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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인형의 황소발자욱<59회>

제4부 이인형 하면 고집불통?(3)

  • 등록 2007.05.19 10:53:34
1. 나의 자화상은 (3)

‘정직하고 명랑하게’ 부친의 가훈 따라
36년공직 소명의식으로 우직하게 퇴임

우리 집 가훈은 “정직(正直)하고 명랑(明朗)하게”이다. 가훈은 아버지께서 1960년대 후반기에 지어 주셨으며 세상을 떠나시기 3년 전인 1986년 늦은 봄에 땀을 흘리시면서 쓰셔서 귀중한 휘호(揮毫)로 남겨 주셨다. 아버지께서 가훈을 정직하고 명랑하게 살라고 지어 주신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축산시험장에서 연구생활에 전념하고 있을 때인 1968년도에 나의 대학동기동창인 성기열 사장, 정근기 교수 그리고 유한웅 사장이 축산업계와 배합사료업계로 진출한 후 나에게 공무원 봉급으로는 아이들 교육문제와 더불어 일상적인 생활을 하기도 어려우니 공무원을 그만두고 나오라고 충고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H배합사료공장의 책임자로 발령이 나도록 했다.
이때에 아버지께서는 공무원으로 일생을 마치라고 하시면서 공무원은 봉사자로서 정직이 우선이라는 말씀도 하셨다.
두 번째는 내가 어려서부터 거짓말을 하면서 집에 있는 물건을 밖으로 가지고 나가는 일, 마을 골목대장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쌀이나 먹을 음식을 가지고 오라고 하면 몰래 가지고 가서 골목대장에게 바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 때마다 어머니께서는 없어진 흔적을 발견하셨으며 이로 인해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꾸지람을 많이 들었다. 다시 말하면 항상 아버지와 어머니를 속이는 것이 생활화 됐으니 정직하게 살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나는 어려서부터 말수가 적었고 항상 시무룩했으며, 거의 웃음을 띠며 생활하는 경우가 없었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항상 수심에 잠겨서 혼자 있기를 즐겼기에 명랑하게 살라고 삶의 지침을 내려 주신 것이다. 이렇게 해 가훈에 담긴 뜻과 아버지의 엄격하신 생활신조를 이어받아 공무원생활 36년간을 바보스럽도록 우직하게 지내며 정년퇴임을 하게 됐다.
나의 퇴임사는 내 인생에 간직하고 싶은 말들을 정리한 것으로서 밝히고자 한다.
■퇴임사=오늘 바쁘신 중에도 저의 퇴임을 빛내주시기 위해 참석해주신 내외 귀빈에게 감사를 드리며 “(중략)” 그동안 공직자로서 축산업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일이라면 차선보다는 최선의 방법을 선택했고, 나 자신과 가정보다는 산업분야와 직장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면서 사심없이 앞만 보고서 뛰다보니 어느덧 인생은 60부터라는 새로운 삶의 출발점을 맞게 됐습니다. “(중략)” 지난날을 생각해보면 이곳 오목천동 축산마을에는 1년 365일 아침이면 동편 언덕 위에 붉고 둥근 해가 밝은 빛을 비치면서 떠오르고, 산 까치와 참새의 지저귐이 시작되는가 하면, 숲이 우거진 여름에는 꾀꼬리가 날아다니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축산인의 보금자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곳에도 자연의 아름다움과는 달리 가끔 견디기 어렵고, 고통스러운 시련이 닥치곤 하는 것을 보아 왔습니다. “(중략)” 우리에게는 과거도 중요하지만 내일이 있고 미래가 있기에 절망보다는 희망에 찬 의지와 신념, 그리고 지구력과 프로정신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기입니다. “(중략)”
그리고 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오늘 아침에 집사람으로부터 생전 처음 소원이 있다면서 들어 달라는 청을 받았습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당신은 머리가 좋지 않으니 일을 잘 할 리가 없고, 사근사근하고 상냥하지 못하니 윗분들을 잘 모시지 못했을 것인데 공직자로서 36년간을 대과(大過) 없이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주위의 모든 분들과 동료직원 모두를 잘 만난 덕이라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드려야 하겠다는 소원이었습니다. “(중략)”
끝으로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내외귀빈 여러분과 동료직원 여러분 “(중략)” 퇴임사를 대신하고자 합니다. 1997년 11월14일 이인형 드림.

나는 더러 선후배들로부터 남들과 같이 두루 뭉실하게 넘어 가다가 할 수 없을 때에 가서 일을 수습하면 일 잘한다는 소리도 듣고 심신이 편안할 터인데, 몇 년 뒤에 닥칠 일을 왜? 앞서서 일을 벌려 욕을 먹고, 적을 만드느냐는 충고를 받았다.
그런데 나에게 이상한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과나 기관을 옮기게 돼 부임을 하고 보면 일거리가 앞에 나타나 나를 반갑게 맞이하니 어떻게 모르는 척하고 넘어 가겠는가? 그래서 공직생활과 대학의 강의를 한 40여 년간, 가정이란 것을 잊고 직장에 모든 것을 걸고 살아왔다.
따라서 늦게나마 반성하고 참회 하고자 2003년에 2년만 더 맡아 달라고 사정을 하는 대학 강의, 단체의 장을 맡아 달라는 요청과 또 다른 기관의 감사를 맡아 달라는 것을 모두 사양을 하고, 가정으로 돌아왔고 2004년부터는 집사람, 자식들, 그리고 손자들을 위해 봉사를 하면서 가정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즐거운 삶을 영위하고 있다.
이것이 인생이란 것도 깨닫게 됐으며 고집불통이란 나의 브랜드를 지금도 버리지를 못하고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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