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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정영채 박사의 학문과 인생에 대한 회고 / 10. 나의 연구와 연구환경 변화(2)

60년대 초 미생물실습은 대장균 분리배양이 고작

  • 등록 2007.11.05 10:09:37
日서 보유 하수체적출기술 독자연구로 성공 쾌거

대학의 연구환경은 교육환경과 병행해서 발전해 왔다. 6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까지 약 40년간 대학인으로서 대학의 기능인 교육과 연구의 기능을 말하자면 실로 꿈만 같다. 1961년 석사학위 논문을 작성할 때는 설문조사와 미생물실험실에서 학생들이 미생물실습을 하는 정도의 세균배양과 총균수 산정 그리고 대장균의 분리배양정도가 고작이었다. 이때 우리나라의 GNP는 70불이 채 되지 못했었다.
그 후 1960년대 초 잠시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의 권이혁 교수님과 미생물학교실의 이호왕 교수님을 모시고 소, 닭, 돼지, 닭, 개 등 가축에서의 일본뇌염의 감염과 보균자 상황을 조사하는 혈청증의 일본뇌염 항체검사 실험으로 몇 편의 논문을 낸바 있다. 이때는 매일같이 주사기와 시험관을 세척 멸균해서 채혈, 혈청분리 그리고 HI, HA 테스트로 항체 검사를 했었다. 그 후 닭에 있어서 백혈구 또는 면역과 관계되는 총배설강낭에 관한 실험으로, 총배설강낭의 적출 후 혈중 백혈구의 변화와 대상기능(代償機能) 등에 대한 실험을 한 바 있다. 이 실험을 하는 과정에서 조병율 교수님의 지도로 우리나라에도 류코사이토준병이 있다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기도 했다.
1965년에는 방사성동위원소 이용에 관한 기초와 농학적 이용방법에 관한 강습과 훈련을 받고, 방사성동위원소 취급국가면허를 받았다. 그 후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한 각종가축에서의 무기물의 흡수 배설과, 갑상선기능 측정을 위한 131I의 흡수배설, PB131I 관련 실험, 방사능 물질에 대한 오염 등에 관한 논문을 수십 편 발표했으며, 이 때 원자력청으로부터 연구비도 많이 받았고, 실험기구 등의 지원도 받았다. 또 이를 계기로 방사성동위원소 취급에 관한 강의와 IAEA와도 인연을 맺게 됐으며 미국 코넬(Cornell) 대학에서의 방사성동위원소 계측기기의 이용방법 훈련도 받을 기회를 가진바 있다.
중앙대학교 재직 중에는 나의 방사성동위원소 취급면허에 의해서 방사성동위원소와 방사능물질 관리 책임자로 임명됐으며 중앙대학교의 많은 교수님들께서 방사성관련 기기와 동위원소를 이용한 실험 연구가 가능했었다.
또 내분비선의 상호관계를 연구하기위해 내분선의 적출시험, 부분거세 등의 실험을 수행했었다. 이 과정에서 하수체, 성선, 갑상선 및 부신의 상호 기능적 관계로 1967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방사성동위원소에 의한 radioautography와 갑상선기능의 조직학적 특히 paper weight method의 기법을 도입한 연구도 수행 한 바 있다.
1968년에는 일본 나고야(Nagoya) 대학에서의 닭의 내분비선의 전자현미경적인 연구를 한 후, 귀국해 전자현미경에 의한 연구를 계속 하고자 했으나, 전자현미경의 설치가 늦어져 뜻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지금도 아쉬움이 남는다.
1967년에 흰쥐에서의 하수체적출수술을 19번째 수술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나로서는 자부심을 느끼게 한 쾌거였다. 이 실험은 이용빈 박사님의 권유에 힘입어 시도 됐다. 이용빈 박사님께서 1960년대 초 미국에서 연구를 마치시고 귀국하시던 도중 일본에 머무르시는 동안 내분비 분야의 연구에는 하수체적출기술이 필수라 생각하셨다고 한다. 이 박사께서는 당시 일본에서 유일하게 이 기술을 보유하고 계시는 분을 찾아가서 보여 달라고 했더니, “당신이 봐서 되겠느냐”는 수모를 당하셨다는 말씀을 하시며 우리도 꼭 이 기술이 성공됐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하셨다.
그후 몇 년 동안 고심 끝에 기구와 수술 확대안경을 제작해 성공을 볼 수 있었다. 1시간에 90마리 전후까지 성공이 가능했었다. 이 기법은 후두하경로를 통한 적출방법으로, 1971년 이규승 박사의 박사학위 논문이 작성되었으며, 그 후 많은 제자들에게 기법을 전수하려 했으나 아직까지도 이루지 못하는 아쉬움을 간직하고 있다.
한편 소의 다부분만에 관한 연구로 혈청과 우유에서의 호르몬검출로 조기 임신진단시험, 각종호르몬분석시험을 진행했으며, 실험동물에 관한 실태조사와 실험동물의 중요성 등에 관한 보고서도 수십 편이 보고됐다. 1974년 미국의 UC, Davis, Dr. Stormont Lab.에서 가축의 혈액형에 관한 연구 후 귀국해 수차례의 세미나 등을 개최한바 있고 이후 가축의 등록과 개량을 위한 후대검정 등을 혈액형에 의해서 해야 함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131I의 다량투여에 의한 갑상선의 파괴와 내분선의 상호기능에 관한 실험도 진행됐으며, 이때 이규승 박사와 함께 많은 논문을 발표한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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