의 자운영, 5~7월의 아카시야 밤꽃, 9~10월 강원도의 싸리, 메밀꽃을 따라 낭만적인 이동 양봉 유랑생활의 꿈을 품었다.
최소 건전 봉군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지만 농촌진흥청의 공적업무 때문에 양봉을 관리할 수가 없어 분양을 원하는 지인에게 전부 나누어 주고 말았다.
그 당시는 양봉관리와 기술은 충분히 습득하여 공직생활을 그만둔 후에 다시 시작할 생각이었지만 나이 60에 공직을 떠나고 보니 젊었을 때의 낭만적인 생각은 어디로 떠나가고 말았다. 그러나 몇 년간 실제 양봉을 하면서 체험한 경험을 가지고 당시 새벽 5시 KBS 라디오 ‘농민의 시간’에 양봉에 대한 기술방송을 전담하게 되었다.
이때 참고가 된 자료는 농촌진흥청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1930~1945년까지 ‘월간 조선양봉’이란 잡지를 검색하여 계절별, 지역별 양봉관리 기술을 방송하고 있었다.
어느 날 대전에서 본인은 ‘양순천입니다’ 라고 소개하면서 나를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전화가 와 그분을 만나니 그분은 당시 ‘양봉전서’라는 책자를 집필한 분으로 나이가 60대 중반이상의 노인이었다. 만나보고 싶었던 사유를 물었더니 자기가 일정시부터 30년이상 양봉을 하였기에 국내 양봉가는 어느 정도 다 아는데 새벽5시 KBS라디오 ‘농민의 시간’에 나와 방송하는 것을 처음 들었을 뿐 아니라 전국 방방곳곳의 계절별 꽃피는 나무와 시기를 방송하는 것을 듣고 만나고 싶었다는 이야기였다.
그 이후 새마을운동이 한창인 60년대 초 출판사로부터 ‘새 양봉기술’이란 농민용 책자를 써달라는 간곡한 요청과 화학사로부터 농촌진흥청 추천도서로 양계책자의 원고를 쓴 바 있다.
그 분야에서 인정받지 못한 병아리 시절, 자기 전공분야의 책을 낸 다음 느낀 것은, 책을 집필함으로 그 분야의 완숙에 가까워 질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가능하면 미숙한 자기전공 분야의 원고와 책을 집필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지금은 후배들에게 권장하고 싶다.
이와 관련한 일화 한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8.15 해방 후 우리나라 배추와 무 종자의 육종에 크게 기여하신 원예시험장 장장 우장춘 박사께서 1959년 본인이 농사원 연구사로 년 초 원예시험장 시험연구 사업계획 및 연말결과를 심의평가 하는 시험지도 위원회에 참석하였다.
이렇다 저렇다 발언하는 것을 본 우장춘 박사님은 나에게 충고 겸 따끔한 말 한마디 해 주신 것이 생각나 여기에 적어두고자 한다.
본시 우리말을 못하기 때문에 일본말로 20대에서 읽고 30대에서 들여다(연구)보고 40대에서 쓰고 50대에서 가르치고 하는 것이 농업 과학자의 정도라는 말씀을 들었다.
본인이 새 양봉기술과 양계 농민교제를 30대 초반에 책자를 낸 것은 고 우장춘 박사의 따끔한 교시를 무시하였다고 지금도 반성하고 있다. 그 때까지 본인이 직접 체험한 실기기술과 국내외에서 이미 발행한 책자를 참고하여 우장춘박사의 40대에서 쓰라는 것을 30대에서 쓴 것을 반성하면서 그때 양봉과 양계에 대한 일괄된 기술이론을 머리에 익힌 기회였다고 생각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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