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낙농

<기고>우유 소비기한제 유예, 실질적 후속대책 수반돼야


윤 성 식  교수(연세대학교 생명과학기술학부)


낙농업계에서 발표한 통계를 보면, 국내에서 연간 생산되는 총 205만 톤의 원유 중 시유로 팔리는 것은 약 160~170만 톤이나 된다. 그러므로 국내에서 생산되는 우유는 백색시유 제품으로 만들지 않으면 팔리지도 않을뿐더러 해외산 수입유제품과 경쟁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유제품 시장에서 시유시장은 국내 낙농업이 지켜야 할 최후의 영토이기 때문에, 만일 정부의 시유 정책이 사려 깊지 못하면 이 땅에 100여 년에 걸쳐 쌓은 국내 낙농업은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다고 본다. 

낙농업계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결국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현행 식품의 유통기한을 폐지하고 소비기한을 도입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정책을 통하여 식품의 폐기비용 절감, 소비자 및 산업체의 편익 증가뿐만 아니라 국제적 조화를 통하여 국내산 수출식품의 신뢰도 향상까지 꾀할 수 있다는 취지다. 우리가 섭취하는 가공식품의 종류는 100년마다 10배씩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해마다 늘어나는 가공식품의 안전과 위생을 관리·감독하는 식약처의 이러한 노력은 타당하고 바람직한 정책처럼 보인다. 국제적으로 식품의 유통기간이 길어지는 추세이므로 이미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진입한 우리나라가 이러한 대세를 따라가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될까. 하지만 이 문제는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너무 순진하면 우리나라 낙농업이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는 약 5천800여 농가에서 하루 6천 톤 정도의 원유를 생산한다. 젖소는 생리적으로 10개월 동안 매일 30kg이나 되는 우유를 생산하므로 농가에서 생산하는 원유를 지체 없이 가공처리하여 만드는 식품이 바로 우유다. 바꾸어 말하면, 비록 유통기한이 짧지만 신선함이 살아있는 국내산 우유는 값싼 수입산 우유로부터 국내산 우유·시장을 지키는 방파제와 같은 역할을 한다. 자유무역협정(FTA)이 일반화 된 현실에서 실제로 식품교역에서도 치열한 두뇌싸움이 펼쳐지고 있다. 대체로 식품을 수출하거나 영토가 큰 국가들은 식품유통기간을 길게 설정하는 반면, 수입국들은 자국의 농업기반을 지키는 수단으로 유통기간을 짧게 잡는 전략을 쓴다. Codex, 유럽연합, 미국, 호주, 일본 등은 국제적 추세인 소비기한을 적용하되, 제조일자(date of manufacture)는 표시하지 않는다. 우리보다 낙농여건이 유리한 이웃 일본도 오직 시유에 대해서는 소비기한대신 상미기간을 채택하고 있다. 

식품 폐기비용의 절감 등 식약처의 소비기한 도입 취지를 반대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원유생산비용이 낙농선진국보다 2~3배 비싼 국내산 시유제품에 준비가 부족한 소비기한을 적용하는 문제를 깊이 성찰해 달라는 뜻이다. 일방적인 소비기한 도입으로 혹시 국내산 우유의 변질사고가 발생하여 소비자 대중들이 수입 유제품에 의존하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지난해 소비자연맹 조사자료를 보니 국내 유통매장의 법적 냉장온도(0~10℃) 준수율은 70~80%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지금처럼 완전하지 않은 냉장유통 상황 하에서 시유에 소비기한을 설정할 경우 우유 변질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날 개연성도 크다고 본다. 우유는 빵, 생면, 통조림 등과는 식품학적 특성이 너무 다른 식품이다. 요컨대, 식약처는 시유제품에 아무런 준비 없이 소비기한 도입하는 문제에 대해 해당 식품의 특성과 관련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불행 중 다행으로 최근 개최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소비기한법률안(식품표시광고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수정·의결됐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의견서 제출(보건복지위에 우유 제외 검토·요구)에 따라, 개방화로 인한 낙농상황과 냉장유통환경을 고려하여 우유의 경우 유예기간을 5년 추가해 2031년에 도입한다는 내용이다. 우유가 제외되지 못한 것은 유감이지만 이제는 유예받은 시간을 허투루 흘려보내지 말고, 우유와 유제품에 대한 소비기한 적용이 무리없이 정착할 수 있도록 철저한 준비태세를 갖출 필요가 있다. 특히, 식약처의 냉장유통환경 개선정책을 비롯한 소비자교육 활성화를 통해 소비기한 도입의 부작용을 원천 차단할 수 있는 범정부 차원의 실질적인 후속대책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낙농산업은 2009년 69.5%에 달했던 원유자급률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다가 급기야 지난해에는 48.5%로 추락했다. 2026년부터는 수입유제품의 관세철폐까지 예고되면서 생산기반 붕괴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이 제도의 도입으로 국내 낙농업이 무너진다면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책이란 말인가. 국내 낙농업계와 필자의 호소가 어리석은 사람들의 부질없는 기우(杞憂)로 남길 바라는 심정이다.


축산신문, CHUKSANNEWS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