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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논단>문명사적 배경서 본 축산물 생산의 중요성

  • 등록 2018.07.06 09:55:41

[축산신문]


김동균 이사장((전) 상지대 교수 강원도농산어촌미래연구소)


오늘날 인류가 지구 생태계 전체를 지배할 만큼 수가 많아지게 된 으뜸 요소는 ‘먹이’이다. 살아 움직일 안전한 에너지가 없었다면 인류의 증식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농업이 요즘처럼 발달되기 전까지만 해도 식량을 수확하기 직전에 허덕이는 기간을 가졌기에 아직도 ‘보릿고개’니 ‘초근목피’라는 단어가 남아있다.
그런데 내셔널지오그래픽은 ‘농업의 발견’이라는 칼럼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알리고 있다. 즉, 인류가 농경이라는 식량획득방법을 발견한 것은 고대에 살던 어떤 여인의 우연한 발견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어느 여인네가 채집으로 모아온 곡물로 식사를 마련하고 남은 약간의 종실을 자신이 살던 집 앞마당에 버린 한참 후에 같은 식물이 자라 열매 맺는 것을 알게 된 것이 농업의 효시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인류발달사를 근거로 볼 때 적어도 3만년전 까지는 우리 조상들은 수렵과 채집으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왔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이미 그 시기에도 예술가, 점쟁이, 사기꾼 그리고 도둑 등이 존재했다는 흔적들이 발굴되곤 한다는 사실을 볼 때 현대사회는 원시사회의 연장선상에서 굴러가고 있다고 보아서도 무리가 없다. 이러한 부정적 속성들조차 집단생활로 이어지면서 인류에 내재한 태생적 요소가 표출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다가 1만5천년전 쯤에 사냥법과 종자채집에 대한 능률을 높이려고 다양한 도구들을 발전시켰으며, 서아시아에서 초보적인 농경을 시작하면서부터 땅의 소중함과 함께 정주문화(定住文化)가 본격적으로 뿌리내리게 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인류의 문명역사는 이 시점부터 의사 전달능력이 향상되면서 본격적으로 축적되기 시작했다. 정주문화가 확대됨에 따라 더 큰 집단사회가 형성되고 급기야 국가라는 조직도 탄생했다. 축산이 싹트게 된 시점도 이 시기일 가능성이 높다. 축산의 유래와 동기에 대한 학설도 다양하지만 필자는 다음과 같은 논리로 그 기원을 설명하고자 한다.
현대 축산에서 동물복지학이 발달되면서 동물에게도 감정과 고통이 있음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점은 최근에 매우 정교하게 발달하고 있는 각종 매체에서도 입증되고 있어서 종이 다르거나 심지어 먹이사슬에서 갑을관계에 있는 동물사이에서조차 ‘우정’ 내지 ‘모성애’가 있음이 발견되어 사람들이 평소에 지녔던 인식의 한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이 점에 서 잡는다면 인류와 다른 동물간의 정서적 교감은 축산의 유력한 동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점 만으로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왜냐하면 현대인의 직계조상이라고 알려진 호모사피엔스는 사냥꾼이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계파에서 나온 호모하빌리스의 후예이고, DNA의 분석기술이 밝힌 현대인의 혈청학적 조상은 불과 20만년전에 생존했던 이디오피아의 흑인 여성이었음을 볼 때 현생인류의 생존은 동물 사냥과 종실 채집으로 이어져 온 점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축산물이 없었다면 생존이 불가능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축산의 동기를 단순히 친밀감의 교류로는 보기 어렵다. 그러므로 축산의 시작 역시 식량획득의 차원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초기의 수렵은 작은 동물의 사냥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점차 큰 동물로 확대되었는데 그 동기가 ‘힘을 덜 들이고 많은 식량을 얻기’에 있었다고 보는 것에 무리가 없다. 그로써 우리 조상들은 여러 날에 걸쳐 포식을 즐겼을 것이다. 그런데 자연 상태에서는 어렵게  구한 대동물 식량도 시간이 오래되면 변질된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즉 부패된 고기를 먹으면 배탈과 죽음을 초래하므로 이 점을 극복할 방법으로 ‘생포해 가둠’이라는 새로운 방법을 발견했을 것이다. 즉, 살아 있는 짐승의 고기는 신선하므로 여러 날 후에 잡아먹어도 괜찮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쁨도 곧 사라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단순한 ‘가둠’으로는 오래 보존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우리의 위대한 조상들이 깨달은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할 것인가? 그래서 발견한 점이 ‘잡은 짐승에게 먹이주기’였다. 즉, 먹이를 주었더니 죽지 않고 오래 살아있다는 점과, 짐승을 오래 살려보니 자라기도 하고 새끼도 낳게 된다는 사실을 터득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상을 확대하면서 유즙과 알 등 다른 형태의 축산물도 얻게 된 점으로 축산의 시작과 발전을 설명할 수 있다. 실제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적을 통해 인류가 우유를 최초로 이용한 시기는 무려 1만1천년전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위의 추론은 ‘가축사양학’이 축산학의 뿌리였음을 말해주는 또 다른 주장이기도 하다.
축산업의 출발점은 가축을 기르고 있는 목장이나 농장이다. 생산현장 없이는 동물약업계는 물론 사료업계 또는 각종 첨단 기술로 무장한 첨가제 및 IT업계 그리고 축산가공 관련업계도 존재할 수 없다. 게다가 현존하는 축산관련 단체나 조직들이 생산현장 없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중요성이 경시되는 사례를 종종 보게 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많은 거래관계에서 중소규모 영세 생산업자들이 ‘을’로 전락되고 있으며, 피해를 보고도 효과적인 대응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를 볼 때에 현대 사회구조의 복잡성을 탓하게 된다. 무슨 법제도가 그리 복잡하며, 외부와의 거래계약도 너무 복잡해서 농사에만 전념하려는 순수한 농민에게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 현상은 수요와 공급의 이치가 민감하게 작동하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의 단점으로도 지적되고 있어서 누군가는 말하기를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끊임없이 부풀리고 있는 풍선과도 같다’는 말이 떠오른다(언젠가는 터지고야 말 것이라는 암시가 내재함). 세상살이에 어찌 좋은 꼴만 있을 수 있겠는가? 비합리성이 존재해야 시정하려는 노력도 생기는 현상을 보면서 축산업계의 질서가 좀 더 합리적인 방향으로 진전되기를 소망해 본다. 동시에 이 글로써 축산현장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이 축산관계자 모든 이에게 더 깊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