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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윤리적 주장’도 때론 뒤집어 보자

  • 등록 2018.07.20 10:57:59

[축산신문]


윤여임 대표(조란목장)


죽음의 밥상 [원제: The Ethics of What We Eat, 먹을거리의 윤리]은  공장식 축산, 월마트, 맥도날드 같은 식품 관련 기업, 수산물양식 등 먹을거리 전반에 대해 다룬 책으로 2006년에 미국에서 발간되었다. 원제 그대로는 책을 많이 팔수 없다는 출판사의 고육지책이라고 백번 양보하더라도 지나치게 선정적인 제목이 영 마땅치 않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다른 생명에 빚지고 살아 갈 수밖에 없는 것은 자연계의 엄연한 질서이다.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는 진실인데도 제목부터 뭔가 싸워야 할 것들이 있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유와 계란은 상당히 자유롭긴 하다. 이 책은 ‘동·식물성 식품을 골고루 적당히 먹는’ 사람들도 가치관의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는 내용으로 구성된다. 공장식, 즉 대량생산 방식의 축·수산업이 가져오는 환경파괴, 에너지 문제, 생명의 윤리성과 거대자본의 식품생산 구조 왜곡, 비만사회의 도래 등의 문제제기는 비슷한 책들과 인식을 같이 한다. 대안도 유기농, 공정무역, 채식, 인도적 가축사육 등의 방식으로 유사하며 사람들의 절제와 동참을 호소한다.

공장식이라고 비판하는 어육류 생산방식이 아니면 식품산업이 어떻게 재편돼야 할지 대안은 현실성이 없다. 자가 생산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육식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한(인간이 육식을 완전히 포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다), 유기농이나 놓아기르기(cage free) 등의 생산물은 비쌀 수 밖에 없다. 결국 저소득층의 동물성식품 소외는 가속될 것이다. 결과가 구매력이 약한 저소득층의 동물성식품 접근 제한이 될 것임을 드러내놓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또 다른 윤리적 문제를 야기할 뿐 비판은 비판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2013년, 대리점에 제품 밀어내기 행태는 기업의 유통과정에서 빈번한 사례라지만 특정 사건 하나로 모든 비난의 화살이 남양유업으로 몰린 사건이 일어났다. 마트에서 제품이 설 자리가 없어졌고 회사는 휘청거렸다. 사태가 더욱 심각해지자 피해 대리점주라고 주장하는 10여명을 제외한 나머지 점주들은 성명을 발표한다. 어용이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밀어내기보다 더 무서운 매출부진으로 거리에 나앉을 판이라는 이들의 절규에 격하게 공감했다. 그럼에도 이 사건은 여론의 긴 뭇매와 소비자의 외면으로 이뤄낸 한국 소비자 불매운동 사례로 거론된다. 속상하고 마음 아픈 노릇이다.

1차 생산자인 우리 역시 하루하루 숨을 죽였다. 뉴스에 관련기사만 나오면 경기라도 하듯 가슴이 내려앉았다. 원데이 콜드체인시스템으로 운영되는 유업계는 매일 생산되는 우유를 당일 포장, 유통시켜야 하는데 소비부진은 곧바로 생산량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할 수 있는 방어를 시작했다. 학생들 수업시간에 다루는 불매운동에선 이 사례를 빼고 다른 사례를 썼다. 단체대화방에 남양유업이 어떤 기업인지 알리며 소비를 적극 탄원하는 글을 올렸다. ‘그렇게 혹독한 부진을 겪으면서도 한 달에 두 번 들어오는 유대 한 번 늦춘 적이 없다. 생산 감축이라는 비장의 무기로 낙농가를 옥죄지 않았고, 창립 이래 아무리 어려워도 직원들 월급 한 번 미룬 적 없는 회사’라는 것을 듣고 겪은 대로 알렸다. 긍정적인 반응이 적지 않았다. 

식재료의 대중화는 대량생산 방식의 산물이다. 호텔 뷔페나 고급레스토랑에서 접할 수 있던 연어가 대중 뷔페식당에도 등장한건 연어양식이 가능한 이후의 일이다. 생전 처음 연어를 맛본 것은 1983년 롯데호텔 뷔페에서였다. 훈제연어에 철갑상어알과 다진 양파를 올리고 시저소스를 살짝 발라먹었던 경험이 시골읍내 뷔페식당에서 재현 된 것은 거의 20년 후였다. 양식연어가 수입가능해진 다음의 일이었으니까. 고기 역시 보통사람들은 30~40년 전만 하더라도 명절이나 행사가 있어야 먹을 수 있었다. 아무 때나 고기가 밥상에 오를 수 있게 된 것은 공장식 축산이라는 비판을 견디며 도달한 생산규모의 확장에 힘입은 바다. 대량생산 방식을 소리 높여 반대하는 사람들도 생산방식 변화에서 올 실질적인 가격상승 문제에서는 소비량을 줄이는 것 이외에 별 방법이 없는 듯하다. 닭 한 마리가 한 달 동안 낳는 계란 한판 가격이 4천원짜리 커피 가격보다 못한 것은 묵인하고 (생산자는 훨씬 덜 받는 유통구조) 생산방식에만 문제를 제기한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의 문제는 식품소비자의 자발적인 선택이지만, 그 선택은 긴박한 주머니 사정이 강요한 결과이기도 하다. 자발적으로 대량생산의 육식을 거부하는 것과 돈이 없어 육식을 포기 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다르다. 후자의 육식소비는 대량생산 축산물이 베푸는 저가격이라는 은혜(?) 때문에 가능하다. 가난한 이들에게 육식 장벽을 높이는 것 말고 또 어떤 대안이 있을까. 개인 식습관의 산물인 비만조차 대량생산 방식의 폐해로 돌려 이를 포기하자는 주장의 한 축으로 삼는 것은 무리다. 파고 들어갈수록 문제는 점점 더 복잡해진다. 

문제의 대안을 제시할 때 실현가능성이나 경제성을 함께 고민해야 하는 것은 문제제기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전제다. 팩트에 연민을 덧칠해 본질을 흐리고 싶은 의도는 없다. 극단적인 사례의 과일반화(over generalization)를 경계할 뿐이다. 강자의 비리를 단죄하고픈 대중의 울분이나 윤리성의 발로가 한길을 보고 내달릴 때 또 다른 권력이 탄생할 수도 있다. 이런  권력이 다른 한편에 선 약자들을 억압하는 수단이 된다는 것도 생각해 보자. 선한 의도로 행하는 ‘윤리적 주장’일지라도 때론 뒤집어 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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