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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남성우 박사의 ‘相生畜産’ / 73. 백색혁명(White Revolution)

쌀 자급 달성 이후 논에 비닐하우스 재배시설 빠르게 증가
농산물 소비, 양에서 질로…‘연중 생산·소비체계’ 구축

  • 등록 2019.02.22 12:44:14

[축산신문 기자]


(전 농협대학교 총장)


▶ 백색혁명은 무엇을 말하나? 왜 백색인가? 농촌지역을 여행하다보면 들판을 뒤덮은 비닐하우스(온실 포함), 비닐터널, 비가림시설이 하얗게 펼쳐진다. 하얗게 덮인 그 곳에서 농산물의 획기적인 증산을 이룩한 농업혁명이 일어나고 있어서 백색혁명이라고 하는 것이다. 학술적인 용어는 아니고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말이다. 녹색혁명의 성취로 주식인 쌀의 자급이 달성되었고, 산업화가 촉진되면서 우리 경제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 국민 1인당 GNP가 1961년에 87달러에 불과해 세계 최빈국에 속했다. 그러나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추진되면서 경제가 급속히 발전하여 1인당 GNP가 1965년 105달러에서 1975년 602달러로 10년 사이에 6배나 늘어났다. 

▶ 소득이 증가하면서 채소소비량이 급증했다. 60년대 까지는 여름철엔 노지채소를 먹지만 겨울철에는 김치를 담그고, 배추나 무를 땅속 구덩이에 묻어 놓은 후 조금씩 꺼내다 먹는 게 전부였다. 그러나 70년대에 들어와서 비닐터널·하우스를 이용한 시설재배가 늘어나면서 생산량도 늘어났고, 소득이 증대되자 1인당 연간 채소소비량이 1965년 50kg에서 1975년 90kg으로 급증했다. 이는 국제보건기구(WHO)의 연간 채소권장섭취량 73kg(성인기준 1일 200g)보다 많은 양이다. 1975년부터 1995년까지 20년 동안 GNP는 602달러에서 1만1천432달러로 급증했고, 채소소비량은 1975년 90kg에서 1995년 150kg으로 늘어나 세계에서 채소를 가장 많이 먹는 나라로 변모했다.   

▶ 1970년대 중반에 우리는 식량자급이라는 녹색혁명을 성취했다. 쌀을 충분히 먹을 수 있게 되고 소득이 증가하면서 육류, 채소, 과일 등의 소비가 늘어났다. 그러나 신선채소는 하절기에만 생산이 가능했고 겨울에는 먹고 싶어도 먹을 수가 없었다. 또 노지재배는 기상에 따라서 생산량의 기복이 심했고 기상이 나쁘거나 단경기에는 가격이 비싸서 사먹기 어려웠다. 그래서 시설재배가 개발된 것이다. 이제는 한 겨울에도 채소를 먹을 수 있고 수박, 딸기도 먹을 수 있게 됐으니 과연 농업생산 분야에서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 1962년부터 추진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연평균 7.8%의 경제성장을 달성하며 성공을 거두었다. 식량자급을 농정의 최우선과제로 삼아 농업기반 확충, 농업기술 보급 등에 주력하여 농업분야도 함께 성장했다.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67~1971년)은 수출주도의 경제성장을 국가목표로 정하고 농공병진정책(農工竝進政策)을 추진하면서 석유화학공업단지를 준공했다. 1970년에 석유화학공업단지가 가동되면서 농업용 PE필름(비닐)의 대량, 염가공급이 가능해짐으로써 시설재배면적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시설재배가 더욱 활성화된 계기는 이 기간 중에 농어민소득증대특별사업(농특사업)을 추진한 것이었다. 1968년부터 시작된 농특사업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 6개 부처가 참여하는 농어민소득증대특별위원회(농특위)가 출범했다. 농특사업으로 경제작물 복합 주산단지가 조성되었고 ‘비닐하우스 채소생산사업’이 추진되어 큰 성과를 거두었다. 

▶ 정부는 제3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72~1976년) 기간 중 1972년에 제2차 농특사업을 추진했고, 1974년부터는 농특사업을 새마을소득증대사업과 통합 추진했다. 비닐하우스를 짓는 데는 농업용 PE필름과 더불어 골조가 필요하다. 비닐은 석유화학단지에서 생산이 되고 있었지만 골조는 대나무를 사용하고 있어서 어려움이 많았다. 그런데 정부가 중공업육성정책의 일환으로 1973년에 포항종합제철공장을 완공함으로써 비닐하우스용 철제파이프 공급이 가능해졌다. 이로써 비닐하우스 시설 자재가 모두 우리 손으로 생산하게 되면서 비닐하우스 면적이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비닐하우스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농림부는 ‘비닐하우스 표준화’를 추진했는데 시설자재와 시공방법의 표준화는 시설재배면적 확대와 시설 현대화에 기여한바 크다. 

▶ 농산물의 시설재배면적은 1965년 764ha로 주로 연구시설, 학교, 일부농가에서 운영했다. 그러나 면적이 1970년 3천700ha, 1975년 6천600ha, 1980년 1만7천900ha, 1985년 2만8천600ha로 급격히 늘어났다. 종전까지는 논에 벼 재배를 의무화했었으나 쌀 자급 달성 이후 1975년부터는 논에도 비닐하우스 재배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허용되면서 더 빠르게 증가했다. 그 후 1995년 8만1천600ha, 2000년 9만ha로 급격히 증가하여 전국의 들판이 하얀 물결로 덮였으니 가히 백색혁명이라고 부를만하다. 그러나 시설재배면적이 2005년 7만8천500ha, 2010년 6만6천400ha로 줄어들었는데 이는 소득이 증가하면서 농산물의 소비성향이 양적소비에서 품질위주소비로 바뀌었고, ‘연중생산 연중소비’ 추세가 보편화되면서 시설면적의 적정화가 추진되었고 생산성이 향상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된다. 

▶ 시설재배 농산물은 초기에는 배추, 상추, 오이 등 채소류가 많았으나 토마토, 수박, 참외, 파프리카 등 과채류로 확대되었고 장미, 국화, 백합, 분화류, 다육식물 등 화훼류로도 확대되었다. 과수의 경우는 포도, 감귤 등의 비가림시설로 이용되고, 축사 운동장의 비가림시설로도 활용된다. 근래에는 시설재배 방식이 식물을 토양에 심는 것이 아니라 배지(培地)에 심어서 양액재배(養液栽培)나 수경재배(水耕栽培)를 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게다가 온습도자동조절, 자동관수·자동관비, 자동환기, 환경제어장치, 로봇장치, 생육데이터수집장치, 원격조정장치 등 스마트팜으로 진화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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