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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우유 대물림목장 / 경기 연천 ‘신성뉴목장’

송아지 3두가 130두로…1일 2천여㎏ 원유생산 목장 대물림 계획

[축산신문 조용환  기자]


두 남동생, 목장기반 마련에 큰 역할…3형제 모두 서울우유조합원

원형벨라에 14시간 갇혀 생사 넘나들기도…농기계 안전성 중시

착유장 천장 채광창 내어 햇빛 투과율↑…고무깔창바닥 미끄럼 방지

1만1천평 밭에서 옥수수·수단 2모작부체계로 원유생산비도 절감


1983년 젖소 송아지 3두로 시작한 낙농가가 전업농가로 우뚝 올라서고 올 가을 아들에게 대물림을 준비하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이 낙농가는 또 목장을 희망하는 두 남동생에게도 적극 보살펴줘 3형제 목장이 서울우유조합원이 되었다.

화제의 현장은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백왕로 250-34(석장리 370) 신성뉴목장<대표 한승인(64세)>이다.

석장리에서 조상대대로 14대째 살아온 한승인 대표는 백학중학교를 졸업하면서 부모가 가르치는 대로 농사일을 배웠다. 

한승인 대표는 “당시 부모님이 농사를 지은 전답은 1천500평 정도로 가족 8명의 끼니 해결이 어려웠던 때로 5부이던 장려 쌀이 3부로 낮아 졌다 해도 쌀 한가마를 갖다 먹으면 이자가 쌀 세말을 내야했기 때문에 장남 입장에서 상급학교 진학은 엄두를 못 냈다”고 밝혔다.

한승인 대표는 새끼돼지를 구입하고 인근부대에서 나오는 짬밥을 우마차를 이용하여 날라다 먹였다. 돼지는 한때 20마리까지 늘어나 중대규모 1개소와 소대규모 2개소의 군부대 짬밥을 매일 날라다 먹였다. 그 거리는 8km라고 한승인 대표는 회상했다.

그렇게 돼지를 5년간 키우다 군 입대를 한 그는 육군병장으로 만기전역을 하던 1982년 3월 귀향을 해보니 부친이 키우던 한우가 송아지를 낳았다.

한승인 대표는 사료비 절감을 위해 인근의 야산과 들에서 나는 풀은 자라기가 무섭게 베어다 먹이고 고구마줄기와 볏짚 등 부존자원을 적극 활용했다. 송아지도 어미가 됐다.

그러나 젖소는 한우와 비교할 때 고기 외에 원유를 생산하고 원유가격도 정부고시 가격으로 안전하여 큰돈을 만지지는 못하더라도 근면·성실함으로 일관하면 가난은 면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승인 대표는 “고모<한명화(79세)>가 당시 연립 한 채 가격이던 740만원을 빌려주어 1983년 7월 14일 젖소송아지 3마리를 구입해 돼지우리에서 키우고 서울우유협동조합에 가입(조합원번호 9202)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경환씨의 무절제한 생우 수입으로 이듬해 봄부터 하락한 산지 소 값은 1985년 10월 최저가로 곤두박질했다. 엎친데 덮어진 격으로 전국의 원유과잉생산으로 우유파동까지 겹쳐 여기저기 짊어진 부채의 원금은커녕 이자는 눈덩이처럼 커졌다.

결혼적령기를 놓치고 뒤늦게 정귀혜씨(61세)와 결혼한 한승인 대표는 “아내를 만나 목장 일을 의논하면서 하다 보니 살림살이는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나고 부채도 갚아 나갈 수 있었다”고 귀띔했다.

특히 2녀1남 중 두 딸은 대학을 졸업하여 모두 출가하고, 아들<한현목(26세)>도 현재 광운대학교 컴퓨터공학과 4학년인데 오는 9월 졸업하면 목장 대물림 수업을 할 예정이라 한다. 이를 위해 휴일이면 거의 목장에 들러 착유를 비롯해 조사료 수확하는 일 등을 돕는데 연중 거드는 목장 일수는 약 50일 정도라고 전했다. 

이들 부부는 3년 전 7억원을 들여 1천500평 규모 초현대식 우사를 지었다. 우사는 착유우, 건유우, 육성우의 군별 사육이 돋보이고 환기를 중시했다. 착유우가 착유전 대기장과 착유장을 지나 우사로 빠지는 동선을 자연스럽게 유도했다. 대물림 받을 아들이 목장을 보다 편하게 했다. 이 모두도 아내의 공이 크다고 돌렸다.

