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1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논단>뉴노멀에 정원사가 할 일은

  • 등록 2018.08.31 10:32:02


윤 여 임 대표(조란목장)


목장의 눈물겨운 여름이 지나고 있다. 어김없이 날아든 유대통지서에 마음이 울컥한다. 해마다 이맘때면 겪는 울컥함인데 올해는 정도가 더해 맘이 숙연해 진다. 더위에 약한 소들과 사람들이 어떻게 견뎌내고 얻은 결실인가. 가벼워진 통장이지만 먹고 사는 것이 얼마나 많은 일을 견뎌야 하는 지를 가슴에 안으며 또 생활할 힘을 얻었음에 감사한다. 말복이 지나니 하늘은 멀어지고 파란하늘에 흰 구름이 뭉실하니 모습은 영락없이 가을하늘이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하나 한 달 넘게 비 한 방울 구경 못한 대지는 타들어가고 우리 속은 더 타들어 간다. 하늘이 원망스러운데 한 술 더 떠 올 겨울 대단한 한파를 예고하는 목소리들이 나온다. 연간 기온 격차가 60도(영상 40도에서 영하 20도 까지)에 육박할 거라는 전문가의 얘기를 들으니 못해 먹겠다는 생각이 든다. 몇 년째 날씨는 우리의 생업을 휘두르는 무서운 존재가 되었다. 정말 겁나는 것은 이 폭염이 새로운 일상 즉 뉴노멀이 될 거라는 데 있다. 뉴노멀이란 시대가 변하고 상황이 변하면 새로운 표준이 생긴다는 말이다.
정원사가 어느 날 연못을 바라보니 수면위에 수련 잎이 하나 떠 있었다. 다음 날은 두 개, 그 다음 날은 네 개로 매일 전 날보다 두 배로 불어나 100일째 되는 날 연못은 수련 잎으로 가득 찬다. 수련 잎이 연못의 반을 채우는 데는 얼마나 걸릴까. 답은 99일이다. 수련 잎이 무섭게 증가하는 것을 알게 된 정원사는 연못을 두 배로 넓히는 공사를 한다. 두 배로 넓어진 연못이 수련 잎으로 다 차는 데는 101일이 걸린다. 겨우 하루만 늘어났을 뿐이다. 이를 ‘정원사의 수수께끼’라고 부른다. 정원사의 수수께끼는 가열되는 냄비 속의 개구리 이야기처럼 위기대처 방식을 이르는데 환경문제, 지구온난화 등의 위기를 인식하고 해결하는 데 인용되곤 한다. 한국일보 주필을 지내고 지금도 활발히 다양한 주제로 칼럼을 쓰고 있는 김수종 선생의 책 [0.6°]에 나오는 얘기다.
2003년에 발간 된 이 책의 제목은 20세기 100년 동안 지구 평균온도가 0.6° 올랐다는 데서 따온 것이다. 처음 책을 읽었을 때 과학적 사실과 인문학적인 요소가 두루 가미된 매우 훌륭한 글이라는 감탄은 했지만 솔직히 내 일로 받아들였던 것은 아니다. 책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불행하고 불편한 일이었으나, 불과 10여년 만에 발등의 불로 떨어져 개개인의 삶을 위협할 줄은 정말 몰랐던 일이다. 이미 15년이나 지난 책은 지금 읽어도 현재 상황에 어긋남이 없다는 것이 신기하다. 특히 2015년 국무회의에서 장마가 사라졌다는 가상의 시나리오를 접하면 그 예측의 탁월함에 무릎을 치게 된다.
정원사는 문제해결의 본질을 외면한 채 미봉책으로 시간을 벌려고 하는 우리들 자신으로 보인다. 막연히 과학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거라고 기대하며 편리함에 취한 이 시대가 맞이한 올 여름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폭염을 당해 모두의 관심은 온통 어디로 쏠려있던 것일까. 더운데 에어컨도 맘대로 못 켜는 건 누진세 때문이라고 온통 가정용 전기 누진제에 쏠려 있었다. 가축이나 농작물 피해 등은 걱정스럽고 밥상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로 나아가지만 본질적인 논의로 이어지진 못했다. 취약계층의 여름나기나 자영업자들의 소득저하에 그 초점이 맞춰진다. 다 매우 중요한 이야기다. 단, 이렇게 단편적으로 폭염문제에 접근하면 더위가 사라질 때 문제의식도 함께 사라진다는 것이다.
우리 같이 평생 소 키우며 살아온 사람들은 기후변화폭이 극심해지는 환경에서 어떻게 낙농업을 해나갈 수 있을까. 낙농업이 식량산업이기보다는 낙농가들의 호구지책으로만 여기는 소비자들의 인식을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까. 무엇보다 우리는 지치지 않고 씩씩하게 미래를 꿈꾸며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이 모든 물음들이 절실하다. 가공할 폭염은 환경의 위기에서 온 것이며 환경의 위기는 농축산업의 위기이자 전 인류의 위기라는 공감대는 미약하고 이를 타개하기 위한 행동으로 옮겨가기에는 더구나 아득해 보인다.
본격적으로 축산의 앞날을 이야기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사양표준 마련이나 에너지 절약형 사양방식도 중요한 과제다. 이 난폭한 기후를 살아내야 하는 일이 축산인들에게만 절실한 일일까. 이미 목초농사는 피롱의 길로 접어들었다. 농사비용도 못 건진 형편없는 사일리지를 끝낸 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여기저기 채 익지도 못하고 고사된 옥수수가 폐허처럼 서걱거리고 빈 밭은 후작 파종은 엄두도 못 내고 텅 빈 채 그대로다. 작년에는 봄 가뭄 때문에 연맥을 버렸는데 올해는 옥수수 농사가 망가졌다. 내년 소먹이에 비상이 걸렸으니 생산비 증가가 불 보듯 뻔하다. 폭염과 가뭄은 농작물의 작부체계를 바꾸고 이는 가축 사육환경에 큰 변화를 가져 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우리의 식량이 위협받는다는 것을, 언제까지나 지금처럼 싼 음식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무게 있게 이야기할 때다. 생산자, 소비자 간의 피아 구분이 없는 총체적인 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 단기적으로 상황이 좋아져도 맘을 놓지 않게 된다.
8월 4일자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The Economist)는 ‘세계는 기후변화와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있다. 지금 같은 폭염이 ‘뉴노멀’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환경이 변하면 인간의 행동도 변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우리는 수련의 번식을 막기보다는 연못을 무작정 늘릴 수 있는 것처럼 생산도 소비도 에너지 집약적 방식에 의존해 왔다. 이제 그럴 수 없다는 것을 혹독하게 공부하고 있다. 볼테르는 ‘인간은 논쟁하고 자연은 행동한다’고 했다. 역시 김수종 선생의 같은 책에서 건져낸 명문장이다. 헛된 논쟁에 시간을 쓰기에 시간이 너무 없다. 자연은 절대로 자비하지 않고 받은 대로 반응하는 무자비한 절대자라는 쓰라린 교훈 속에서 미래는 불안하다. 200㎖ 우유 한 팩을 거뜬히 먹고 있는 20개월 손자 녀석의 터질 듯한 분홍빛 볼과 초롱초롱한 검은 눈망울을 바라보며 이 녀석이 맞닥뜨려야 할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미안한 맘이 든다. 중형 태풍 솔릭이 한반도를 관통한다고 매스컴이 들썩하다. 비를 몹시 기대하면서도 겁이 난다. 이래저래 심란한 요즘이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