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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동물복지 오디세이 <5> / 自家撞着<자가당착> : 자신의 말과 행동에 앞뒤가 맞지 않음

  • 등록 2019.11.13 10:33:27


전중환 농업연구사(농진청 국립축산과학원, 축산환경과)


1. 프롤로그

인터넷과 소셜미디어(Social Media)의 발달은 많은 이들과 서로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으며,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과거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빠른 정보전달과 의사소통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수많은 정보들 속에서 일부 왜곡되고 변질된 정보들이 제대로 걸러지지 않아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런 현상은 축산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축산의 동물복지에 대한 잘못된 내용들과 편협한 정보들을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이런 정보들이 수정되지 않은 채로 일반인들에게 전달된다면 축산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각인(刻印)될 수도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칭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검색한 동물복지 내용을 진위 여부는 상관없이 인용하거나 여과 없이 그대로 발표하기도 한다. 이처럼 잘못된 정보들과 그릇된 주장들은 현대의 통신기술이 만들어 놓은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라는 환경을 통해서 빠르게 재생산되고 확산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하여 그들이 주장하는 동물복지가 무엇이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실제 경험했던 사례에서 그 답을 찾고자 한다.  


2.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가?

어느 강연에서 연사가 한 발언이 축산업 혐오 및 비하 논란에 휩싸이면서 매스컴이 시끄러웠던 적이 있다. 이후 일정부분 오해가 있었으며 서로 이해와 협력을 약속하면서 일단락되었으나, 당시 축산농가와 관련단체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문제의 그 연사를 어느 회의장에서 마주한 적이 있다. 회의 참석 전 주변 사람들이 “이번 기회에 동물복지가 뭔지 좀 제대로 가르쳐줘” 혹은 “그 분야에서 아주 입심이 대단한 사람이니 조심해”라는 식의 격려와 걱정을 아끼지 않으셨다. 마침 회의장 앞에 도착하니 회의시작까지 30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늦지 않게 서둘러 온다는 것이 그만 너무 이른 시간에 도착한 것이다. 마땅히 할 것도 없어 근처 커피전문점에 들어가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그 연사와 관련된 정보들을 검색했다. 여기저기 언론을 통해서 많은 주목을 받았고, 책도 발간한 것을 보니 꽤 전문지식이 있을 거라는 기대(?)가 생겼다. 

시간에 맞춰 회의장에 들어가니 사뭇 비장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한 쪽은 축산 관계자가 자리하고 나머지 한 쪽은 그 연사를 포함한 동물보호 운동가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가벼운 인사가 오고가고 주제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었다. 드디어 기대하던 그 연사가 발언하였다. 하지만 나는 그 연사의 발언이 다 끝나기도 전에 박장대소(拍掌大笑)하고 말았다. 그분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동물들을 사랑해야 한다. 그들도 살아갈 권리, 행복할 권리가 있다’, ‘본인이 양돈농장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돼지가 사람을 알아볼 정도로 정말 똑똑하더라,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것 같은데 그런 돼지를 어떻게 잡아먹을 수 있느냐’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연사는 걸러지지 않은 인터넷의 정보들을 주장의 근거로 삼기도 했다.

여기서 먼저 우리는 동물권리(Animal rights)와 동물복지(Animal welfare)의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동물권리는 동물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는 것이고, 동물복지는 인간은 이성(理性)이 있기 때문에 동물의 고통을 배려하자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동물보호 운동가들은 동물권리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처음 얘기한 ‘동물들도 살아갈 권리, 행복할 권리가 있다’ 부분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런데 ‘생각보다 돼지가 똑똑해서 도축해서는 안 된다’라는 주장에서 그 연사가 전문지식이 전무한 사람인 것을 알았다. 동물권리의 주요핵심 내용은 동물의 행복 추구권이며 이 때 지적인 수준을 따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즉, 동물권리적인 측면에서는 본인이 가족처럼 돌보는 반려견이나 길에서 음식쓰레기를 뒤지는 더러운 생쥐 모두가 동일한 행복 추구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돼지의 지적 수준이 생각보다 높아 보이기 때문에 가축으로 사육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본인이 동물권리를 얘기하면서 동물권리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처음에는 동물권리를 주장하였으나 나중에는 스스로 본인의 주장을 부정하는 궤변에 불과하였으며 본인이 보고 느끼기에 좋지 않은 것은 수용할 수 없다는 식의 주장이었다. 그 연사는 동물권리의 철학에 대한 이해도 없을 뿐만 아니라 축산에 대한 지식도 전무하였는데 어떻게 전문가로 인식되었는지 의아할 따름이었다. 

 

3. 에필로그

결론적으로 이번 일은 비전문가의 실수로 인한 단순한 해프닝으로 막을 내렸다. 회의장에서 만난 그 연사의 주장은 전형적인 자가당착(自家撞着)의 우를 범하고 있었는데 자가당착이란 ‘자신의 말과 행동에 앞뒤가 맞지 않다’는 것으로 모순된 상황을 나타내는 말이다. 우리도 일상생활 속에서 종종 이런 경우를 경험하게 되는데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자료가 잘못되었거나 관련 지식이 부족한 경우 이런 실수를 하게 된다. 하지만 전문가로서 대중들 앞에 연사로 나설 경우에는 이런 실수가 큰 파장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근거자료의 오류를 검토하고 관련 지식을 습득하는 등의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이번 사건은 우리들로 하여금 축산의 동물복지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그릇된 선입견에 사로잡히거나 잘못된 정보들에 휘둘릴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한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축산의 동물복지 관련 정보들 속에서 오류를 수정하고 축산에 대한 오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가 동물복지를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기만의 생각으로 만들어낸 동물복지가 아닌 철학으로서의 동물복지 토대를 마련한 후에 이를 이루기 위해 지향(志向)하는 실천적 노력이 뒷받침된다면 축산의 동물복지는 더욱 발전된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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