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3 (화)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연재

온고지신(溫故知新) <4> 좌초위기 모면한 냉도체등급판정

생고기 문화 발달 호남지역 반발 커 강행시 부작용 우려
‘소도체 당일등급판정’ 한시적 도입 우회전략

  • 등록 2018.03.15 19:31:24
[축산신문 기자]


윤영탁 전 본부장(축산물품질평가원)


- 처음은 느슨하게, 그리고 점점 치밀하게

근간(根幹)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다. 이는 말 그대로 사물의 바탕이나 중심이 되는 중요한 것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작할 때 기본 틀을 잡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잘못된 틀로 일을 진행하다 보면 이제까지 만든 것을 모두 허물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도체등급제도의 근간은 무엇일까? 소의 경우 육질과 육량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이고, 돼지의 경우 육질도 중요했지만 우선은 육량의 추정과 출하돼지의 규격화였다. 

일을 추진하다보면 근간이 흔들릴 정도의 강한 저항에 부딪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때로는 저항에 밀려 근간이 심하게 왜곡되는 경우도 있다. 근간의 설계가 다소 미흡한 경우 수정·보완할 수는 있지만 저항에 밀려 이해타산 쪽으로 근간이 흔들려 변형되면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

소 냉도체 등급판정에 대한 저항은 예상외로 강했다. 오죽했으면 등급기준 마련 초기에 당시 유통현실에 맞는 온도체등급기준을 마련했겠는가. 

그때 마련한 온도체 등급기준(안)을 그대로 반영하여 근간으로 삼았다면 다시 새로운 틀을 마련해야하는 시행착오를 거쳤거나 등급제도가 실패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림에서 밑그림 없이 특정부분부터 세부 묘사를 해 그리다 보면 나중에 이상한 그림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기본 골격을 스케치하고 단계적 세부 묘사를 해 나가면 작가가 의도한 대로 깊이 있는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소 도체등급기준에서 ‘근내지방도’가 그 같은 예일 수 있는데, 육질등급판정에 근내지방도라는 항목을 근간으로 하여 판정하다 보니 처음에는 №1~№5단계로 구분하던 것이 점점 세분화되어 이제는 №1~№9까지 구분되게 된 것은 기본적으로  근내지방도 측정이라는 근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돼지도체의 경우도 이와 같다 하겠다. 도체중량과 등지방두께에 의해 기본 등급을 정한다는 기본 골격을 유지하면서 점점 출하되는 돼지의 규격화와 육질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등급제 시행 초기 A등급의 도체중량(54~81kg)과 현재 1+등급 도체중량(83~93kg)을 비교하면 큰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때 일부에서는 동물복지, 친환경, 건강들을 이유로 소의 근내지방도 판정 항목을 약화시키자는 주장이 있었다. 

이는 근내지방도는 판정항목의 하나로 고기의 지방함량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등급은 어디까지나 객관적인 측정 결과이지 소비자의 기호성을 인위적으로 바뀌도록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막혔을 땐 우회하라

사람은 지식의 많음 보다는 지혜로워야 한다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지식은 보다 지혜로워지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아무리 지식을 많이 쌓아놓아도 그것을 지혜롭게 활용하지 못하면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힘든 노력의 의미가 없게 된다.

소 냉도체 등급제 시행 초기의 드라이아이스를 이용한 근내지방도 측정방법은 그 당시의 어려웠던 환경을 지혜롭게 헤쳐 나갔던 한 예라 할 수 있다.

등급화 거래지역이 서울, 부산 등 대도시에서 점차 지방으로 확대되면서 냉도체등급판정에 대한 반발도 커져만 갔다. 

특히 생고기 문화가 발달한 호남지방의 반발은 생각 이상이었다. 그러한 반발을 무릅쓰고 냉도체 등급판정을 원칙대로 강행한다는 것은 더 큰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냉도체등급판정의 필요성이 인정될 때까지 등급판정을 중단시키지 않고 계속시킬 방법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1996년 11월 ‘드라이아이스를 이용한 소도체 당일등급판정제도’를 97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적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고시를 하였다.

지금은 아련한 추억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냉장도 되지 않은 도체의 12늑골부위를 절개하여 나타난 등심단면에 드라이아이스를 뿌려 순간적으로 동결시킨 후 나타난 지방의 양과 분포정도를 보아 판정하는 웃지 못 할 해프닝이 이곳저곳에서 벌어졌었다. 그리고 생고기 문화를 고려하여 등급판정전에 온도체 상태로 사전 절취하는 것도 허용되었었다.

역사라는 것에는 가정이라는 것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당시 냉도체등급판정을 원칙대로 강력하게 추진하였더라면 등급제가 조기 정착되었거나 아니면 반발로 인한 부작용 때문에 등급제도가 아주 없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떤 일을 할 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넓은 시야에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때론 소비자로부터 필요성이 인정되고, 여론이 긍정적일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이 원활하게 추진되기 위한 유인책도 필요하다.

시행초기부터 추진(1992.12)된 등급결과에 의한 우수축출하포상금제도는 등급에 대한 생산자들의 이미지제고와 비거세의 거세화를 유도하였고, 1996년 12월에 ‘식육의 부위 표시기준’이 개정되어 등급과 원산지 그리고 품종이 포함되도록 한 것은 소비자에게 등급을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기사

더보기