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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북한 출신 수의사 조충희 씨의 북한축산 바로보기<9>북한 축산농민의 일상-2

상호간 노동력 대가 받는 수직적 경제활동 확산

  • 등록 2018.07.11 11:17:19

[축산신문]


(북방연구회 연구위원)


이 시기 북한 축산정책의 방향은  국영 축산업과 협동농장의 공동 축산을 기본으로 하고 농민들의 부업축산을 병행해 발전시켜 협동농장들에서는 작업반 당 2톤, 농가호당 100kg 이상의 고기를 생산하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정책방향에 근거해 공동소유로 있던 일부 중대형 가축들이 개인의 소로 할 수 있는 공간이 형성되었으며 이 공간은 축산농민들에게는 공동생활과 개인생활이라는 이중적인 일상이 생겨나게 했다.
협동화 초기에는 집단생활에 많은 비중이 실렸지만 점차적으로 개인의 이윤을 위한 일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게 되었다. 집단축산업에 종사하면서 배운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종자구입과 새끼생산, 비육, 판매, 가축사육 등 전문적인 전문 축산업자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일반 농산작업반 농민들과는 현저히 차이 나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
농산작업반 농민들은 노동당정책을 집행하라는 강요에 따라 의무적으로 1년에 돼지 1마리도 겨우 길러냈지만 축산농민들은 보통 1년에 5~10마리의 돼지를 비육하면서 종축까지 하는 사람도 있었다.
개인 축산업자들이 생산한 가축새끼들이 공동축산에서 국가가 하달한 공급계획을 수행하기 위해 공급마리 수를 채우기 위해 되는대로 성의 없이 생산·공급하는 새끼들보다 신뢰가 있어 주민들 속에서 신용을 얻어 판로도 확실해 부가 축적되고 축산농민들의 경제생활은 계획경제가 자기 능력을 발휘되던 1990년대 이전시기에도 농산 작업반 종사자들과 차이가 나게 향상되는 결과를 낳았다.
 
시장화에 따른 축산농민들의 일상 변화
1990년대 경제난을 겪으면서 북한의 경제구조는 자생적 시장화로 공식적인 계획경제와 합법·불(비)법적인 시장경제가 공존하는 이중구조를 형성하게 되었다.
북한 주민들의 일상과 생활에서 시장의 영역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성장했다. 농민시장이 공식적으로 개장한 것은 1950년 3월 5일이다. 그 배경에는 같은 해 1950년 1월 15일 내각결정 제 9호 ‘농민시장 개설에 관한 결정서’가 공표되면서 구체화 된 것이다.
북한의 전 지역에서 시, 군(구역)을 단위로 10일에 1회씩 정부가 지정한 장소에서 열리던 농민시장은 1990년대 초 극심한 경제난이 닥치면서 정부의 의도와 상관없이 매일 시장으로 변화되었고 이것이 발전되어 오늘의 종합시장으로 되었다. 시장이라는 공간은 축산농민들에게 더 많은 부의 축적을 가능하게 한 기회의 장으로 되었다. 장마당을 이용한 합법적인 축산물의 판매와 유통이 가능해지고 비교적 안정된 수입을 가져올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었다.
90년대 중반이후 자생적 시장화 과정 속에서 북한 주민들의 하루 일과에는 상당한 변화가 일어났다.
공동체의 조직생활에 이름만 걸어놓고 사색과 실천의 모든 영역이 개인 가축업의 확대와 축산물유통을 통한 이윤창출, 그를 향유하는데 돌려졌다. 집단생활에 참가하지 못해 생기는 불이익은 감수하거나 이윤의 일부를 투자해 농장관료들을 매수하는 방식을 이용해 자신의 안위를 챙겼다.
관료-주민 간에는 각자의 생존을 위해 서로가 공존하는 게임의 규칙을 형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개인 경제활동을 통해 자신의 생존을 유지, 안정화하려는 공통된 목표를 갖고 의도성 여부와 상관없이 공모· 담합관계가 성립한 것이다.
이것은 축산농민들에게 있어서 시장경제활동이 중요한 매개 수단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관료적 조정방식 내에서 관료와 주민들은 행정·명령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관료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이용해 주민들의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뇌물을 받거나, 분배의 특혜와 편의제공을 통해 주민들의 복종을 받았다.
이러한 관계는 경제난이 극심하던 1990년대에 배급제의 마비로 북한주민들이 생존을 위해 사적 경제활동에 뛰어드는 과정에서 계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또한 주민들 호상간의 관계에서 친분을 이용한 서로 도와주는 수평관계에서 일정한 노동을 해주고 식량 또는 돈으로 대가를 지불하고 지불받는 수직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가축관리, 가사노동 등 잡일을 하는 일꾼을 고용하고 대가를 지불하는 이러한 수직관계는 개인축산업자들의 경우 가장 먼저 나타났고 점차 보편화 되었다. 시장을 통한 개인경제활동의 확대가 만들어낸 축산업자들의 이러한 생활문화는 시장에서 경제활동은  하는 다른 부문의 상인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