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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풍전등화 같은 낙농산업을 걱정하며

  • 등록 2019.02.15 10:40:01


윤 성 식 교수(연세대학교 생명과학기술학부)


국내 낙농산업의 장래가 어둡다는 하소연을 들은 지 오래다. 설상가상일까, 구랍 안성지역 낙농목장에서 시작된 구제역 때문에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조차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보낸 축산인들이 많았을 게다. 지난해 국제낙농올림픽이라는 ‘IDFWDS2018’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루고 나서 숨고를 틈도 없이 구제역이 터졌으니 그야말로 우리 낙농산업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통계수치가 보여주듯 요즘 국내산 우유 소비감소 추세는 걱정을 넘어 심각할 지경이 되었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의 출산율 저하와 아동인구의 감소, 비싼 유제품 가격, 타 음료와 차별성 부족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낙농선진국들과의 다자간 FTA 체결 후 국내로 밀려드는 값싼 수입 유제품과 경쟁을 피할 수 없다보니 불원간 문전옥답을 내줘야할 형편이다. 게다가 EU국가들은 오랫동안 지켜오던 쿼터제를 폐지하고 우유생산량을 늘려 신흥 아시아 국가를 겨냥한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으니, 국내 낙농산업은 마치 풍전등화(風前燈火)처럼 위태롭다. 도대체 국내산 우유소비가 늘어나지 않는 원인이 무엇이고 우리는 어떻게 이 난관을 극복해야 하나.
누가 뭐라 항변해도 비싼 우유가격이 가장 큰 문제다. 외국과 비교하여도 턱없이 비싼 국내산 원유가격이 소비를 막는 걸림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가격이 싸면 소비가 늘고, 반대로 비싸면 소비가 줄어드는 게 시장원리 아니던가. 국내 원유가격은 2013년 하반기부터 시행된 원유가격연동제에 규정된 계산방식으로 기본가격을 정한다. 이는 통계청이 발표하는 원유생산비 및 물가변동률을 반영하여 계산하되 마지막에는 생산자와 수요자간 협상을 통하여 결정하는 방식이다. 소비자 물가는 매년 인상되는 경향이 있으므로 현행 연동제의 원유가 계산방식에 물가를 반영할 경우 국내산 원유가격은 지속적으로 오르는 경향을 띤다. 이 제도를 모니터링 하는 소비자단체들은 자본주의 시장원리가 작동되지 않을뿐더러 원유가격의 인상을 부채질할 수 있다고 야단이다. 이런 불만을 불식시키려면 낙농가들은 어찌해야 하나. 정부에 기대지 말고 스스로 원유생산비를 인하시키려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생산비를 줄이려면 사육 규모를 늘리거나 자가 조사료 경작 등 다각적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둘째는 소비패턴의 변화를 유인할 필요가 있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우유소비를 기존 음용유 패러다임에서 해법을 찾기 보다는 발효유나 치즈 같은 가공유제품 중심으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 실제로 치즈소비량이 매년 늘어나고 있는 현상은 무얼 의미하는가. 식습관이 비슷한 이웃 일본과 우리를 비교해 볼 때 국내산 시유소비는 거의 포화상태에 이른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음용유에서 가공유제품 쪽으로 소비를 유인하려면 서구 낙농선진국처럼 용도별가격차등제 도입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시유용, 치즈용, 분유용 등 원유를 용도별로 가격을 다르게 산정하는 것은 합리적 제도로 판단된다. 이 제도의 도입 전제조건으로 전국단위쿼터제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으나 중요한 건 각 이해주체들의 양보와 정부의 강력한 정책만이 실타래처럼 엉킨 문제들을 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이 제도가 당초 취지대로 잘 정착된다면 치즈용 우유는 시유용 우유보다 가격이 저렴해지기 때문에 외국산 유제품과 가격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으니 용도별 차등가격제로 바꿔야할 충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셋째는 안티우유선동에 대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요즘에는 안티우유 활동이 인터넷 동영상 등을 통하여 소비자 대중의 여린 마음을 침투하고 있다. ‘우유의 진실’ 혹은 ‘오래살고 싶으면 우유 절대로 마시지 마라’라는 도서명으로 출간된 책들은 우유가 인체에 해로운 식품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끈질기게 펼치고 있다. 안티우유선동 단체들의 집요하고도 교묘한 전략에 대하여 낙농업계는 장기적, 체계적인 방어 논리를 준비하고 있는가. 교과서에나 나올법한 우유의 영양학적 효능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홍보로는 현명한 소비자의 관심을 끌 수 없다. 낙농 목장과 우유를 가공하는 유업체만 있고 그 산업을 전공하는 학생과 학자들이 없다면 산은 있으되 나무가 없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학자들로 하여금 우유가 그들의 연구중심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한편 학문 후속세대를 양성하도록 도와주는 것은 장기적으로 우유에 대한 거짓선동을 막는 지원군이자 울타리라고 본다. 미래의 농업은 결코 사양산업이 아니라 고도의 기술집약적 성장산업이 될 수 있다. 단, 고급인력이 투입된다면…
넷째는 학교급식을 활성화시키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학교우유급식사업이 해를 거듭할수록 추진 동력을 잃고 허둥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우유는 어린이의 성장을 돕는 최고의 영양식품이므로 초등학교는 물론 중·고등학교에서도 우유급식을 활성화시키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더 많은 사업예산이 필요하다면 낙농가들이 조성하는 우유자조금을 인상해서라도 충당해야 할 것이다. 일본처럼 중·고등학교 학생에 대한 우유·유제품급식 의무화가 시행된다면 분명 우유소비 확대로 이어지게 된다. 현행처럼 우유급식의 사업주체와 소요예산이 이원화 되어 있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자. 교육부, 농식품부, 지자체, 교육청 등이 한자리에 모여 우유급식과 일반급식을 하나로 통합하여 운영하는 체제로 만들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왜 뒷짐만 지고 있는가. 
다섯째, 목장형유가공업의 제도적 관리가 필요하다. 국내 목장형유가공은 전국적으로 사업장 수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유가공에 투입되는 원유의 양은 총생산량의 5.5%에 이를 정도까지 성장하였다. 이처럼 목장형유가공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품의 위생학적 품질이 열악하다는 언론기사를 자주 본다. 목장형유가공에 사용되는 원유는 정부의 쿼터관리 대상에서 빠진 일종의 사각지대 우유다. 그래서 앞으로 원유사용량이 더 늘어날 경우 이에 대한 체계적 관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일부 전문가들의 주장대로 목장형유가공에 사용되는 원유는 일반쿼터와는 구분하여 ‘직판쿼터’로 관리하거나 아예 현행 쿼터제에서 ‘가공유쿼터’를 분리하여 관리한다면 정체된 우유소비 제고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푸드스탬프 프로그램(food stamp program) 도입을 정부에 건의하는 방안이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이 1930년대 대공황 기간 중 저소득층 국민들에게 식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쿠폰을 지급하는 제도다. 정부로 하여금 사회 빈곤층에게 우유 및 유제품을 제공하는 제안을 검토해봄 직하다. 정창영교수의 주장(농민신문 2019. 1. 1)대로 우리나라도 이 제도를 도입하면 자유무역협정으로 인한 국내산 원유소비 부진을 어느 정도 타개할 수 있을 것이다. 농어촌 활성화를 지향하는 현 정부가 이 제도를 채택하기만 하면 국내산 원유 수요확대 및 농업소득 증대를 달성할 수 있다. 빈곤 저소득 계층에게 우유를 공급함으로써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이른바 일석이조 효과를 기대하는 건 부질없는 노학자의 일장춘몽(一場春夢)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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