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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시대정신의 변화와 축산 지속성

  • 등록 2019.03.22 13:31:48


김 동 균 이사장(강원도농산어촌미래硏)


자연과학도에게 이 주제는 매우 이질적인 주제이다. 인문학의 냄새가 물씬 풍기기도 하려니와 주제 자체의 무게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택한 이유는 시대환경이 너무 신속하게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축산업은 어떠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가를 생각해 볼 기회를 가져 보고자 함에 있다. 시대정신을 어렵게 정의하자면 끝도 없으므로 여기서는 ‘어느 시점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공유하는 중심적 인식’쯤으로 매겨놓고 진행하려 한다.
시대가 변하면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기본 질서인 의·식·주 활동의 본질은 변함이 없지만  물자의 형태나 기호성은 상당한 변화가 있어왔다. 요즘 백세시대라고들 하는데 그 중간을 기준으로 시대정신을 말해보면 ‘근검절약’을 빼 놓을 수 없다.
우리의 살림이 궁핍할 적에는 곡물의 낱알 한 톨조차 아끼면서 연명해 왔으며, 모든 물자도 소진될 때까지 아껴 쓰는 것이 미덕이었다. 예컨대, 몽당연필을 쓰기 위해 다 쓴 볼펜 깍지를 끼어 쓴다든지 하는 일이 물자절약시대의 상징이 될 것이다.
필자의 체험으로 말하면, 1970년대의 병사들이 전형적인 근검절약을 실천했다고 본다. 즉, 병역 의무기간 3년간 지급받은 의복은, 외출용 정복 1벌에 겨울철 넘기기 위한 좀 두꺼운 겉옷 1벌, 그리고 막 입기 좋은 작업복(색상도 바랜 헌 옷) 1벌이었고, 매년 동·하복 내의 한 장이 전부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니까 1년이라는 시간을 속옷과 겉옷 각 1벌로 살았고 한·두달 만에 지급받는 세수비누와 약간의 화랑담배로 관물 배급은 끝났다. 먹는 문제는 소위 ‘짬밥’이라는  단체급식으로 해결되었고, 잠은 바람 잘 통하는(?) 내무반에서 재워주었다. 술이나 과자를 원할 때에는 천원도 안 되는 월급으로 구내매점에서 사먹어야 하지만 대부분의 병사들은 그 호강마저 절제하며 살았다. 면회나 휴가 기회가 매우 박했던 최전방에서 3년을 채우고 나온 필자는 제대하면서 마음속으로 ‘내가 이 정신으로 근검절약하기만 한다면 아마 상당한 저축을 하면서 조만간 큰 부자가 될 것이다’라는 느낌을 받으며 군복을 벗었다.  
그러나 세상에 나와 보니 그러한 상태를 유지하기 불가능하다는 점을 곧바로 알게 되었다. 당시의 한국경제는 폭발 중에 있었고, 골목마다 고기 굽는 냄새와 연기가 진동했다.  오랜 세월 참아왔던 백성들의 고기 먹고 싶은 욕망이 분출하면서 억제되었던 고기소비량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시기였다. 어디 그 뿐이랴? 시장마다 활기가 넘치면서 사람들은 ’흥청망청’의 길로 가면서 거리의 네온사인은 “소비가 미덕이다!”라는 구호를 홍보하기 바빴다. 당시의 시대정신에서 본다면, 이 말은 진리였다. 내수기반이 확장되어야 각 산업이 활력을 가지고 커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회고컨대, 보리고개라는 말이 슬그머니 사라지기 시작한 시점은 70년대가 저물어 갈 무렵이 아닌가 생각된다(우리의 생활형편이 1970년 초반까지는 북한보다 못했음을 안 것은 세월이 한참 지난 후였다).
현재를 감싸고 있는 주된 분위기는 상대적 빈곤감과 연령계층별 가치관의 차이로 인한 갈등이다. 40대 이하의 새 시대 연령계층은 ‘민족적 배고픔과 물자의 부족으로 인한 고통’을 체험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적 빈곤만으로도 고통스러워하며 지내고 있다. 세대간 정치감각적 갈등도 사회적 불안요인으로 대두되고 있으며 자영업자의 몰락현상과 빈부격차폭의 증가도 현대의 시대정신에 반영되고 있다.    
근검절약의 시대에서 대량소비의 시대가 열리면서 축산업에도 큰 변화가 일었다. 사람이 먹을 물건도 부족하던 시대에서 소비가 팽창하면서 매우 쉽게 구할 수 있는 음식물찌꺼기는 한 때 ‘잔반양돈’의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고기품질도 따지게 된 시대가 오자 한국의 축산업은 배합사료 중심체제로 견인되면서 축종마다 규모도 폭발적으로 팽창했다.
이 상황은 생산성 극대화라는 바람을 타고 지난 세기 말까지 지속되다가 항로를 바꾸었다. 국제 무역질서의 변화와 지구 온난화 현상이 몰고 온 금세기의 축산업은, 양적 성장보다는 질적 성장을 추구하는 모양새로 방향을 틀면서 축종에 따라 전체적 규모는 조정기를 가졌다. 이 과정의 뒤안길에는 수많은 시련의 고비와 많은 양축가들의 도산이 서려있다. 그러므로 엄격히 말하면, 어느 산업의 외형적 발전과 그 안에서 생계를 유지해 왔던 종사자 개인의 흥망은 별개로 진행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소위 ‘규모경제’라는 개념이 축산의 지속성에도 적용되었다. 소위 계열화, 수직통합 현상이 그것이었다. 표면적으로는 대기업의 축산업 개입을 차단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이미 덩치 큰 자본들에 의하여 축산 현장이 지배되고 있으며, 생산자의 자유의사에 의한 시장형성의 구도는 깨어진지 오래임을 알 사람은 다 안다.
이러한 시대상황에서 바라볼 때, 과연 한국축산은 앞으로 얼마나 더 버텨낼 수 있는가를 조심스럽게 걱정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요즘의 상황은, 표면적으로는 과거와 사뭇 다르지만 그 밑바닥에 깔린 원천적인 흐름은 마치 의식주의 문제처럼 연속되고 있다. 즉, 같은 분량의 물건을 만드는 데에 들어 갈 원자재(물, 사료, 가축, 약품, 인력 등)를 가장 적게 쓰는 일에 충실하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국내 자원이용에 ‘몽당연필 정신’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앞으로는 남는데 뒤로는 밑지는 장사를 했다가는 경쟁 대상 국가들의 침략을 막을 길이 없다. 그 동안 국내 축산물은 생산 장소에 대한 애정이나 만드는 이에 대한 믿음이라는 무기 덕에 실수요자들이 많이 보아줬지만 비판능력이 높은 젊은 층으로부터는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따라서 축산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면, 어떠한 물건이던지 다루는 횟수와 시간을 줄여야 하고, 허실되는 분량이 없는 방향을 추구함과 동시에 현재의 축산기술이 파생시킬지 모를 환경 생태적 문제들도 철저히 짚고 나가야 할 시대정신으로 재무장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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