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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동물복지 오디세이 <2> / 耕當問奴<경당문노> : 모든 일은 그 분야의 전문가에게 물어라

  • 등록 2018.11.14 10:54:09

[축산신문 기자]


전중환 농업연구사(농진청 국립축산과학원 /축산환경과)


1. 프롤로그

동물복지는 동물의 상태를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언어를 통해 대화할 수 없는 동물의 상태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어쩌면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단순히 ‘내가 볼 때 이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라는 개인적인 생각으로 동물복지 개선을 주장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그런 주장이 맞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동물의 상태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우며, 또한 동물의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다양하다. 그래서 동물복지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사양관리와 시설환경을 우선 고려하고, 동물의 행동(Behaviour)이나 발성음(Vocalization, 동물이 내는 소리) 분석 등을 통해서 비침습적(非侵襲的) 방법으로 동물의 상태를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이와 같은 과학적 분석에 앞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축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다. 가축을 사육하고 관리할 때 얻어진 경험들은 가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가축관리에 직접적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실제 농가현장에서는 승가행위 등 가축의 행동을 보고 발정을 감지하며, 기침소리 등 가축의 발성음을 듣고 질병유무를 판단하기도 한다. 그래서 경험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스승이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어떤 주제에 대해 실험을 수행하기 전 축산업 현장에 계신 분들께 조언을 구하곤 한다. 축산업 현장에 계시는 분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때로는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도 하고, 때로는 새로운 연구주제를 얻기도 한다. 


2. 지금 저놈이 말하고 있는 것이 들리지 않는가?

동물행동과 발성음 연구와 관련한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농가현장을 방문하면 현장에서 관리자들 혹은 농가 사장님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하게 된다. 그러던 중에 한우가 발정이 왔을 때 내는 발성음이 일반적인 발성음과 차이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소나 돼지가 발정이 오면 소리를 낸다는 것을 들어본 적은 있지만 현장에서 사람의 귀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만약 발정기의 발성음을 구분할 수 있다면 가축관리에 있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한우농가에서 발성음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농가 사장님으로부터 들었던 얘기처럼 청각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았으며 연구에 참여했던 연구원들 중 누구도 발정기의 발성음을 구분해낼 수 없었다.

어쨌든 발성음 수집은 계속 진행되었으며,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농가를 방문해서 발성음을 녹음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마침 농가 사장님이 나와 계셨고 우리가 발성음을 수집하는 모습은 물끄러미 쳐다보고 계셨다. 가지고 간 장비들을 설치하고 발성음들을 녹음하기 시작했다. 소들이 울기 시작할 때 “사장님, 지금 저 소리는 어떤 소리인가요?”하고 여쭤봤더니 “무슨 소리는 무슨 소리야, 밥 달라는 소리지” 하셨다. 그리고 한참을 지나 “사장님, 그럼 지금 저 소리는 어떤 소리인가요?”하고 여쭤봤더니 “저 놈, 발정 왔다고 그러네” 하셨다.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걸 어떻게 아세요?”하고 여쭤보니 퉁명스럽게 “지금 저놈이 말하고 있는 것이 들리지 않는가?”하셨다.

이후 분석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음성학적 분석을 실시한 결과, 발정기 때의 발성음은 일반적인 발성음과 확연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 이후 13년이 지난 지금도 그 사장님이 어떻게 청각만으로 발성음을 구분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오랜 경험을 통해서 가축들이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계셨던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소는 평소에 울음소리를 많이 내지 않지만 사료를 급여하기 전이나 어미가 새끼를 찾을 때 그리고 발정이 왔을 때 크게 울음소리를 내는 특징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료를 줬는데도 계속 소리 내어 우는 소가 있다면 발정이 왔을 거다’라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3. 에필로그

축산은 살아서 숨 쉬는 동물을 사육하고 관리하는 매우 어렵고 까다로운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은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뭐 할 거 없으면 시골 내려가서 소나 키우지’라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예전처럼 전문기술 없이도 농사짓고 소를 키울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축산에서의 동물복지도 마찬가지다. 동물복지가 지향하는 바는 매우 간단하지만 축산업이라는 산업적인 측면에서는 쉽지 않는 접근이다. 생산 외에 유통과 소비까지도 고려해야 하는 등 전문적인 기술과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산에 대한 이해없이 현장에서의 문제점들만 나열하기도 하며, 심지어 축산을 동물학대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축산분야의 동물복지 정착과 활성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축에 대한 기술과 경험이 풍부한 생산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경당문노(耕當問奴)는 ‘모든 일은 그 방면의 전문가에게 물어보라’는 뜻이다. 수많은 의견과 대책이 제시되고 있지만 현장을 고려하지 않은 제도나 기술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현장에서 가축관리는 어떻게 이뤄지는지 그리고 문제점은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가장 경험이 풍부한 생산자들에게 문의해야만 정확한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장을 모르고선 사생화(寫生畵)를 그리지 못하고 상상화(想像畵)만 그릴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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