착유장(6×2=12두)은 천장에 1.5×1.8m 크기의 채광창 2개를 내는 설계로 햇빛 투과율을 높였다. 착유실 계단과 젖소가 밟는 바닥은 고무깔창을 놓아서 미끄러짐을 방지하고 청소도 쉽고 깔끔하게 하도록 했다. 냉각기 실외기 휀에서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겨울에는 따스한 바람이 각각 나오도록 하여 젖소와 사람에게 편안함을 제공한 것도 이들 부부의 아이디어다.

이들 부부가 매년 늘려온 젖소는 1월 현재 경산우 80두를 포함해 130두다. 지난 1월 29일 착유우 64두에서 생산한 원유는 2천150kg으로 쿼터(2천7kg)를 다소 상회한다. 그렇지만 젖소가 스트레스를 받는 하절기 때 원유가 격감하는 점을 비춰보면 적정한 수준이다.

경지면적도 1만3천평으로 늘렸다. 이 가운데 2천평에 쌀농사를 하고 나머지 1만1천평은 논을 밭으로 전환하여 단위면적당 수확량과 TDN(가소화양분총량)함량이 가장 많은 사일리지용 옥수수를 심고 후작으로 수단그라스를 재배하여 원유생산비를 낮춘다. 이 사료작물포는 물 빠짐이 좋은 편이어서 잦은 비로 수확량이 적었던 지난해의 경우도 400kg 원형롤 300개를 수확했다는 것이 한승인 대표의 설명이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전답보다 네 배 이상 늘린 것이다.

이처럼 한승인 대표가 낙농을 하면서 자리를 잡게 되자 두 남동생도 목장을 하고 싶어 했다. 따라서 이들 부부는 적극 뒷받침을 해줬다. 1991년 셋째동생<한승석(59세·벚골목장)>이 시작할 때는 송아지 10두가 만삭이 되어 우사까지 건립해 줬다. 또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은 둘째동생<한승천(61세·갯보루목장)>에게는 1993년 흑염소 13마리를 500만원에 구입해 주었다. 둘 째 제수는 장님이지만 둘째동생 부부도 낙농을 충분히 할 수 있겠다고 판단하고 적극 도와준 결과 최근에는 1일 1천200kg의 원유를 서울우유로 내는 전업규모 조합원으로 성장했다.

한승인 대표는 남동생들로부터 맏형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서울우유조합 대의원도 22대∼23대를 거쳐 서울우유협동조합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목장을 하면서 위험한 고비를 몇 차례 넘겼다. 이들 부부는 2016년 10월26일은 기억하고 싶지도 않지만 잊지도 못하는 날이라며 입을 열었다. 

한승인 대표는 그날 석장리 집에서 3.5km 떨어진 노곡리 들판으로 볏짚 곤포를 갔는데 잠시 방심하여 오전 7시50분경 원형벨라에 갇히어 오후 10시 발견되기까지 14시간 생사를 넘나들었다. 

한승인 대표는 “원형벨라 안에 있는 노끈을 빼내려다 방심한 끝에 들어가게 됐는데 뚜껑자동문이 잠기었다. 볼트구멍으로 내다보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어 살려달라고 소리도 질렀건만 그 소리는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목은 쉬었고 갈증을 달래기 위해 볏짚에 남아있는 수분을 흡입키 위해 씹기도 했다. 10월 하순 밤 추위와 공포 속에서 떨다가 탈진하여 잠깐 졸았다. 다행히 아내가 이리저리 행방을 물어보고 벨라를 판매한 회사 전문가가 도착해 14시간 만에 구조됐다”며 진땀을 흘렸다.

또 다른 사건은 한승인 대표가 자가 트랙터 TMR배합기 반대편으로 빨리 이동하려다 나일론 바지가 트랙터에 걸리면서 비롯됐다. 이 역시 잠깐의 부주의가 부른 것이다. 

이들 부부는 지금은 모두 지나간 얘기로 웃어넘길 수 있겠지만 목장의 사고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니 만큼 안전에 각별히 유의해줄 것을 당부한다.

“특히 농기계 사고는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점을 유념하여 항상 안전에 만전을 기해 줄 것”을 강조한 정귀혜씨는 지난 1월 서울우유주부홍보단장에 선출됐다. 서울 숭의여고를 졸업한 정귀혜 단장은 “앞으로 주어진 임기 3년 동안 소비자를 대상으로 우유홍보와 낙농에 대한 이해를 바르게 주지시켜 서울우유조합과 낙농발전에 도움을 주겠다.”고 거듭 밝혔다. 


축산신문, CHUKSAN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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