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농협대학교 총장)
▶ 한국을 방문했던 외국인들에게 한국음식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뭐냐는 질문에 대부분이 ‘불고기’라고 대답했다. 다음으로 떠올리는 요리로는 비빔밥, 갈비, 잡채, 삼겹살, 삼계탕, 떡볶이, 김밥, 김치찌개, 치맥 등이었다. 미국, 호주, 캐나다, 중국 등 외국에 있는 한국식당을 방문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좋아하는 한국음식을 물었더니 1위가 불고기이고 이어서 갈비찜 또는 양념갈비, 비빔밥, 삼겹살, 잡채 등으로 답변했다. 어느 경우든 불고기는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한국음식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세계 어느 나라 음식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고기를 소스에 재워서 구워먹는 불고기와 같은 요리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다.
▶ ‘불고기백반(줄여서 불백)’은 추억의 음식이 아니다.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런데도 전성기를 마감하고 인기가 시들해진 음식처럼 느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만 해도 불고기백반은 최고의 대접을 받는 고급음식이었다. 쇠고기를 얇게 썰고 채소, 양파, 버섯, 다진마늘 등을 섞어서 배즙에 버무려 재운 뒤에 그 양념소고기를 노란 색깔의 구멍 뚫린 놋쇠판에 얹어 숯불에 익혀 먹는 ‘불고기’ 맛을 한국인이라면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 불고기는 쌀밥과 가장 궁합이 잘 맞는 음식이라서 참 맛있었다. 그래서 예전에는 귀한 손님을 대접할 때면 대개가 불고기백반 식당으로 향했다.
▶ 그렇게 대접받는 음식이었기에 예전에는 집에서 불고기를 먹어본 기억도 없다.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들조차도 한국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불고기 맛을 예찬한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으로 불고기를 꼽았다. 그런데 그 불고기가 언제부터인가 한발 뒤로 물러난 음식으로 전락했다. 다양한 구이문화가 확산되면서 불고기는 더 이상 고급음식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귀한 손님 접대에는 어쩐지 결례의 느낌을 받는 시대가 되었다. 값비싼 고급부위만이 맛과 품위의 상징으로 잘못 인식되고 있다. 고기와 야채와 백반의 완벽한 배합으로 인해 균형 잡힌 식단으로 대접받아온 한식 불고기가 불행히도 평가 절하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 2010년 7월 22일 전국 축산물브랜드 페스티벌 개막식 행사가 있던 날, 대한민국이 불고기의 원조국임을 선포하는 행사를 가졌다. 소비가 위축된 전통의 맛 ‘불고기’를 부활시켜 예전의 영광을 되찾아주자는 취지였다. 또한 국민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저지방부위의 소비확대에도 도움을 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의욕적인 선포에 뒤이어 대대적인 홍보활동이 뒷받침되지 못한 점은 커다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제부터라도 한우자조금이나 축산발전기금 등을 투입해서 보다 적극적인 ‘불고기’ 홍보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우리나라가 불고기의 원조국임은 역사를 보면 증명이 된다. 우리나라의 전통 고기구이는 미리 양념을 해서 꼬챙이에 꿰어서 굽는 맥적(貊炙)에서 유래됐다. 여기서 ‘맥’은 고구려를 지칭한다. 불교가 번성하던 통일신라 법흥왕 16년 살생금지령을 내려 육류를 기피하였으며,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국교이므로 육식을 금하는 풍습이 전해져 오다가 고려말기 몽고의 지배를 받을 때 육식이 부활되고 설하멱(雪下覓)과 같은 고기요리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조선시대 1670년 ‘음식디미방’에 설하멱의 기록이 있으며, 1718년 ‘산림경제(山林經濟’)에는 설하멱의 조리방법이 수록되어 있다. 이후 1934년 ‘간편조선요리제법’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료에 기록이 있다. 18세기 후반에 들어 설하멱은 ‘너비아니’로 발전하게 되는데, 이는 쇠고기를 너붓너붓 썰어 잔 칼집을 내고 갖은 양념을 해 굽는 것으로 현재의 불고기 보다 더 두텁게 썰었다. ‘불고기’라는 말이 처음 쓰인 것은 일제 말부터 광복이후에, 너비아니 대신에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두산백과) 문화체육관광부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100대 문화유산을 선정, 발표했는데 음식 중에는 유일하게 불고기가 선정되었고, 불고기용 소고기를 생산하는 한우도 함께 선정된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 대한민국이 불고기의 원조국임을 만방에 알린 선포문을 여기에 적는다.
<불고기 원조국 선포문>
우리 한민족은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 속에 고유의 빛나는 음식문화 전통을 이어왔다.
그 중 불고기는 오래 전부터 우리 민족이 즐겨온 음식이자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세계인 모두의 사랑을 받는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불고기는 세 가지 미덕을 가진 음식이다.
누구나 간편히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조리의 쉬움이 그 첫째요, 세계 어느 음식이나 재료와도 잘 어울리는 어울림이 그 두 번째다.
그리고 재료나 조리의 방법에 따라 무궁한 변신이 가능한 미래지향의 음식이 그 세 번째다.
이에 우리는 세계 모든 나라에 대한민국이 불고기의 원조국임을 알려 그 근원을 분명히 하고 우리나라 사람뿐만 아니라 세계인 모두에게 더욱 사랑받는 음식으로 발전하도록 끊임없이 노력할 것임을 다짐한다. 이러한 의지와 뜻을 모아 대한민국 축산인 모두와 5천만 국민은 세계만방에 알린다.
“대한민국이 불고기 원조국이며, 한국의 대표 음식임을 엄숙히 선포한다.”
2010년 7월 22일 이 땅위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축산인들의 뜻을 모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