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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남성우 박사의 ‘相生畜産’ / 47. 호주산 육우 2천500두와 함께 태평양을 건너다 (2)

현지 육우 철두철미한 검수로 3주 일정 빠듯이 맞춰
11일간 수송선으로 이동…가축 탈 날까봐 세심히 관리

  • 등록 2018.11.07 11:05:48

[축산신문 기자]


(전 농협대학교 총장)


▶ 당시 계약된 물량은 헤어포드(Hereford) 2천500두였는데, 막상 소 무리를 보니 그건 꽤 많은 분량이어서 언제 검수를 끝낼지 걱정이 앞섰다. 우리는 검수기준을 공급자에게 사전에 설명해 주었다. 귀표번호가 달려있을 것, 나이가 적정할 것, 털 색깔이 헤어포드의 특징을 지니고 있을 것, 체형이 번식우로서 적합할 것, 품종간의 잡종교배가 되지 않은 순종일 것, 피부병 등 질병이 없을 것, 제각(除角)이 되어 있을 것, 외상이 없을 것, 걸음걸이에 이상이 없을 것 등 주요 착안사항들을 알려주고 검수를 시작했다.


▶ 우리 검수원 일행은 소를 모는 목책통로(corral이라고 함) 양쪽에 서서 각자가 맡은 착안사항을 점검하고, 이상이 없으면 “합격(pass)” 이상이 있으면 “불합격(reject)”이라고 판정했다. 그리고 불합격 판정 이유에 대해 상세히 설명을 해주어 공급자의 불만이 없도록 했다. 이렇게 꼼꼼히 검수를 해야 하는 이유는 호주에서는 한 목장에서 수천마리씩 기르지만, 이 소들이 한국에 가서 분양되면 농가에 2~3마리씩이 대부분이고 많아야 10여 마리가 배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마리 한 마리가 농가에게는 매우 소중한 존재였다. 잘못하면 농가가 손실을 본다는 생각에 내 소처럼 검수를 철저히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공급자 측에서는 “검수가 너무 까다롭다. 이렇게 하면 계약한 소 숫자를 다 채울 수 없다. 검수기준을 좀 융통성 있게 적용해 줄 수 없겠는가. 이렇게 하면 하루에 150마리밖에 검수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선적기한을 맞출 수 없다”며 거세게 항의했다. 그러나 항의를 한다고 해서 봐줄 수는 있는 일이 아니었다.


▶ 더구나 도입육우 첫 번째 검수단이었으므로 부담감이 더욱 컸다. “리젝트(reject)”라고 판정할 때마다 공급자는 얼굴색이 변했다. 그렇게 하루 내내 검수를 해서 합격한 소를 세어보니 모두 120마리였다. 불합격한 소가 40마리나 나와 불합격률이 25%나 되었다. 다음날부터 공급자는 마리수가 부족할 것을 우려해서 다른 곳에서 급히 소를 더 구해오겠다고 했다. 또한 검수기준을 완화해 달라고 거듭 요구했다. 


▶ 다음날은 일이 좀 숙달되고 업무 분담도 제대로 되어서 180마리를 검수했다. 그렇게 해서 3주 만에 겨우 2천500두를 확보하고 나니 피로감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이제 이 소들은 수출검역증이 발부되면 브리즈번(Brisbane) 항구에서 배를 타고 적도를 넘어 한국 부산항으로 10여 일간 항해를 하게 되어 있었다. 호주에서는 해외로 소나 양을 수출하므로 생축수송 전용선이 있다고 했다. 나는 가축운송선이 어떻게 생겼는지, 배에서 소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소들이 긴 여행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게 아닌지 궁금한 게 많았다. 그래서 공급자에게 가축수송선을 타고 가면서 소들의 상태를 관찰해 보고 싶다는 뜻을 전했고, 가능하다는 답신이 왔다. 우리가 검수한 소들은 가축수송 전용차량(한번에 80마리씩 수송이 가능한 대형 2층 트럭)에 실려서 항구로 옮겨졌다. 이어 우리 검수단과 호주 정부 검역관 입회하에 이표를 확인하고 검수기록부와 대조하면서 선적을 진행했다. 두수가 많다보니 선적하는 데만 꼬박 이틀이 걸렸다.


▶ 배가 출항하는 날, 나는 비행기로 귀국하는 다른 검수원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배에 올랐다. “부우~웅”하는 기적소리와 함께 배는 천천히 항구를 빠져나와 북쪽으로 항로를 잡았다. 배를 타고 적도를 지나 태평양을 항해한다는 기대감과 함께, 소들이 건강하게 잘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 태산 같았다. 배를 둘러보았다. 배는 모두 3층 구조로 각 층은 소를 50여 마리씩 구분해서 실을 수 있도록 철제 파이프로 칸막이가 되어 있었다. 소가 물을 먹을 수 있는 자동급수통, 사료를 급여할 수 있는 사료조가 있고 한쪽 편에는 항해 중에 먹일 건초가 잔뜩 쌓여 있었다. 만일의 사고에 대비해서 수의사도 한 명이 동승했다.


▶ 나는 매일 아침 선원들이 건초를 주고 우리를 청소할 때, 소 상태를 보기 위해서 축사로 내려가서 한 바퀴를 돌았다. 배가 커서 그런지 다행히 소들은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파도에 흔들리는 배 위라서 그런지 소들의 건초를 먹는 상태는 활발하지 못했다. 검수기간 중 시달림, 수출검역 중 시달림, 항구로 운송 중 시달림, 선적과정에서 시달림 등으로 많이 지쳐있는 상태이므로 그럴 법도 했다. 출발 후 5일 정도 항해를 해서 적도를 지날 때는 기온이 높아지면서 소들이 헉헉대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기후 변화에 소들도 견디기 힘들어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선장에게 부탁하여 시원한 물을 충분히 주도록 했다.  더울 때는 급수를 제대로 해야만 달수현상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항해 중에 결국 환축(患畜)이 5마리 발생, 수의사가 치료를 시도했지만 안타깝게도 두 마리는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 선장에게 항해 일수를 물어보니 10여일 전후가 걸릴 것이라고 했는데, 부산항에 도착하기까지 실제로 11일이 걸렸다. 긴 항해 끝에 저 멀리 태종대가 보이기 시작할 때는 피로감도 잊은 채 가슴이 설레었다. 이 많은 소들과 함께 무사히 당도했다는 안도감에 검수원으로서의 중압감도 한결 가벼워짐을 느꼈다. 그때 경험삼아 소들과 함께 가축수송 전용선을 타고 귀국한 건 참 잘한 일이었다는 뿌듯함도 느꼈다. 호주의 소 2천500두가 태평양을 건너온 그 기념비적인 현장을 내가 함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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