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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정영채 박사의 학문과 인생에 대한 회고 / 9.나의 연구와 연구환경 변화(1)

50~60년대 연구시설 전무…지원체계도 열악

  • 등록 2007.10.31 10:11:39
논문 한편 쓰려해도 자비 털어 실습비 등 충당

우리나라 대학의 연구환경은 최근 20여년간에 걸쳐 실로 놀랄 만큼 변했다. 해방 후 1950년대 말까지는 내가 경험한 바로는 대학의 연구 시설이라고는 전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봉급성격인 연구수당이란 명목으로 매월 지급되는 극히 적은 금액이 있었을 뿐이었다. 따라서 교수님들은 연구비도 없었지만 연구의욕도 거의 없었고, 혹 연구비가 있다하더라도 1년에 1~2명씩 돌아가며 아주적은 금액을 수혜하고 보고서를 제출해야했다. 그러니 연구논문이란 것도 거의 생각하지 못했다. 60년대가 되면서 반강제로 1년에 1편의 논문을 내야한다고 했지만 거의 형식에 불과했다.
그 후 60년대 후반부터 연구의 분위기는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고 얼마 안 되는 금액이지만 교육부에 연구조정비가 반영되었다. 실험연구 시설도 외국의 차관에 의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학생의 강의와 실습을 우선했고 연구라고 하는 말을 꺼내면 제외되는 경우가 많았다.
아주 기초적인 논문 한편을 쓰려고 해도 학생실습비로 배당되는 돈으로 시약이나 살 정도이고 봉급을 털어서 시약과 기구를 사야만했다. 결국 대학의 연구기능은 70년대 초 구제 박사학위 남발시대를 거쳐 80년대가 되면서 경제 성장과 더불어 연구비가 증액되고 해외에 나가 연수를 받고 돌아온 교수들에 의해서 불이 붙기 시작했다. 90년대부터는 본격적으로 연구다운 연구가 시작되었고 연구 업적도 나오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나의 연구를 위한 배역 : 나는 1961년 2월, 석사학위를 받기위해 논문을 처음으로 발표했다. 이때 제출되는 논문은 서울시내 요식업소의 식품 및 환경위생학적인 조사연구였다. 1967년 2월, 토끼와 기니픽에 있어서 하수체를 중심으로 한 성선, 갑상선 그리고 부신의 상호관계에 관한 내분비 학적 기능의 연구논문이 박사학위를 위한 논문이었다.
연구를 위한 실험 기술의 습득으로는 1965년 방사성 동위원소 취급 훈련과 취급면허를 취득했다. 그 후 일본 나고야대학(나고야大學)에서의 내분비선의 전자현미경적 연구는 당시 세계 수의해부학회 부회장이시며 나고야대학 농학부 해부학교실 주임교수이셨던 야쓰다미끼오 박사님의 주선으로, 미국 UC. Davis에서의 가축의 혈액형에 관한 연구는 작고하신 김선환 박사님과 UC. Davis 수의과대학 번식육종학교실의 Dr. C. Stormont 교수의 주선으로, micromanipulation에 의한 세포의 분할은 냉동정액으로 유명한 영국 캠브리지대학의 Polge 박사의 연구실에서의 견학으로, 미국 U. of Pennsylvania에서의 IVF 그리고 U. of Georgia에서의 IVF와 egg micromanipulation에 관한 연구는 오연각 교수님과 세계최초의 체외수정 송아지를 탄생시킨 Dr. B. Brackett의 주선으로, 미국 Cornell 대학에서의 방사성동위 원소의 이용기법과 ET에 관한 연구는 Cornell 대학의 신상재 박사님과 이규명 박사님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다.
연구에 관한 옛 이야기 : 대학재학중 어느 해 여름 방학이 되어 잠시 고향인 충남 예산 삽교에 내려갔다. 내가 고향집에 내려가면 농촌에서 일을 하시는 어른들께서 초저녁에 바깥마당에 모이셨고, 서울이야기며, 나도 모르는 시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등을 물으시기도 하셨다. 어느 날 저녁이다. 나의 친구 부친께서 오셔서 여러 가지 말씀을 나누게 되었다. 그분은 우리 마을에서 오래전부터 어린이나 청년들에게 한문(漢文)과 주산(珠算)을 가르쳐 주셨고, 나도 배운 적이 있다.
그분은 밤하늘에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시며 그 어른께서 물으셨다. 자네는 지금도 지구가 돈다고(地動說) 생각하는가? 둥글다고 생각하는가?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한다고 하는데 자네는 어떤 공부, 어떤 연구를 하는가? 연구를 하는데 돈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왜 돈이 필요한가?
한심스럽다는 생각으로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이때 우리나라의 GNP는 60불 정도였다. 나는 연구를 해 본 경험도 없고 해서, 물으시는데 대한 명쾌한 답을 해드릴 만한 지식이 없었다. 난감한 일이었다. 이어서 그 어른께서 “나는 돈을 전혀 드리지 않고 연구를 하고 있네…, 그간 나는 많은 연구를 했는데 주판(珠算)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가·감·승·제를 빨리할 수 있나, 어떻게 하면 암산(暗算)을 빨리 할 수 있는가를 연구해서 학생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데 많은 성과가 있었으나 돈은 한 푼도 들지 않았네”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생활에 필요한 실용적인 연구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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