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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남성우 박사의 ‘相生畜産’ / 71. 녹색혁명(Green Revolution) (1)

박정희 대통령 “경제적 자립은 식량 자급자족으로부터”
다수확 신품종 ‘통일벼’ 개발로 녹색혁명 결실

  • 등록 2019.02.15 10:38:57


(전 농협대학교 총장)


▶ 인류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식량을 확보하는 일은 가장 중요한 명제다.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생산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여 식량부족은 지속되어 왔고 지금도 약 8억 2천만 명이 영양부족 상태에서 살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는 극심한 식량난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데 비해 식량생산은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식량부족사태는 매우 심각했다. 한정된 농지와 낮은 생산성으로 식량생산량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우리나라도 가난한 식량부족국가 중의 하나로 국민들은 늘 배가 고팠다. 춘궁기(春窮期)가 되면 고픈 배를 움켜잡고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다.  


▶ 1960년대 들어 미국 등 선진국들은 세계 식량문제 해결을 위해 주요곡물인 밀, 옥수수, 쌀 등의 다수확 신품종 개발을 추진했다. 동남아국가들의 주식인 쌀 품종을 개발하기 위해 1962년 미국의 록펠러재단과 포드재단의 출연으로 연중 3모작이 가능한 필리핀에 국제미작연구소를, 1963년에는 멕시코에 국제옥수수·밀개량센타를 설립했다. 수년간의 연구결과 1966년에 수확량이 배나 되는 벼 신품종인 기적의 벼 ‘IR-8’을 육종해냈다. 멕시코개량센타에서도 옥수수 다수확품종인 ‘멕시코옥수수’를 개발함으로써 개도국에서 녹색혁명의 기틀을 마련했다. 일찍이 1944년 미국의 농학자 노먼 볼로그(Norman Borlaug)는 미국 록펠러재단의 지원을 받아 멕시코에서 병충해에 강한 ‘멕시코 밀’을 개발하여 전 세계의 밀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림으로써 ‘녹색혁명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그는 식량증산을 통해 인류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1970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바 있다. 녹색혁명(綠色革命, Green Revolution)이란 품종개량, 관개시설 확충, 기계화, 화학비료, 농약 등의 과학기술 등을 활용하여 식량생산을 획기적으로 증가시킨 여러 가지 개혁적인 조치를 말하는데 미국 국제개발처(USAID) 총재 윌리엄 가우드(William Gaud)가 처음으로 녹색혁명이란 말을 사용했다.    

     
▶ 우리나라는 일제 식민통치 기간 중 많은 양의 쌀을 전쟁물자로 수탈당했고 해방 이후에도 식량부족은 여전했다. 게다가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농업생산기반이 붕괴되어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다. 당시 미국의 식량원조물자인 분유로 끓인 우유와 옥수수가루로 만든 죽(粥)은 아이들의 주린 배를 일부나마 채워줬다. 이제 생각하니 당시 우리나라는 선진국의 원조 없이는 살 수 없는 지독히도 가난한 나라였다.


▶ 박정희 대통령은 1961년에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착수하면서 ‘식량자급’을 농정의 최우선과제로 설정했다. 이 땅에서 가난을 몰아내고 국민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는 그의 철학이 정책에 반영된 것이었다. 세부 과제로서 신품종 육성과 농지 확대, 경지 정리, 관개시설 확충 등 농업기반 확충 그리고 농업기술의 개발·보급을 설정했다. 이런 정책의 수행을 위해 1962년 4월 농촌진흥청이 설립되어 신품종 육성과 농업기술 보급업무를 담당, 농업생산성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 1962년 1월에는 수리조합(연합회)을 토지개량조합(연합회)으로 개편, 저수지 등 농업기반시설 관리 및 확충 업무를 맡았다. 1970년 2월에는 경지정리, 관개시설 등 농업기반시설 확충을 전담할 농업진흥공사를 설립하고 토지개량조합을 농지재량조합으로 개편했으며 다음해에는 농지개량조합연합회를 발족시켰다. 2000년에 3개 기관이 통합되어 농업기반공사가 출범했고 2008년에 어촌개발 까지 포함한 한국농어촌공사로 변모했다.


▶ 1964년 3월 13일 박정희 대통령은 농촌진흥청에서 열린 전국 식량증산 연찬대회에서 “경제적 자립은 식량의 자급자족으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고 역설하며 식량자급 달성을 독려했다. 특히 우리의 주식인 쌀을 증산하는 것이 주요 국정과제로 추진되었다. 쌀 증산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는 다수확품종의 육성이었다. 품종의 육성을 위해서는 생산주기가 중요한데 우리나라는 벼를 일 년에 한번 밖에 경작할 수 없으므로 육종에 장기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생각한 것이 필리핀에 위치한 국제미작연구소(IRRI, International Rice Research Institute)에서의 벼육종연구였다.


▶ 박 대통령은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벼육종학 박사 허문회 교수와 농촌진흥청에 쌀 신품종 개발을 당부했고 이들은 필리핀에서 육종에 몰두하여 마침내 다수확 품종인 ‘통일벼’를 개발해냈다. 허문회 교수팀은 필리핀의 IRRI가 육종한 IR-8 종에 자포니카 종과 인디카 종을 교배하여 ‘IR-667’이라는 다수확 신품종 ‘통일벼’를 개발한 것이다. 1970년에 3개의 계통이 장려품종으로 선정되었고 시험재배를 거쳐 1972년부터 국내에 보급되었다. 정부는 통일벼의 빠른 보급을 위하여 통일벼를 시장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수매하였다. 농촌진흥청의 농촌지도직 공무원을 대폭 늘려서 농가지도를 강화했고 시도 및 시군별로 목표를 부여하는 등 증산을 독려했다. 그 결과 1974년에는 드디어 수요량 3천70만9천석을 초과하는 3천86만7천석을 생산하여 주곡의 자급을 이룩하였다. ‘쌀 자급’이라는 우리의 꿈이 실현된 것이고 녹색혁명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당시 통일벼의 수확량은 종전 품종보다 20~40%가 더 많았다. 10a당 전국 평균 수확량이 1960년 273kg, 1970년 330kg에서 1974년에는 371kg으로 향상되었고 1977년에는 494kg으로 세계 최고를 기록했다. 1974년 이후 3년간 연속해서 자급을 달성하고 1977년에 드디어 ‘녹색혁명 성취’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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