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1 (토)

  • 흐림동두천 25.4℃
  • 흐림강릉 27.3℃
  • 흐림서울 27.2℃
  • 대전 24.8℃
  • 대구 26.7℃
  • 흐림울산 29.3℃
  • 광주 26.3℃
  • 흐림부산 29.7℃
  • 흐림고창 26.9℃
  • 제주 27.1℃
  • 흐림강화 26.4℃
  • 흐림보은 25.3℃
  • 흐림금산 25.2℃
  • 흐림강진군 25.7℃
  • 흐림경주시 27.9℃
  • 흐림거제 29.0℃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연재

정영채 박사의 학문과 인생에 대한 회고/ 7. 내가 걸어온 교육환경의 변화(3)

열악한 교수진 환경…8개 대학 돌며 다수과목 강의

  • 등록 2007.10.22 10:17:17
밤새워 강의준비 비일비재…방학땐 번역작업도

나의 강의 백화점 : 나는 1961년 3월 석사학위를 마친 후 세상물정도 모르고 교수님들의 권유로 조교가 되면서 교수님들의 강의와 실습을 도와드리는 한편, 시간강사 발령을 받아 대학 강단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이때의 대학 교수진은 너무나 열악했다. 교수 정원도 늘어나지 않았고, 대부분의 대학이 고등학교 선생님들 가운데 조금 우수하신 분을 교수로 임용하던 시절이었다. 박사학위 소지자는 거의 없었고 석사학위자도 별로 없었다.
내가 1961년 2월에 석사학위를, 1967년 2월에 박사학위를 받은 것이 당시로서는 비교적 빠른 것이었기에 교수님들은 내가 아무 과목이나 다 강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던지, 아니면 내가 맡은 과목이 다른 분들이 꺼려하는 과목이었기에 무조건 해보라고 하셨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강의를 맡았던 대학만 해도 서울대학교 수의학과와 축산학과를 비롯해서 충남대학교, 중앙대학교, 충북대학교, 전북대학교, 건국대학교, 고려대학교, 세종대학교이며, 여기서 조직학, 발생학, 통계학, 라틴어, 가축번식학, 가축인공수정학, 식품위생학, 환경위생학, 내분비학, 미생물학, 질병학, 비유생리학, 번식장애론, 생명공학, 방사성동위원소론 등 다양한 과목의 강의와 함께 실습까지 맡았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한심하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그 시대에는 자기 전공과목 하나만을 강의 할 수 있었던 시대는 물론 아니었지만 어떻게 이런 과목들의 강의를 할 수 있었는지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안 된다.
이때 몇 가지 기억나는 것이 있다. 60년대 말 전북대학과 충북대학를 출강하며 격주로 토요일과 일요일에 종일토록 강의를 해서 강의시수와 진도를 맞췄다. 가장 고생스러웠던 것은 대학원을 나오자마자 조교시절에 통계학과 라틴어 강의를 맡은 것이었다.
특히 통계학 강의 시간에는, 자연과학 실험논문에 통계학적인 유의성 검정방법이 막 도입될 무렵인지라, 5~6분의 교수님들께서 뒷자리에 앉으셔서 수강을 하시기 때문에 농담 한마디 못하고 허튼 소리로 시간을 보낼만한 여유도 갖지 못했다.
1주일에 통계학 2시간, 라틴어 1시간, 그 외에 해부학은 기초, 비교, 응용해부학에 실습까지 도와드려야 했고, 때로는 조직학과 발생학도 강의를 들으며 실습을 도와드려야만했다.
특히 통계학 2시간과 라틴어 1시간 강의를 위한 준비는 며칠 밤을 새워야 했고 다음 주에 강의 할 준비가 채 안됐을 때는 잠도 안 오고 밥맛도 없었다. 이 두 과목의 강의 준비가 다소 여유 있게 준비가 됐을 때에 하룻밤이라도 비로소 다리를 펴고 잠을 잘 수가 있었다. 그런데 1주일이 왜 그리 빨리 다가오는지 원망스럽기도 하고 하루 이틀이 지나 강의 날짜가 다시 다가오면 또 잠도 않오고 밥맛 또한 떨어지기 시작했다. 해부학에 얽힌 사연은 더욱 말 할 것도 없다. 학생들이 외우고 실물테스트에 통과하지 못하면 방학에도 돌려보내지 않았다.
한편 1962년 내게 ‘Sisson의 Anatomy of the Domestic Animals’를 완역하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무더운 여름방학 동안 새벽에 나와 일을 하다 밤에 돌아가느라 햇빛을 보지 못하고 한해 여름을 보낸 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그러한 일이 싫지도 않았고 못하겠단 말 한마디도 없이 교수님들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했을까? 그러나 한 번도 휴강이나 강의에 소홀한 적은 없었다. 그저 나 같은 사람의 강의에 말없이 열심히 따라 주는 학생들이 사랑스럽고 고마울 뿐이었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